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숨이 막히기 시작한 날

몸이 먼저 알았다

by 노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푹신한 침대, 폭닥한 이부자리, 옆에는 곤히 잠들어 있는 둘째 아이.

겉으로 보기엔 문제없어 보이는 환경이 나를 더 이질적이고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남편과 첫째가 짧은 겨울 방학을 마치고 먼저 영국으로 돌아간 뒤 나의 과호흡은 더 심해졌다.


처음엔 가슴에 돌덩이가 박힌 듯, 명치 언저리가 지릿하게 묵직한 듯 조였지만

이내 호흡이 가빠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정상적인 숨을 내쉴 수가 없었다. 며칠 내에 과호흡이 시작됐다.


알고 있었다. 9일 후면 영국으로 돌아간다는 걸. 그게 내 숨통을 조이는 가장 큰 주범이라는 것도.

나는 영국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살았고 어디에 살든 적응이 빠른 내 성격상, 장점도 단점도 반반이라 그곳이 숨 막힐 만큼 괴로운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고부터는 그곳은 내게 고립을 상기시키는 나라가 되었고 처참한 내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주었다.

남편의 일터를 따라와 사는, 경제력도 능력도 없는, 힘없는 아시아 여성일 뿐이라는 내 안의 거짓목소리가 나를 힘들게 했다. 두려움은 그런 것이었다.


남편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잔소리를 늘어놓고 윽박지르고 통제하는 말투를 썼다.

어쩌면 내가 쓰고 싶어 했던 따뜻한 가정의 사랑받는 아내의 가면을 그의 목소리가 냉정하게 발가벗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너무나 드러나서 살이 에이기 시작한 것일 지도.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덜덜 떨며 가쁜 숨을 쉬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실체 없는 두려움에 떠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고 한심해 보여도 머리만큼 마음은 빠르게 깨어나지 않았다.

머리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어도 시퍼렇게 멍든 마음은 추스르기 힘든 법이다.


며칠 동안 살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다.

정말 살고 싶어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본래 씩씩하고 당차고 재밌고 웃는 모습이 디폴트 값인 사람이니까.

내가 무너지는 건 일도 아니다. 괜찮다. 하지만 나는 두 아들의 엄마, 지켜내야 할 내 사랑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무너지는 엄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다.


나를 도와줄 상담사를 찾기 위해서. 나를 찾기 위해서.


지난 1여 년간의 부부상담에서 아무 차도가 없이 우리의 관계는 더 어그러졌다. 명백해진 진실과 더 올라간 남편의 방어반응에 나는 정말이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이전 상담사는 우리를 돕고 싶어 했지만 보이는 구조만을 다뤘기에 우리의 깊은 상처를 꿰매진 못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미숙하고 상처가 많아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어 억울함을 풀어주길 원하는 남편에게 그녀의 상담 스타일은 방어를 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그녀조차도 감당하기 벅찼는지 먼저 상담자가 상담을 중도 포기했다.

나에겐 부부사이의 영향력을 주고받는 공간을 주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남편에게는 어떠한 명목을 말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확실한 건 내가 많이 폭발했던 어느 날의 기억이

남편은 피해자, 나는 가해자의 서사가 맞다고 다시 한번 낙인찍어 줬다는 것 밖에는(남편이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너무 미웠지만 미워하는 마음조차 쓸모없는 에너지 낭비인 걸 이번엔 마음이 먼저 말했다. 시퍼렇게 남아있는 마음은 낮아질 때로 낮아져 더 이상 부정적인 마음을 갖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다시 상담사를 찾으며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상담사 자격의 기준이 불분명해서 구색만 갖추면 쉽게 한국에서 상담소를 차릴 수 있다는 사실과 상담사의 학력, 이력이 소개되어있지 않은 곳이 다반사라는 것이었다. 이전의 상담 실패의 경험이 있는 나는 세 가지 조건을 걸고 상담사를 찾았다.


첫째, 상담사의 학력과 이력이 명시되어 있을 것,

둘째, 상담사의 연세가 지긋하신 분일 것,

셋째, 크리스천


불행 중 다행일 까. 거짓말처럼 내가 생각한 조건에 너무나 들어맞는 상담 선생님을 찾았다. 안내해 주시는 분이 내 사정을 짧게 들으시고는 어떤 선생님이 맞을까 센터 안에서 상의하고 연락드리겠다고 했지만 난 센터장님이 나를 맡아주시리라는 강한 확신에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아니나 다를까 센터장님이 나를 맡으시겠다고 했단다.


선생님을 만난 처음, 내가 지난 1년여간의 어그러진 상담을 줄줄 말하지 않아도 선생님께서는 한마디로 정리를 해주셨고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상황을 간파하셨다.


누군가가 쓴 글이 생각난다. 정말 유능한 상담사를 만나서 돈이 비싸고 웨이팅이 길었음에도 인생에서 이렇게 값졌던 시간이 없었다고.


내게 첫 회기의 상담이 그랬다.


과호흡이 즉시 멈췄고 내 길을 다시 걷기 위한 내 두 다리가 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