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말해준 단 한 문장

04 처음으로 나를 편들기 시작했다

by 노엘



부모가 우주여야 했던 시절, 우주가 무너져 버리면?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아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면?

안팎으로 시퍼런 멍이 든 가슴이 낫지 않고 있다면?


그건 단 한 번도 안전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건 단 한 번도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건 단 한 번도 내 편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가 무너지고 일 그러 진 채 어른이 된다.

세월에 짓이겨 이러한 아픔을 끄집어낼 필요를 찾지 못한다.

간혹 스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도 쓴웃음으로 넘기고 지나간다.


나도 그 내면의 바닥까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있는지도 몰랐다는 말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단기 선교사로 요르단에 파송되어 하나님을 만났을 때도 그는 분명 내 마음을 만지셨지만 그 길의 끝인 줄 알았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는 내 인생의 주권자이시기도 하지만 독재자는 아니시기에 내게 성장할 자유를 남기셨다.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이리저리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폭주하는 남편과 타향살이는 정말이지, 사방이 막힌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 같았다.

그나마 내 머릿속의 긍정회로를 돌려보자면 바꿀 수 없는 늙은 부모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내 가정이 낫다 여기며 소망을 비집어보았다.

누군가 내게 무한으로 사랑을 주고, 무한으로 나를 달래주고, 무한으로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울컥울컥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과연 내가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것이었을까.


기도로 만난 상담 선생님을 마주했을 때 울며 흐느끼며 쏟아내는 내 이야기 앞에 선생님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수고하셨어요. 최선을 다 하셨네요.”


최선을 다했다니.. 살면서 내가 이룬 것도, 최선을 다 한 것도 없이 남은 게 없다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나를 격려하셨다.

나는 울며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처음으로 내가 내 자신에게 ‘수고했다’ 인정해 준 순간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은 결과를 실패라 여기고 채찍질 했던 나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걸 그만 두었다. 그건 약한 것도, 합리화도 아니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처음 들은 진심어린 격려의 말을 듣고 배운 나는, 어린아이처럼 내 자신에게 틈만 나면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래, 난 지금까지 너무 애써왔어. 잘했어, 수고했어. 그게 그때 나의 최선이었어.‘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 건 비단 정보의 영역만은 아니었다.

활짝 열 귀와 눈을 준비하는 건 지능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였다. 좋은 땅에서 좋은 양식이 자라듯이.


그때부터였을까, 남편의 툴툴거림이나 미성숙함이 내겐 생채기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에 막이 쓰인 것처럼 어떤 것도 상처가 되지 않았다. 점점 흔들리고 찔려왔던 파동이 줄어듦이 느껴졌다.

처음엔 빨리 이 시기를 지나고 싶어 답답하기도 했지만 나는 이내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그게 섭리였고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어느새 바람에 몸을 맡기듯 나는 세월의 기류에 나를 맡기고 멀찌감이 떨어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혹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사람 본성의 격동만으로 충분히 우린 괴로울 수 있으니까(존 파이퍼 목사님 설교 인용).


다시 메아리처럼 돌아올 자책일지라도 되돌릴 길을 아는 사람은, 맛본 해방감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낼 힘을 배운다.


다시 어린아이가 된 듯 어색하게 나는 나의 마음을 만져보았다.


어쩐지 오늘은 잠이 잘 올 것만 같다.

미래의 두려움이 엄습해 올지라도 내가 믿는 분의 전능한 주권아래 나는 안전함을 믿는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

(시편 91편 1-3장)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