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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Feb 05. 2023

좋은 시작점, 닷사이

Dassai, 닷사이


누군가에게 닷사이를 소개하려 하면 사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대번에 말할 것이다. 일본은 지역별로, 마을별로 많은 사케가 있고 수많은 양조장이 있는데 왜 하필 맨날 보고 듣는 닷사이냐고.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아직 나의 사케 경험이 짧은 탓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만큼의 이름값이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새로운 술 종류에 발을 들일 때 지나치게 좋은 술을 접하면 그 맛을 온전히 즐길 역량이 부족할 수 있고, 지나치게 질이 떨어지는 술을 만나면 그 술 종류 특유의 맛을 즐겨보기도 전에 주종 자체에 실망하고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편견은 쉽게 길러지는 법이니까. 한국의 한 이자카야에서, 일식집에서, 일본에서 지나가다 들어간 술집에서 그저 적당히 준마이나 준마이 다이긴죠면 좋은 거라던데, 하고 고르던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입문주”라는 것이 필요한데, 그 역할로 닷사이 만한 게 없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에서 사케라면 닷사이, 쿠보타 만쥬, 핫카이산 세 술이 가장 유명한데, 구관이 명이라는 말이 있듯 일본 현지에서도 동네 야키토리집에 가면 오늘의 술에 핫카이산이나 쿠보타 만쥬가 있을 만큼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케는 우리 전통주처럼 쌀로 담는 술이지만, 실상 재료나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누룩과 쌀로 술을 빚지만, 그 누룩은 밀로 빚을 수도, 수수로 빚을 수도 있다. 누룩을 띄워 다양한 균을 포집해 술을 만드는데 활용하다 보니, 그 지역이나 누룩에 따라 술맛이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일본은 쌀과 코우지(麹), 그리고 효모를 활용하여 술을 빚는데, 코우지로 먼저 쌀을 당화하고 그 당화된 쌀에 효모를 활용해 술을 빚는다. 다양한 균을 활용하기 보다는 특정 균을 활용하여 술을 담다 보니 우리나라의 자연스러운 맛보다는 조금 더 정제된 맛을 낸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술을 거를 때 술덧을 덜 걸러 낸 막걸리와 유사한 색감의 니고리자케, 필터를 하지 않은 무로카와 같이 날 것의 맛을 즐기는 사케도 있지만, 많은 경우 맑고 깔끔한 맛이 선호된다.


그 중 유독 나에게 “일본 스럽게” 정제된 맛을 주는 사케가 바로 닷사이다. 닷사이는 야마구치 현에 있는 아사히 주조에서 만드는데, 아사히 주조는 깔끔한 술맛을 위해 일본에서 제일 먼저 원심분리기를 도입한 회사다. 대부분의 사케 양조장은 주로 압착을 통해 술덧을 거르는 방식을 많이 활용하는데, 많은 경우 생산력 증대를 위해 “세메” 즉 압을 많이 주어 최대한 많이 짜내는 방식을 활용해왔다 보니 질감이나 맛에서 깔끔함이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아사히 주조는 원심분리 기술을 도입해 술덧을 최소화하며 술을 분리해 내서 굉장히 깔끔한 맛을 낼 수 있었다. 요즘은 몇몇 양조장들이 원심분리기를 도입하는 추세라고는 하나, 아무래도 비용이 비싸 여전히 널리 보급된 편은 아니라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최신 기술을 집약한 산업화된 도가인가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독하게도 전통을 고수하는 부분도 많다. 여전히 쌀을 사람이 직접 씻고, 코우지를 기르기 위해 밤을 새 가며 사람이 온도를 직접 조절한다. 그런 노력과 기술이 모두 합쳐져 닷사이를 이루는 것이다. 닷사이는 그 덕에 다양한 향을 내면서도 그 특유의 깔끔함과 깨끗함, 맑음을 유지한다.


최근 도쿄를 방문했을 때, 사케를 다양하게 시음할 수 있는 긴자의 이마데야 샵에 예약을 걸고 그 옆, 닷사이 플래그쉽 스토어에 잠시 들렀다. 아사히 양조장을 직접 방문을 할 수는 없었지만 닷사이 샵에서는 닷사이 45, 39, 23, 스파클링, 그리고 비욘드 까지 다양하게 시음을 할 수 있었다. 닷사이 테이스팅 코스로 각 도정도에 따라 45, 39, 23을 마셔볼 수 있고, 스페셜로 비욘드와 퓨쳐 (정미율 8%) 도 마셔볼 수 있다.

닷사이에서 제공하는 테이스팅 코스 메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다양한 도정도를 비교하며 마셔볼 수 있다.
닷사이에서 판매되는 각 술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도정도가 50% 이상, 즉 정미율 50% 이하는 모두 준마이 다이긴죠로 분류되지만, 닷사이는 이 정미율을 숫자로 내세워 다양한 라인업을 만든다. 닷사이 23은 곡물 향 류의 단맛이 은은하게 나고, 약간 당밀의 맛이 느껴진다. 가장 깔끔하고 라이트 했다. 반면 39는 과실 단 맛이 강하게 나는, 풋사과와 파인애플 맛이 느껴지는 사케였다. 드라이하긴 하지만 향이 달아 희석된 고량주 같은 느낌도 났다. 내가 방문한 당시엔 45가 테이스팅으로는 품절이라 대신 닷사이 스파클링을 주었는데, 닷사이 스파클링은 23처럼 곡물 단맛이 주력으로 났다. 약간 맥주처럼 맥아와 보리의 단맛이 느껴지면서 가볍고 얇은 탄산 질감이 더해졌다. 닷사이 비욘드나 퓨처는 23과 곡물 향은 비슷한 결을 유지하지만 좀 더 깔끔하고 드라이했지만, 가격이 그렇게 갑절로 차이 날 만큼은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적절하다 했던 술은 역시, 닷사이 23이었다. 쌀을 꽤 많이 깎아내고 압없이 걸러내 잡맛은 없으면서도, 기분 좋은 곡물 향을 유지해서 좋았다.


나도 아직 드넓은 사케의 세상을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재미있는 세상 임에는 틀림없다. 일본의 사케 양조장 씬에선 수많은 종류의 사케 전용 쌀과 효모 균들이 장인 정신과 만나 다양한 술을 만들어지고 있어 이제 막 어둠의 시기를 지나와 다시 빛을 보려 하는 우리의 전통주 옆에 서서 보자면, 부러운 부분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나와 같이 새롭게 사케를 탐험해보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 시작점으로 닷사이를 추천한다.



아사히 주조 Asahi Shuzo


일본 야마구치 현에 위치한 양조장으로, 일본 내 높은 명성을 가진 사케 제조자 중 하나이다. 양조장 중에서 처음으로 원심분리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전통 방식을 지켜내고 있는 메이커로, 닷사이 중에서 비싼 사케들의 경우 크리스티나 소더비와 같은 경매에도 종종 등장한다. 폭넓은 가격 내에서 다양한, 좋은 품질의 사케를 만들며, 일본 내수보다 해외에 더 공을 들이는 브랜드이다. 개인적으로 작은 로컬 브랜드를 더 선호하지만, 마케팅의 뒷면에는 뒷받침할 실력이 확실히 있는 제조자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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