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으려는 사람, 갚지 않으려는 사람
“집이 안 팔려서요.”
유치원 원장이 말했다.
유치원 교사에게 밀린 임금은 매달 20만 원씩 10개월, 총 200만 원이었다. 같은 200만 원이라도, 월급 한 달 치가 통째로 한 번 체불된 것보다 10개월에 조금씩 나눠서 밀린 것이 훨씬 해결되기 힘들다. 간이대지급금 보장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간이대지급금은 공공 기금으로 체불 임금을 사업주 대신 지급해 주는 제도다. 최종 3개월 치 임금과 3년간의 퇴직금만 보장하는데, 결국 이 사건은 사업주가 직접 돈을 주어야만 해결되는 사건이었다. 사업주는 처벌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당장 지급할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사업주가 현재 사는 집 외에 아파트를 한 채 더 가지고 있는데, 그걸 팔면 줄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에 내놓았다고 해서, 근로자는 그의 말을 믿고 신고 후에도 한 달 반을 더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집이 아직도 안 팔렸어요.”
두 달 만에 다시 출석한 사업주가 한 말이다. 물론 사업이 잘 안되었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사서 형편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200만 원이 생활하는데 정말 간절했을 20대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종 조사 과정에서 얼마 전 이 유치원의 주소지가 바뀐 사실을 확인했다. 유치원을 이전하였다고 했다. 이사비용과 인테리어 비용은 썼으면서, 대출 이자는 꼬박꼬박 갚으면서, 정작 근로자에게는 밀린 임금을 단 10만 원도 갚지 않았다.
체불을 인정하는 진술을 받아내 조서를 작성했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근로자에게는 체불확인서를 발급해서 무료 민사소송을 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팔리지 않은 그 아파트에 가압류를 한다면, 아마 200만 원쯤은 곧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업주가 이런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어제 일해서 돈 마련했습니다. 방금 25만 원 전부 줬어요.”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한 사업주는, 체불된 금액을 갚기 위해 직접 현장에서 일용직 근로를 했다. 자신의 사업에 책임을 지는 사업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같은 사업장에서 또 다른 근로자가 신고했다. 이번엔 체불 금액이 300만 원이 넘었다.
"다시 일 다녀와서 갚겠습니다."
사업주는 출석을 미뤄달라며, 다른 지방 건설 현장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근로자도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큰 진전은 없었다. 짧은 시간에 갚기는 어려운 돈이었다. 결국 사업주는 출석해 모든 체불 금액을 인정했다.
사업주가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내게 물었다. 체불한 사업주에게 국가가 저금리로 융자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사업주는 융자금으로 임금 전액을 지급했고, 근로자는 신고를 취하했다.
이처럼 사업주가 책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사건은 비교적 쉽게 해결된다. 반대로 책임을 회피하고 시간을 끌면,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합의하지 못해 근로자가 민사소송을 진행하면, 사업주는 연 20%의 지연이자와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추가적인 형사처벌(벌금 등)도 받을 수 있다. 사업주로서도 시간을 끌지 않고 빨리 해결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 간이대지급금 제도
공공 기금(임금채권보장기금)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체불 임금을 사업주 대신 지급하고, 대위권을 행사하여 사업주로부터 회수하는 제도다. 이것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근로자가 사업주를 노동청에 임금 체불로 신고해야 한다. 체불 금액이 확정되면, 사업주는 형사처벌하고 근로자에게 대지급금을 지급한다. 최종 3개월 치 임금(최대 700만 원)과 3년간의 퇴직금(최대 700만 원)만 보장한다. 임금과 퇴직금 합계 상한액도 있어서, 최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총 1,000만 원까지이다. 지급한 금액은 사업주가 근로복지공단에 추후 납부해야 하며, 납부하지 않으면 압류 등으로 회수한다. 모든 근로자가 간이대지급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부정수급 방지 등을 위한 심사 후 일정한 요건을 갖춘 근로자에게 지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