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너의 시간 속으로 10화

by 다별

Le Baiser[르베제]. 영어 제목은 The Kiss!

파리 로댕 미술관(Musée Rodin)에서 서연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 로댕 미술관에 처음 갔었는데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보이는 이 작품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불문학도로서 파리에서 어학연수 중이었던 그녀가, 그 겨울에만 다섯 번이나 로댕 미술관에 갔던 것도 어쩌면 이 작품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로댕의 [지옥의 문]에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라는 제목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5곡에 등장한다. 아름다운 프란체스카는 집안의 정략결혼으로 절름발이 지오반니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되지만 결혼식의 대리인으로 참석한 동생 파올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원탁의 기사 랜슬롯 경과 왕비 기네비어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함께 읽고 심취한 나머지 파올로는 프란체스카에게 키스를 하게 된다. 조각상에서 이 책은 파올로의 손에 들려있다. 결국 두 사람의 불륜 관계를 알게 된 그녀의 남편이 둘을 살해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서연은 다시 이 조각상 앞에 서있다.

10년 전에는 이 작품의 외면적 심미성에 빠져 넋을 잃고 있었다면 지금은, 슬프도록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제는 그 이면에 숨겨진 비극적인 이야기도 알고있기 때문에...

선우와의 사랑이 그런 것처럼.


이렇게까지 미적으로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서연은 선우와 함께 한 모든 '처음'이 설레었다. 처음 맞잡은 두 손, 첫어깨동무, 첫키스, 그리고 그와 보낸 첫밤도.


***

무남독녀 외동딸로 엄마의 과보호 속에 자란 서연은, 결혼이라는 건 같이 있고 싶은 남녀가 마침내 같이 자고 싶을 때 하는 것이라고 단순화시켜 생각하곤 했었다. 적어도 선우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 여자가 한 남자하고만, 한 남자가 한 여자하고만 함께 있고 함께 자고 싶은 만남의 신비를 신의 뜻으로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마침내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는 의식이 싫은 건 아니었다. 그녀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런 의식을 거치기를, 그리고 그녀의 식은 조촐하고 아름답고 자기다운 것이기를 꿈꿨다. 집안끼리의 화려한 겉치레, 하객의 눈을 더 신경쓰는 결혼식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결혼한 그녀의 부모는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화 속 왕자와 공주 같은 커플에 대한 환상 따윈 서연에게 없었다. 자기 또래들이 그런 환상을 갖고있는 걸 보면, 서연은 굳이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그들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선우를 만났고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이만큼 사랑해줄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간 남들처럼, 선우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둘만의 의미있는 결혼식을 하는 미래도 아련히 꿈꿔보곤 했지만 꼭 그런 의식을 거치지 않더라도 선우의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갔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자신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을 만큼, 서연은 그렇게 선우를 사랑했다.


***

선우가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눈이 펑펑 내린 날, 신난 강아지들마냥 홍대 앞 여기저기를 쏘다니다가 둘은 어느새 서연이 사는 오피스텔 건물 앞에 와있었다.


"벌써 다왔네. 추운데 어서 들어가. 서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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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통역사, 라디오 방송작가 겸 진행자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어느 날부턴가 나다움을 그려가는 글을 씁니다. 고여있던 슬픔도, 벅차오르는 기쁨도 이제는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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