하급자가 괴롭혔어요
일단, 법적인 결론은 뒤로 미루고, 편의상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가해자', 피해자라며 신고한 사람을 '피해자'라고 지칭하겠다.
“씨발, 참견은 그만 좀 하라고!”
가해자가 욕설하며 피해자의 얼굴 앞에 주먹을 치켜들었다. 주변 직원들이 급히 가해자를 말려 겨우 진정시켰다.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두 사람은 대형 백화점 건물에서 근무하는 보안요원들이었다.
가해자가 주먹까지 든 것은 처음이었지만, 욕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심지어 피해자의 직급이 더 높았다. 상급자의 정당한 지시에 반발한 일종의 하극상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지시를 무시하거나 노골적으로 반발하곤 했다. 한 번은 가해자가 축구 경기 중계를 보고 싶다며 근무 시간 변경을 요청했으나, 피해자가 거절하자 “씨발!”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또 근무 규정상 다음 교대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충분히 해야 했지만, 가해자는 교대 근무자가 도착하자마자 10분에서 15분씩 일찍 퇴근했다. 피해자가 이를 지적하면, “너무 그러지 맙시다, 좀!”하고 대꾸하며 늘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피해자는 회사 인사팀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신고했다. 회사는 가해자를 다른 지점으로 발령 내 두 사람의 근무 장소를 분리했다. 또한 사내 징계 규정에 따라 가해자를 지시 불이행 및 근무 규정 미준수로 경고 조치했다. 하지만 회사는 피해자가 상급자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이에 불복해 노동청에 신고했다.
회사의 자체 조사 자료를 모두 받아 재검토했다. 피해자는 가해자보다 직급이 높을 뿐 아니라, 근속기간도 길었으며, 나이도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괴롭혔다는 점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우위’는 직위나 직급이 높은 경우를 말하지만, 근속기간이 길거나 다수의 힘을 이용한 때도 해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래 근무한 하급 직원이 얼마 전에 입사한 경력직 상급자를 괴롭히는 경우나, 여러 명의 하급자가 상급자 한 명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단독으로 행동했으며, 다른 직원들은 괴롭힘 행위에 가담하거나 동조하지 않았다. 욕설은 다른 직원들 앞에서 이뤄졌기에 모욕죄로 경찰 신고는 가능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회사의 조사 절차도 적절해 보였다. 직장 내 괴롭힘 심의위원회를 열어 결정을 내렸고, 회의록도 자세히 작성되어 있었다. 노동청은 회사의 조치가 문제없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행정종결로 마무리했다. 결론적으로, 가해자는 근무 규정을 어긴 잘못은 있었지만,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아니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은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보다는 사업주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당사자(피신고인)는 가해자가 아니라 사업주다. 가해자가 사업주라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동료나 상사라면 노동청은 사업주가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도 마찬가지다. 행위가 형법상 폭행, 상해, 강제추행 등 범죄에 해당하면 일반 경찰에 신고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회사 내부 조사와 조치에 맡겨야 한다.
물론, 회사가 객관적으로 조사를 잘할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래도 사업주가 가해자가 아니라면 일차적으로는 회사에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사가 내부적으로 제대로 조사하거나 조치하지 않을 때 노동청에 신고하면 사건이 조금 더 신속히 처리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