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처음으로 나를 편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혼자였다.
동정을 바라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확인할 곳도, 배울 곳도, 인생의 흔들리는 항해를 불안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조차도 없었다는 뜻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하나님을 피해 있었다.
사람의 성장과정의 가장 중요한 시기 동안 하나님 없이, 중심 없이 세상을 마주하는 어린아이는
폭풍우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잡아도 거대한 폭풍에 또 휩쓸려가고 또 휩쓸려 갔다.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철저히 한계가 명확한 내 힘뿐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의 힘이 있지도 않았다.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쓰는 엄마에게 눌리고
반항한다며 엄마의 부추김으로 인해 아빠에게 처맞고
나가면 친구들에게 웃음과 비위를 팔고
슬픈 어느 날들의 끝에 거울에 비친 나에게 ‘괜찮아, 너만 그렇게 힘든 거 아니야.’라고 채찍을 휘두르는.
“존재해야 할 이유를 몰랐을 것 같아요..”
일련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상담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누구도 내게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면
남의 부모 욕하지 못하니 ’ 어머니가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하셔서 그런 걸 거야. 어머니 입장에서는 잘못됐지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우리 남편이 내게 정서적 폭력을 휘두른대.‘라고 어렵게 나누면
‘둘 다 너무 이해가 가. 들어보니 너도 그렇지만 남편분도 나름대로 얼마나 힘들까’.
뒤늦게나마 나는 깨달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말을 아끼게 되었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건 포기가 아닌 시작이었다. 서운하지도 않았고 더더욱 그들을 비난하지도, 추궁하지도 않았다. 그냥 두었다.
정말 그러고 싶어졌다. 하나님 손에 맡기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가 위로가 되기로 했다.
공감은 나이가 들어도 배울 수 있는 학습의 영역이지만
동감은 한 영혼을 사랑하여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안아주는 진정한 위로다.
놀랍게도 그건 나같이 상처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게 얼마나 귀한 마음인데요. 그들이 받을 준비가 안된 거예요.
이제 그만 노력하고 하고 싶은 거 해요. 스스로를 좀 더 아껴주세요. 애썼어요. 너무 수고했어요. “
선생님은 상담 3개월이 지나도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라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시기적절하게 들어야 하는 말들을 듣는다는 건,
이런 선생님을 만났 다는 것도 큰 축복이었다.
“선생님, 근데요, 제가 선생님을 정말 신뢰하고 이 자리가 저에게는 너무 안전해요.
비교는 아니지만 저번 상담선생님께는 제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상담이 끝나고도 계속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
계속 그분께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힘든 적이 많아요.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설사할 말이 있어도
그냥 그대로 두고 상담시간에 자연스럽게 꺼내게 되면 꺼내고 그렇지 않으면 알아서 해결돼요. 선생님께 빨리 말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근데 전 늘 그랬던 것 같아요. 계속 제 마음을 설명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자리는 제게 그렇지 않아요. “
“그건 노엘 선생님 주위에 좋은 어른들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어때요? 편하죠?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마음이 놓이지 않나요? 정말 잘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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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수건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린도후서 3장 13-18절)
그리고 그걸 인정하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진리는 이 땅에서 없어지지 않지만
우리가 진리를 볼 수 있을 때는 이 땅이 아닌 천국에서 뿐이다.
세상에서 천국을 엿볼 순 있어도 그것 또한 일부에 지나지 않다.
이 글이 한 낱 크리스천의 합리화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누구든지 썩어 없어질 존재라면?
우리가 그렇다.
당신도, 나도 언젠간 땅 속에 묻히거나 재가 되어 썩어 없어질 존재들이다.
우리를 기억하게 하는 건 우리가 세상에 뿌린 마음들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있는 그대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사랑으로 기도하는 법을 처음 배우게 되었다.
위대한 사랑 많이 남는 법,
예수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