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04 처음으로 나를 편들기 시작했다

by 노엘




대학생 때 인턴을 한 적이 있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던 나는 모 기업의 사내 방송국에서 일했었다.

늘 복잡하고 어려운 게 일이라지만 소통과 정확함이 생명인 방송이라는 영역은 아마추어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도 뒤끝 없는 성격에 혼나도 마음에 두지 않았었고,

재능이 있었는지 카메라도 잡고 글도 쓰고 음향까지 조종할 수 있게 되어 어렸지만 꽤 인정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의 세계는 차가움을 떠나 경멸적이었고 보이는 아나운서들의 단정함과 멋짐에 비해 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린 생각이었지만 그땐 그랬다.


그래서였을까, 난 늘 무언가 때문에 힘에 겨웠다. 내 마음을 누르는 무언가가 날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겉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나운서들과 다른 스태프들의 프로페셔널함에 나는 한참 미치지 못해 보였으니까.


그렇게 인턴 생활 때의 내 모습을 정의 삼았고 기억의 저편에 던져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케케묵은 기억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고장 났었다고 알려주었다.

그건 외모가 아닌, 화려함이 아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아닌, 바로 나 때문이었다고,

거짓 목소리에 속은 나 자신이었다고 말이다.


나는 늘 나 자신을 꼬질꼬질한 헝겊인형 마냥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미운오리새끼처럼 다르고 볼품없어 보이는 모습이라 늘 생각했다.

비단 아나운서들 뿐만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들 멋지고 빛나는 데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사람 같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기적절하게 생각난 빛바랜 기억이 나를 또다시 울게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내 눈물은 아픔과 상처의 눈물이 아니었다.


회복,

더 이상 내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아도

차오르는 새 살 같은 기억들이 딱지가 지려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기억이 깨달음까지 연결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꽤 친분이 있는 이웃과 알상 대화를 하다가 이유 없이 갑자기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 또렷이 자각한 그날 밤, 집에 와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털어놓은 지 일주일쯤 지난 시점이었을까,

인턴생활에서 주변인이었던 그날이 떠오르더니 회사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의 많은 시점에서 나 스스로의 존재를 폄하하고 있던 거짓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음에도 그날이 이 순간에 떠오르다니.


하나님은 나의 자그마한 신음소리에도 응답하고 계셨던 것이다.

상처로 굳게 닫힌 마음들을 치유해 주시려고 이 날을 위해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이 기억을 시작으로 사진 같은 과거의 내 모습들을 여기저기에서 꺼내보아도 나는 늘 내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못난 내 마음의 기저가 보였다. 왜 내가 그토록 알 수 없는 억눌림이 있었는지도 똑똑히 보였다.

너무 아프지만 나는 모든 기억들을 똑바로 직면했다.

작은 기억 하나도 허투루 흐른 세월이 아니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 같았다.

’ 너는 소중한 존재야, 너는 너 자체로 멋져, 너는 한 번도 빛나지 않은 적이 없었어 ‘라고.


이는 분명 어른이 되고 누구나 겪는 정체성의 발현이 아니었다.

깊이가 달랐다. 내 힘으로 이렇게까지 기억의 연결을, 인생의 모든 시간을 이토록 정확한 퍼즐처럼 짜 맞출 순 없는 거였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로스,

하나님의 시간.


지금이 바로 그때.


늦지 않게 나의 시간이 도래했다.


그래, 마침내 기억 속에서 또렷이 들리는 목소리가 생각났다.

“이렇게 큰 행사에서 여자가 카메라 잡고 있으니까 엄청 멋있더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