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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Jul 24. 2022

내 와인 인생의 터닝 포인트

[Batasiolo barolo, Cerequio. 2006]


무엇을 먹는다는 그런 일상적인 행위에서도 삶의 궤적을 바꾸게 되는 터닝 포인트가 한 번씩 있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향신료를 먹는 내가 입에도 못 대던 고수나 타이 바질을 내가 직접 키워서라도 먹게 만든 베트남 시골의 한 이름 모를 쌀국수 집, 어릴 때부터  싫어하던 돼지고기를 한 시간씩이나 기다려가며 먹으러 갈 만큼 맛있었던 백탄 구이집. 그런 집들은 대개 누군가에겐 평범하지만, 내 편견에 가려져 있던 그 음식만의 특색을 살려내 그 매력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해주었던 듯하다.


이 와인이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터닝 포인트. 이 와인은 나에게 피에몬테 와인의 매력을 열어 준 와인이자, 고숙성 와인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 와인이었다. 사실 이 와인이 특별한 와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비욘디 산티나 가야처럼 한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도 아니거니와, 바롤로라면 응당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름이 꼭 바타시올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와인을 마시기 전에도 나는 이 전에 글을 썼던 Proprieta Sperino Lessona와 같이 네비올로 품종을 늘 선호해 왔다.

몽고네에서 식사할 때 추천해주셨던 올빈 바타시올로 세레퀴오 2006. 식사와의 조합이 엄청났다.

그럼 왜 이 와인이 나에게 특별했을까.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딱 적절한 숙성 시기에, 완벽한 이탈리안 코스 식사 중에 만나서였을까.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 와인을 계기로 나는 코로나 이후 3년 간 막혀있던 여행의 첫 기착지를 피에몬테로 정했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와중에도 피에몬테에서 만난 와인들은 전부, 진부한 표현을 좀 빌리자면 인생 와인들이었다. 바타시올로 바롤로를 통해 만난 피에몬테에 반해 내년 이 시기 즈음 다시 동일 지역에 방문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돈을 벌어 40대에는 토리노에 아파트를 하나 사야겠다는 인생의 목표도 생겼다. 그러니 이 와인은, 내 와인 생활에 있어 큰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셈이다.


이탈리아에는 정말 다양한 토착 포도 품종이 있고, 각 지역에서는 그 토착품종의 개성을 살려 다양한 와인이 나온다. (물론 대중성이나 밸런스를 위해 슈퍼 투스칸과 같이 외래품종과 블랜딩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이는 추후 또 다룰 예정이다.) 그중 네비올로는 주로 랑헤 언덕 지역에 걸쳐 넓게 재배되는데, 바롤로 마을을 중심으로 몇 개의 마을에서 키워낸 네비올로를 정해진 숙성기간 내 특정 방식에 따라 와인을 제조하면 비로소 바롤로가 된다. 랑헤 언덕 지역 내에서도 위치에 따라 수확시기가 10일 이상 차이가 날 만큼 재배 위치에 따라 일조량과 토양이 다르다. 그에 따라 빈야드에 따른 맛의 차이도 큰 편인데, 이 와인의 경우 지역 내 포도밭 중 최고라고 꼽히는 세레퀴오 밭에서 나는 네비올로만을 사용하여 만든다.

여담으로, 이 잔 모양 디켄터도 굉장히 탐이 났었다. 그대로 마실뻔?


이 와인은 체리를 메인으로 한 경쾌한 과실 향으로 시작한다. 병을 연 직후에는 기분 좋은, 아주 미세한 타닌이 혀를 감싸면서 과실 향이 메인을 이루다가, 점차적으로 큐민이나 아니스 같은 향신료 향, 맵쌀한 향신료 향이 올라온다.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그 흙향, 말하자면 뿌리채소와 화분에서 나는, 그 기분 좋은 흙향이 꾸준히, 하지만 너무 튀지 않는 선에서 올라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실향과 타닌이 다시 올라오는데, 뒷쪽에 올라오는 타닌은 최초의 질감과는 달리 알알이 느껴지는 좀 더 러프한 질감이 있다.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훌륭한데 캐릭터는 놓치지 않은, 그런 기분 좋은 와인이다. 빈티지 별로 차이는 있지만, 네비올로는 늦게 익는 품종이라 수확도 늦은 편인 데다 특유의 캐릭터가 강해 주로 숙성을 오래 하는 편인데 이 와인도 최적 숙성 시기에 도달하였을 때 마셔 강한 캐릭터가 어느 정도 중화되면서 밸런스 좋은 와인이었던 듯하다. 2006년 빈티지는 지금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데, 또 한 번 맛 볼 기회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입맛을 다시고 있다.


*몽고네는 단언컨대 그 코스만으로도 훌륭한, 남편과 나의 오랜 '최애' 레스토랑이지만, 그들의 숨은 장점은 와인 라인업에 있다. 정말 다양한 와인을 구비하고 있으며, 올드 빈티지도 굉장히 많은 편. 시간이 된다면 꼭 방문을 권한다.


Batasiolo

바타시올로 와이너리는 대개 이 지역 와이너리들이 그렇듯, 오랜 시간 와인업에 종사한 집안에서 운영하는 가족경영 와이너리이다. 다만 그 규모는 꽤 큰 편으로, 우리나라 와인샵이나 이탈리아 현지 식료품점에서 모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 라인업을 가지고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네비올로 품종이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또 다른 피에몬테 토착품종인 바르베라와 같은 와인도 제조하며, 피에몬테 와인을 입문하기 무난한 와이너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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