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리셋되는 관계

03 관계 안에서 사라지는 나

by 노엘




사이가 안 좋다는 말로 관계를 소개하게 된 안타까운 시점은

서로의 대한 신뢰가 깨진 순간도,

누가 누구를 싫어하게 된 시점도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미안하다는 말도, 그에 따른 수선행동이 전혀 없어진 대로 고착되고부터

남편은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됐다.

안미안하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상담사가 하라고 시킨다면 그때 하겠다고,

그전까지는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너무 피로한 상태로 관계라는 끈 안에서 나는 버텨야 했다.


번듯한 직업과 공부를 잘해온 이력들,

그런데 정서 유아기라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그게 어떤 개념인지 잘 몰랐는데 점점 실감이 나는 순간들이 쌓였다.


세 살 어린아이에게 어른의 언어로 설명하면 당연히 알아듣기 힘든 것과 같았다.

기능은 어른이나 정서적으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든 것이 그 사람에겐 부재했다.


결국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고 난 뒤에야 나의 방향성은 명백해졌다.


내 인생을 사는 것.


남편은 정말이지 예측 불가능 했다.

갑자기 별 것 아닌 일에 수틀리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 감정이 사그라 질 때까지 아이같이 억지를 부리고 저항했다.

마치 엄마 말에 다 짜증 난 십 대 아이들의 반항 같았다. 말 그대로 애가 셋이 된 기분이었다.

이쯤 되자 가장 큰 아들이 된 남편이 밉기보다는 존재의미가 희미해져 갔다.

더 이상 슬프지도 않았다.


평범한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깨어지고 난 뒤, 나는 완전 그에게 질려버렸다.

최소한의 기능적인 일만 하고 대화나 감정의 교류는 전혀 없었다.

스킨십이나 눈을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점 점 더 활기를 띄었다. 너무나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실제로도 그렇게 말했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애들도 잘 크고 있고, 나도 일도 잘되고 있는데 뭐가 문제예요?”


정말 문제가 뭔지 몰라서 묻는 그의 말 끝에 나는 또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건 처음처럼 편안해졌지만 그 와의 관계는 좀처럼 리셋되지 않았다.

더, 더, 더 그는 굳어져갔고 소위 ‘이성적’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자랑스러워했다.

심지어 목사님의 설교스타일이 이성적이라서 좋다고 말하고 다녔다. 성경은 말 그대로 눈으로 글을 읽고, 들리는 대로 워딩을 듣는 책이 아닌데도

논리 정연한 그의 뇌는 세상을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에게서 독립해야 할 시간임을 알았다.


처음에는 많이 슬펐지만 우상이 된 남편의 그늘을 알았을 때보다는 아니었다.

분명히 벗어나야 할 자리라는 걸 확신으로 마음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남편이라는 우상이 세워졌었던 내 마음의 빈자리를 만지셨을 때

나는 세차게 울었다. 그 패인 자국이 점점 옅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많이 아팠다.


직장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너무 케어를 못 받고 자란 남편을 위해 직장을 다시 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 1년 후부터 쭉 해외생활을 시작했다. 자격을 갖출 만큼 열심히 공부한 건 그였지만, 나의 시기적절한 서포트도 한몫을 했다.

나는 그의 일자리 적합도에 맞춰 지원시기와 지원할 곳을 알려주었고 지원하는 곳마다 족족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셨다.

그렇게 그는 점 점 직업적으로 성공가도를 빠르게 달리게 되었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내가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 졌을 때,

“나는 이제 하고 싶은 만큼 직업에서도 많이 누린 것 같아. 여보 하고 싶은 거 해. 이제부터 내가 서포트해 줄게.”라고 했던 말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40, 50대 때 가장 일을 왕성하게 할 시긴데 나도 일할 거야. 나도 하고 싶어. 솔직히 여보는 이제 시작해서 취직한대도 많이 못 벌잖아.” 로 돌아왔다.


한 낱 꿈처럼 모든 게 흩어지고 덧없어졌다.


아무렇지 않게 나만 빼고 리셋된 관계는 ‘너 왜 그러고 있어? 네 마음도 리셋시켜. 그게 왜 상처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파하는 내가 이상한 듯이.


그래도 살아가야 했다.


침묵 밖에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그분이 일하신다는 확신으로.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