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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Sep 04. 2022

피에몬테 Piemonte] 와인 창고를 개조한 호텔과

Poderi Luigi Einaudi

서울과 같이 빠르고 복작복작한 도시에 살다 보면 가끔 멀미가 날 때가 있다. 극도로 편리하긴 하지만,  늘 소음에 둘러싸여 있고 지나치게 많은 자극이 도처에 산재해 있기 때문인듯 하다.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을 때 내가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리는 곳은 들리는 건 바람소리밖에 없던, 피에몬테 돌리아니 마을 근처 언덕 위에 위치한 한 와이너리다.


포데리 루이지 아이나우디 와이너리는 (편의를 위해 아이나우디 와이너리로 부르겠다.) 피에몬테 내 랑헤 지역 많은 와이너리들이 그렇듯 대대로 와인을 만들어 온 오랜 가족경영 와이너리다.  이 와이너리는 랑헤 지역 내, 와이너리들이 산재한 알바나 라 모라 마을에선 조금 떨어진 돌리아니라는 작은 마을 근처 한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래서 더 고즈넉하고 목가적인 풍경에 폭 싸여져 있다.

왼쪽이 와이너리 건물, 오른쪽이 호텔로 사용하는 건물
가만히 서있으면 바람소리만 들리던, 와이너리 뒷편 라벤더 밭.

아이나우디 와이너리는 야트막한 언덕 위 두 건물을 호텔과 와이너리 건물로 사용하고 있는데, 주변 언덕에는 포도밭들이 펼쳐져 있다. 와이너리 건물과 호텔 사이에는 작다면 작고 넓다면 넓은, 라벤더 밭이 펼쳐져 있다. 라벤더 밭 그 가운데 서서 주변 언덕들의 포도밭들과 그 사이 드문드문 위치한 단층집들을 보며 잠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세상 복잡한 일들이 작게 느껴진다.

아이나우디 와이너리 내 호텔의 응접실. 투숙 전 웰컴드링크를 주셨다.
체크인 전 대기할 수 있는 작은 서재
아침을 먹었던 테라스. 조식도 로컬 재료를 사용해 좋았다

우리는 피에몬테 지역을 방문하며 이곳에 연락하여 프라이빗 투어와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은 8개의 방과 2개의 스위트로 구성되어 있고, 포근하면서도 안락한 디자인이다. 샤워와 화장실은 최근 모두 리모델링해 화이트-아이보리 톤의 스톤 피니쉬로 모던하면서 깔끔하게 구성이 되어있었다. 도착하면 웰컴 드링크로 우리를 맞아주고, 저녁엔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하니 프라이빗 드라이버를 따로 불러주었다.

다음날은 프라이빗 투어. 셀러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여기도 다른 피에몬테 와이너리들과 같이 지역에서 기존에 써오던 대형 오크통뿐만 아니라 프렌치 바리끄, 토기, 콘크리트 챔버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특히 오래된 와이너리 건물 지하를 파낸 곳에 대형 콘크리트 챔버들이 쭉 일렬로 서 있고, 현대화된 시스템으로 각 챔버를 관리하는 게 퍽 인상 깊었다. 지역 내 와이너리 중에서는 꽤 프로덕션이 많은 규모가 큰 와이너리인 편에 속하는지라, 출하를 대기 중인 와인들이 보관된 곳에 들어갔을 땐 사실 좀 압도되었다.

대형 콘크리트 숙성챔버. 사람키의 2.5배쯤 되어보였다.
전세계로 출하되는, 라벨링 전의 와인들을 보관하는 곳.

사실 돌리아니는 피에몬테 지역 내에서도 조금 외진 지역으로,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는 바롤로 마을과 바르바레스코 마을을 주변으로 한 특정 마을들에 위치한 밭에서 재배한 네비올로 만을 써야 하는데, 아이나우디 와이너리는 그곳들과는 거리가 좀 있다. 아이나우디는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를 만들 수 있는 밭들을 매입하는 동시에 돌리아니 지역의 특색을 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품종을 돌리아니 근처의 포도밭에서 재배했다. 다른 품종도 사용하지만 특히 네비올로는 일전에 체레토나 바타시올로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떼루아에 크게 영향을 받는 품종으로, 랑헤 언덕 내 토양 구성이 굉장히 상이하고 다양한 만큼 또 다른 맛을 내기에 적합했다.

