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지 못한 채 버텨온 날 들

03 관계 안에서 사라지는 나

by 노엘




바라고 바라고 바라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는 정말 큰 오류가 있다.

바로 ‘잠잠히’라는 말의 생략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사방팔방으로 답을 찾으러 뛰어다녔다.

이곳에서, 저곳에서, 내 마음을 샅샅이 뒤지고,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

터덜터덜 널브러진 마음을 정리하며 울었다.


안타깝게도 잠잠하는 것엔 내가 낄 자리가 없었다.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혹자는 그게 시간이라고, 세월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 일주일, 한 해를 만드신 분도 반박할 여지없이 하나님이셨다.

싫든 좋든 간에 하나님의 섭리아래 우린 살고 있다.

A.D. 와 B.C. 의 타임라인 안에 살고 있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그분의 섭리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나의 인생 또한 그분의 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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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동생이 놀러 왔다. 사실, 우린 성(family name)이 같고 조상이 한 명이라 족보를 파헤치면 먼 친척이겠으나

영국 교회에서 6년 전 처음 만났다.


내가 아무리 외향적인 들 아무한테나 가족 같다는 말은 지양하는 편인대도 불구하고

그 동생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진짜 피붙이 같은 느낌이 있었다.

우린 인연을 쭉 이어갔고 그 동생의 부모님까지 친해져 나는 작은엄마, 작은 아빠라 부르며 따랐다.

한국을 놀러 갈 때면 동생이 없어도 나만 작은엄마, 작은 아빠를 보러 가기도 했다.


친척동생은 영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런던에서 직장을 잡았다.

그리고 가끔 우리 가족을 보러 우리 집에 놀러 온다.


친척동생이 왔을 때 남편은 타인에게 늘 그렇듯 사회적 가면을 썼다.

친척동생의 외투를 걸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집안일과 아이들 돌봄을 더 열심히 했다.

심지어 매일 만성피로에 시달려서 피곤해했으면서도 남편은 친척동생과 내가 두 아이를 보고 있어 쉴 수 시간에 올라가 쉬지 않았다.

절대 바꿀 수 없다며, 꼭 운동 가야 한다고 툴툴거렸던 자신의 운동 스케줄도 ’아 그래? 그럼 뭐.. 원래 운동가긴 하는데 할 수 없지 ‘ 라며 자진납세 했다.

친척동생이 런던에서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고 생활비를 아낀다는 말에 마음이 쓰여 용돈을 챙겨주기도 했다.


친척동생의 원가정은 비교적 넉넉한 편인데도 남편은 마음 쓰여했다.

나는 질투는 아니지만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마치 당연한 순서에 밀린 기분이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때 나는 말했다.


”주지 말아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마음 쓰여서 주고 싶다면 마음을 쓸 곳은 나예요. “라고 말했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남편은, “무슨 말이야?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챙겨주고 싶으니까 그렇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는데…

근데.. 뭐, 알았어요. 여보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아도 들어주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내 마음을 알아줘서 알았다고 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나 이해가지 않지만 아내가 원하니 들어줬다’는 제목으로 그의 마음에 자랑스러운 일기처럼 쌓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 내가 그때 여보 말 들어줬잖아 ‘로 돌아왔다.

바란 건 아니었지만 동생이 오기 전 장을 보고 몇 박 며칠 밥 해주고 챙기는 내 노고는 그에겐 누군가 우리를 보러 오는 당연한 설정값이었다.


이번엔 상의도 없이 기차역에서 친척동생에게 용돈을 줬다.

동생이 돌아가고 용돈을 주는 문제를 상의했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그는,

“됐어. 나랑 여보랑 가치관 차이야. 나는 주고 싶어. 비싸서 못 사 먹는 대잖아. 얼마나 안 됐어.

얼마나 된다고 그래? 그리고 우리 가계에 피해 안 가게 내 돈으로 주는 건데 여보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상의할 이유는 없어! “

“난 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에요. 정말 모르겠나요?…….. “

“몰라, 나 지금 바빠!”

순간 ‘남편은 로봇이랑 말하는 게 더 편할 것’이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이 스치며, 그의 다그침에 다음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와 회복하고 싶어 한다던 남편은 자신의 회복법을 고수한 채 나와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이해라는 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의 마음을 긍휼 하게 볼 마음의 눈과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에겐 세 조건 모두가 없었고 ‘메타인지 없음’이라는 슬픈 사실만이 떠올랐다.


유난히 길었던 내 하루에 남편의 이 사건은 환부에 물을 대는 사건이 되었고

딱 물이 닿은 만큼만 아픈 눈물이 흘렀다.


물이 상처에 닿으면 순간 아프지만 금세 사그라드는 것처럼, 닿는 순간만큼 아프지 않고 견딜만해지는 것처럼.


어느새 내 마음은 단단해져 있었다. 포기와는 달랐다. 맷집과는 달랐다.

나는 여전히 울고 아파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건 나의 삶의 우선순위가 변했다는 뜻이었다.



섭리,

하나님의 안에서 길었던 내 하루도, 남편의 물 튀김도 어느새 내어놓고 있었다.


때마침, 태권도를 마치고 저녁에 돌아온 큰 아이가 내 방에 들어와 나지막이 위로를 건넨다.


“엄마, 엄마는 사도가 될 것 같아. 엄마는 슬퍼도, 화나도 기도하잖아.

엄마가 가장 많이 보는 책도 성경이잖아. 엄마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거라고 생각해.

엄마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도 엄마를 사랑하실 거야. 그리고 복 주실 거야 “



아멘.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