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알았다
나는 성숙한 사람이고 싶었다. 불혹이 코 앞인 나이에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이길 바랐다.
성숙하고 싶던 내 바람과 달리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더라도 같이 성장해 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톰과 제리처럼 쫓고 쫓기던 어느 날,
나는 내 감정과 상황을 설명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리고 복수처럼 시작된 남편의 잔소리와 투정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등에 창살이 꽂혔다.
뭘 그리 잘못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남편은 불안과 불편함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 탓을 하고 싶었는지도.
물론 말한 적도 있었다. 당신의 불안을 나에게 투사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했다. 자신이 어떤 불안과 어떤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무더웠던 여름날 한국에서 강릉 외삼촌 댁을 갔었을 때. 여실히 드러난 그의 불안이 보였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해도 다 태클을 걸었다.
“왜 어머님 씻으러 가셨는데 문 열어보라고 해? 빨래 나중에 넣어도 되잖아.”
“방금 들어갔으니까 잠깐만 열어보라고 한 거잖아요. 잠깐 빨래만 넣어도 되니까.”
“그래도 좀! 그냥 어머님이랑 동선 겹치게 하지 마요!”
그래, 내 친척집이고 다 친정식구들인데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했지만 나를 쫓아다니며 사사건건 별일 아닌 것도 간섭하는 남편을
참다 참다 참아주다가 묵직하게 한마디 했다.
“여보, 그만 툴툴거려. 계속 쫓아다니면서 나한테 잔소리하지 마.”
그 순간 남편은 적잖이 당황하며 말했다.
“응? 내가 언제?”
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의 불안의 실체는 그랬다. 자신의 마음을 꼭꼭 숨기고 느끼지 말아야 했던 그의 어느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으리라.
어찌 되었건 간에 나는 더 이상 그의 습관적 툴툴거림을 받아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문 소리, 발소리만 나도 새까만 돌덩이가 가슴을 짓눌렀다.
몸은 뻣뻣하게 굳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행동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들이지만 여느 딸 못지않게 감정적으로 세심한 첫째와 표현은 잘 못하지만 어두워진 엄마를 아는지 부쩍 떼가 많아진 둘째를 위해서.
참 자연스러웠다.
가짜평화에 가짜평안을 느끼는 척 혼신의 연기를 펼치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숨을 턱 하고 뱉어내며 사정없이 울었다.
하나님 나 좀 살려달라고, 나 좀 도와달라고.
처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풍족한 은혜를 누렸던 그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늘 내 기도에 응답하셨고 명쾌하게 대답해 주셨다.
하지만 지금은 발가벗겨진 채로 광야에 억지로 내몰린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이 너무 아프고 괴로워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이놈의 환경도 정말 광야 같았다.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외국살이 탓을 하며 문화충격도 호기심으로 받아들이고 즐겼던 나의 과거는 이미 까마득한 책임전가에 먹혀들어가고 없었다.
그게 할 수만 있다면 외부로 책임을 돌리고 싶은 나의 인간적인 반응의 전부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나에겐 허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잡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점점 더 나를 가리는 게 힘들어졌다. 아무도 만나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남편은 왜 이렇게 힘이 없냐고, 기도하는 만큼 섬김을 보이라며 자기가 아이들을 등하교시키는 엄청난 섬김을 보이고 있지 않냐고 말했다.
숨통이 더 조여왔다.
내게 남아있는 건 하나님,
답답하게도 입을 꾹 다물고 계신 그분은 오히려 이 상황을 기다리신 것만 같았다.
그 메시지가 명확하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더 명백해 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날의 도래도 더 이상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