피에몬테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던 대형 오크통
오랜 와인들을 특별히 선별해 보관하는 셀러
프라이빗 투어를 위한 테이스팅 룸

투어의 마무리는 역시 테이스팅으로, 투어를 이끌어 줬던 비토리아가 우리를 위해 좋은 싱글 빈야드들을 많이 내어주었다. 아이나우디의 바롤로 까누비 (Cannubi) 싱글빈야드 2013, 바롤로 부시아 (Bussia) 싱글빈야드 2017, 바롤로 떼를로 (Barolo Terlo Vigna Costa Grimaldi) 싱글빈야드 2016, 바롤로 몬빌리에로, 그리고 바르바레스코를 시음하였는데, 모두 특징적이고 각자의 강렬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먼저 몬빌리에로는 리코러스, 로즈마리가 중심을 이루는 허브향이 강한 바롤로였다. 산미가 있는 편이며, 탄닌이 알갱이가 부드럽고 잘았다. 아이나우디 와이너리가 최근 포도밭 매입 후 이제 막 출시하기 시작한 싱글빈야드로, 꽃과 허브가 많이 느껴져 좋았다.

까누비는  가장 남성적인, 그래서 가장 전통적인 바롤로 느낌으로, 허브 위에 타르, 플럼 같은 과실 맛과 짭조름한 맛이 밸런스를 이루는 와인이었다. 2013년 빈티지인 만큼 잘 숙성되어 가볍고 부드러운 탄닌감에 다른 무언가에 곁들이기보다는 단독으로 즐겨야만 하는 퀄리티였다.

앞서 언급한 몬빌리에로와 카누비가 샌드 비중이 높은 포도밭이라면, 부시아는 라임스톤이 주요한 구성 성분이 되는 떼루아다. 부시아는 비토리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디빌더 같은 바롤로로, 탄닌도 더 강렬하고 알갱이가 크다. 타바코와 플럼, 타르가 느껴지면서도 과실 맛이 좀 더 강렬했다. 떼를로는 로즈마리와 딜 같은 허브 사이사이에 장미 같은 생화 향이 느껴졌다.

바롤로 싱글빈야드들에 비해 바르바레스코는 아직 어린 2019년 빈티지로, 숙성 적기에 도달하지는 않아 어렸음에도 탄닌이 굉장히 부드럽고 긴 잔향을 남겼다. 붉은 베리류가 주류를 이루는 과실 향에 뿌리채소, 허브류들이 기분 좋게 어우러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너트류의 향이 올라오며 부드러운 밸런스를 자아냈다.


아이나우디 와이너리에서의 경험은 더없이 풍부했다. 오랜시간 가족이 경영하고 기거한 와이너리와 작은 호텔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다양하면서도 상당히 훌륭한 와인을 마실 수 있었다. 혹여나 피에몬테 지역에 방문하게된다면 하루는 꼭 이곳에서 머물기를 권한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라벤더 밭에 서있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Poderi Luigi Einaudi Winery


아이나우디 와이너리의 시초였던 루이지 아이나우디는 이탈리아 역사에서 핵심적인 인물 중 하나로, 경제학자인 동시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탈리아의 대통령(1948-1955)을 지낸 인물이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끝난 이후, 그는 이탈리아 국영은행의 은행장을 지냈고, 추후 대통령까지 올랐는데, 그 와중에도 그의 고향 땅에 있는 와이너리의 밭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꾸준히 관리하고 지켜내 온 이 와이너리는 현재 바롤로부터 바르바레스코, 랑헤 로쏘등 다양한 라인업을 자랑하는데, 가격대가 전반적으로 접근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맛이 섬세하고 주질이 훌륭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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