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감정이 많은 사람은 왜 늘 문제가 될까

’그런 게 아니라…‘

by 노엘

나는 감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도 뛰어난 편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와, 그럼 공감 능력 되게 좋은 거 아니야?”


모르는 소리다.

오히려 종종 문제 있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보였다.

작은 표정, 말의 미세한 결, 태도의 어긋남 같은 것들.

보기 싫어도 보이는 타인의 진심은 때로 선물보다 짐에 가까웠다.


느껴지는 걸 느끼지 말라고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건 신의 영역이었고 감정을 차단하는 건 고역이었다.

읽고 싶지 않은 진심을 계속 보게 되면 결국 사람에게 실망하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

그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어릴 땐 이 이질감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당황했고 굳어버렸다.

때로는 왜곡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했다.

어린 나는 분별할 능력이 없었고 그 혼란은 고스란히 몸에 남았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굳어버린 나를 불편해했다.

말이 없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는 것 같다는 이유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도 없이.


나와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몹시 속상했고 답답했다.

다 모아놓고 묻고 싶었다.


‘대체 왜, 나랑 말도 안 해봤으면서 나를 싫어하는 거야?’


아주 가끔, 오해 속에 있던 사람들과 관계가 닿을 때가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언니가 이렇게 진실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사실… 네가 말하고 다녔다고 생각했어.”


그때마다 깨달았다.

사람들은 나를 모른 채로 이미 판단을 끝냈다는 걸.


첫 직장은 작은 잡지사였다. 여초 환경이었다.

일을 하러 모인 공간이었지만

가끔은 이유 없이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일이 더 힘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처음부터 그냥 피하고 싶었다.

다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은 더 선명해졌고

왜곡은 줄어들고, 진실은 또렷해졌다.

대신 세월은 나에게 포커페이스를 가르쳐주었다.

재치와 유머도 함께.


사회적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 ‘재미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혼자가 되면 늘 허전했다.

덮어두기엔 내가 느낀 감정의 양과 무게가 너무 컸다.


그래서 나는 썼다.

형식도 목적도 없이.

빈 노트는 유일하게 안전한 피난처였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아무리 글로 정리해도

따뜻함을 나눌 사람은 내 곁에 없었다.

친구들은 각자의 삶에 바빴고

부모님은 늘 열심히 사는 분들이었다.


감정이 많은 딸, 친구, 동료로 살던 나는

늘 허한 마음 한 조각을 안고 살았다.


결혼을 하고 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을 때

나는 그 감정의 무게를 함께 견뎌줄 사람을 기대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무딘 사람과 결혼을 했다.



나는 감정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예민하지 않다.

무던한 편이고 불안도 크지 않다.

초긍정적인 사람에 가깝다.


결국,

감정이 많다는 건

세상을 세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에 가깝다.


내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의 팔 할이

무심코 지나칠 시멘트 틈에 피어난 들풀인 것처럼.


나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크고 깊은 공간에 세심하게 수놓아야 완성되는 가치를

알아주는 환경이 많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토록 알아달라고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나보다.

같이 나누고 싶다고, 너도 느끼지 않냐고.


이렇게 외마디로 시작하며.


‘그런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