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근로감독관의 사건 일지 3

밀면의 달인

by 박감

* 일러두기 : 인물들의 성명, 성별, 업종, 상호 등은 변경하였습니다. 혹시 내 사건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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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여성이, 50대 남성을 데리고 나왔다. 신고 서류상 피해 근로자는 남자 1명이기에, 동행자에게 누구인지 물었다.


“저는 철민이를 잘 아는 동네 사람이에요.”


이런 일도 다 있나 싶었다.

철민 씨는 한때 밀면집을 운영한 자영업자였는데, 장사가 잘되지 않아 속상한 나머지, 하루는 술을 잔뜩 먹다가 길에서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안타깝게도 뇌출혈이 발견되었다. 수술해서 생명은 건졌지만, 그의 지능은 초등학교 저학년생 수준이 되었다. 그에게는 연락이 닿는 가족이나 친척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퇴원 이후 노숙하며 거지꼴을 하고 다니는 그를, 동네 다른 밀면집 사장이 데려와 일을 시켰다. 그는 주방에서 하루 9시간씩 일하며 고작 일당 만 원만 받았다고 했다. 그 돈으로 매일 담배를 사서 피우며 즐거워했단다. 사업주는 그가 지각하거나 결근하지 않도록 가게 앞 원룸을 얻어주고, 매일 깨워서 출근시켰다. 그렇게 그는 10년을 일했다.


다행히 그를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동행한 여성뿐 아니라, 특별한 거처가 없는 그를 데리고 함께 살며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심상치 않은 사건이라고 느꼈다. 근로자는 진술 능력이 부족했고, 주변 사람들의 선의만으로는 권리를 온전히 보호받기 어려워 보였다. 특히 급여가 현금으로 지급된 탓에 증거가 거의 없었고, 퇴사한 지 2년이 지나 신고가 들어와 CCTV 자료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증거가 없는 사건 조사를 위해서는 대질조사를 해야만 하는데, 대질조사 과정에서 사업주가 근로자를 윽박지르면 그는 심리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사건은 흐지부지 끝날 수도 있었다.


사건을 조사하는 내가 한쪽 편을 들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나는 공인노무사 중 한 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체격이 크고 무섭게 보이지만, 눈매는 선한 사람이었다. 근로자는 당장 노무사 비용을 낼 형편이 안 됐지만, 그는 착수금 없이 사건을 맡아주었다.


마침내 대질 조사일이 되었다. 조사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아침 일찍 불렀다. 사업주의 주장은 달랐다.

“하루 일당을 5만 원씩 줬고요, 저녁 장사만 했기 때문에 근무 시간도 하루 5시간뿐이었어요. 방도 내가 얻어줬으니까, 체불 임금은 없다고요!”


근로기간도 근로자가 주장하는 날짜보다 짧아서, 줘야 할 퇴직금도 근로자의 주장보다 적다고 했다. 사업주가 조목조목 그 당시의 상황과 나름의 근거들을 설명하였다.


노무사는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에 앉아 근로자를 잘 변호해 주었지만, 근무 내용에 대한 자세한 정황은 근로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근로자는 그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잘 모르겠어요.”라며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증거가 필요했다. 인터넷포털 지도정보 사이트에서는 일명 ‘거리뷰’를 연도별로 제공하고 있었다. 10년 동안의 식당 출입문에 붙어있는 영업시간을 확대해서 확인했다.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저녁 장사만 했던 가게였다. 이 부분은 사업주의 진술이 사실이었다.


다음으로, 직접 현장 확인을 했다. 혹시 재료 손질을 위해 일찍부터 일하는지 불시에 방문해 주방까지 확인했지만, 일하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준비할 정도로 손님이 많은 식당도 아니었다. 주변 상인들에게 근로자의 근무 기간, 출퇴근 시간을 물어봤지만, 주방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지막 희망은 근로자의 휴대전화 포렌식이었다. 위치 정보를 통해 출퇴근 기록과 근무 기간을 분석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근로자가 가져온 휴대전화는 새것이었고, 근무 당시 사용하던 전화기는 이미 잃어버렸다고 했다. 게다가 온라인에 저장되는 위치 정보 기록 기능도 꺼져 있었다.


포렌식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새로운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근로자는 현재 한 소수 종교 단체 시설에서 살고 있었고, 그의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곳과 연관이 있었다. 나는 이들이 정말 근로자를 돕고 싶어 신고하게 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체불 임금과 퇴직금을 받아내어 종교 단체에 헌납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사건은 절충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근로시간과 근로기간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 없어, 퇴직금은 사업주가 자백한 내용을 기준으로 산정되어 근로자에게 지급되었다.


사건이 끝난 후, 주차장에서 우연히 노무사를 만났다. 그가 말했다.


“선과 악이 과연 무엇인지, 그 경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그런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내게도 같은 의문이 남았다. 만약 여러 증거가 남아있어서, 근로자의 모든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그는 더 행복했을까? 사건 조사로 두 달여를 보내는 동안, 그는 이 사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늘 밝게 웃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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