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근무는 멋진 경험일까
주한 외국 공관(영사관)에서 근무한 근로자들에게서 퇴직금 체불과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는 모두 한국인이었고, 그들의 근무한 영사관은 한 중남미 국가 대사관 소속이었다. 근로자들이 제출한 두꺼운 서류는 스페인어로 가득했고, 그들의 이름조차 본명이 아닌 상관들이 부르기 편한 영문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서류 내용을 파악하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이 사건의 대사관 인사책임자는 스페인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사관은 주재국의 영토라 대한민국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아. 신고해봤자 소용없어.”
그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대사관을 포함한 주한 외국 공관은 대한민국 영토 내에 위치하므로, 속지주의에 따라 대한민국 노동법이 적용된다. 다만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대사는 면책특권을 갖고 있다. 대사가 이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형사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노동법의 강행법규(처벌 규정이 있는 법 조항)조차 단순히 선언적이고 권고적인 조항으로 전락하게 된다.
임금 체불은 민사 문제로도 다툴 수 있다. 하지만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대사관 재산에 대해 압류 등 강제집행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과거 한 외국 대사관이 건물 임차료를 1년 가까이 미납했지만, 건물주는 민사소송을 승소했음에도 비엔나 협약 때문에 결국 돈을 받아내지 못했다.
근로자들의 이 신고도 별 효과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생각했던 대로 대사는 직접 출석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형 로펌을 통해서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는 사실이다. 수임료가 꽤 비쌌을 텐데, 퇴직금은 못 주면서 이런 돈은 있었나.
위임받은 공인노무사가 출석해 설명했다. 명품 양복을 입고, 헤어스타일에 힘을 준 사람이었다.
“근로자들이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퇴사한 탓에 본국에 예산 배정을 요청했으나 아직 배정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본국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행정 업무가 지연되고 있다고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업무를 다소 많이 시켰다는 주장이었다. 정해진 근무시간을 넘긴 것도 아니고, 추가로 시킨 일의 양도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정당한 업무 지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일부 폭언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대사관은 이를 부인했고, 근로자들은 특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대사는 대리인을 통해 면책특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런 경우,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사건을 종결하면 퇴직금 지급이 더욱 늦어질 가능성이 커 보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해당 국가의 대통령 선거가 약 한 달 반 뒤로 예정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결국 신고가 접수된 지 3개월 만에, 근로자들은 퇴직금을 전액 받았다. 대사관과 근로자들이 합의서를 작성하며 사건은 종결되었다.
선진국 대사관보다는 이른바 제3세계 국가 대사관에서 임금이나 퇴직금 체불 사건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편이다. 외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것은 자신의 언어 능력을 발휘하며 멋진 경험을 쌓는 일이다. 하지만 국내법이 강력하게 보호해줄 수 없다는 점은 명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