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자유, 그 자체다.
내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기준은 “원하는 시간에 술을 마실 수 있는가”이다. 시간이 될 때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건 갑자기 일을 해야 하거나 운전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는 곧 편안함과 여유를 의미한다. 가령 여행지에서는 아침에 가볍게 맥주나 샴페인을 곁들여도 아무 문제가 없고, 이른 오후에 와인 한 잔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주말은 당장 출근할 만큼 일이 밀려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나같은 직장인에게 아무 때나 술을 마실 수 있는 건 자주 오지 않는 기회이자 특권이다.
나는 관심사가 늘 바뀐다. 세상은 넓고 해보고 싶은 건 너무 많아서, 하나를 진득하게 붙잡고 있기보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느라 손에 쥔 취미를 금방 손에서 놓아 버리기 일쑤다. 그런 변덕쟁이인 내가 10년 이상 꾸준히 짝사랑하는 것은 책과 술이다. 활자들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고 혀에게 즐거움을 주는 행위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질린 적이 없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흥미롭고 먹는 걸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에게 딱 한 가지 불운이 있다면, 내 혀는 메모리 기능이 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 혀는 비메모리 반도체마냥 전산처리는 되는데, 그 맛을 저장을 못한다.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 그게 무슨 맛이었더라 하고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 것이다. 길이나 이름은 쉽게 외워지는데, 왜 맛은 그렇지 못한지. 쉐프나 소믈리에만큼 섬세한 혀를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은 진작 버렸다. 그나마 '막혀'들 중에는 섬세한 편이라 위스키나 청주를 마실 때 이런저런 향을 잡아내기는 하니, 주류회사에서 일을 할 게 아니라면 이 정도면 되었다 싶다. 내가 읽고 그 맛을 떠올릴 수 있도록, 혀에 갓 닿은 듯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도록 최대한 상세하게 글로 남기는 수밖에.
기록을 남겨야 할 만큼 씩이나 좋은 술만 먹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가끔 운이 좋아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가격표가 붙은 와인이나 위스키를 맛보게 될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론 어디까지나 사회초년생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카드를 내밀 때 잠시 망설이게 되는 (하지만 망설이지 않은 척하며 짐짓 캐주얼하게 결제하는) 가격 범위 내의 위스키와 와인들을 주로 마신다. 가끔 기분을 내기 위해 와인바나 싱글 몰트바, 혹은 전통주 전문점에서 한잔 하고는 하지만, 이들은 안타깝게도 분위기와 주변인들과의 대화에 이끌려 완전히 집중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깊게 파보고 싶은 술들은 사와서 남편과 집 식탁에 앉아 마시며 기록에 남겨둔다.
집에서 마시는 술, 즉 홈술의 또다른 특권은 시간과 공기와의 접촉이 만들어내는 퇴적의 맛이다. 이건 와인이나 약주와 같은 발효주보다는 증류주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한데, 진이나 위스키처럼 도수가 높은 술은 밀봉만 잘해두면 크게 알코올이 날아가지 않는 데다, 지속적으로 공기와 접촉하며 처음 보틀을 열었을 때와는 또 다른 풍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가만 생각하니 발효주 중에서도 탁주는 냉장 보관하다 보면 탁주 속 효모가 점점 당분을 분해하고 탄산을 많이 만들어내 날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그런 것을 따질 새 없이 비 오는 날은 한 병을 다 비우기 마련이지만. 같은 시기에 제조된 탁주를 여러병을 사놓을 수 밖에 없는 좋은 핑계가 생긴 것 같다.)
아무리 기록을 열심히 남긴다고 해도, 아마 내가 느끼는 대부분의 맛은 그렇게 표현할 찰나도 없이, 혀에서 파도처럼 부서지고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래도 그런 찰나의 맛들을 그러모아, 기록할 예정이다. 보통은 인스타그램에 간단히 특징들을 정리해 써놓는 게 대부분이지만, 긴 이야기를 하고싶은 술은 가끔 이 곳에 기록하려 한다. 잡지식을 좋아하는 덕에 여기저기서 주워듣는 이야기들과 내가 느끼는 맛 이야기들을 같이 한데 엮어 여기에 모아볼 수 있겠다. 누군가에게는 신선함을,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를, 누군가한테는 아 맞다, 이런 맛이었는데, 하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글 묶음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