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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Mar 25. 2022

술과 기억의 상관관계

[Proprietà Sperino, Lessona. 2011]


술은 늘 기억과 맞물린다. 일종의 시너지 효과라고 해야 할까, 맛있는 와인 덕분에 더 기억이 좋게 남는지, 떠오른 기억이 좋아서 와인이 머릿속 팔레트 창고에 더 좋게 기록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기억의 중앙에는 자주, 그날 함께한 술이 있다. 처음 방문한 재즈바에서 마셨던 라 발렌티나, 크라쿠프 와인바에서 마셨던 알바 바르베라, 펑펑 운 날 혼자 마신 라가불린, 기차역 앞 정자에서 친구와 마셨던 포장 막걸리까지도. 그렇다 보니 유독 기억에 남게 되는 와인이 종종 있는데, 이 와인도 그렇다. 오랜 친구와 시덥잖은 이야기부터 속 터놓고 깊은 이야기까지 주절주절 하는 동안, 이 와인은 우리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좋은 친구와 좋은 와인은 만나기 어려운 법인데, 다 함께 하는 자리이니 계속 그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에비던스에서 마셨던 Propeietà Sperino.

바틀을 열자마자 바로 풍부한 향이 터져 올라온다. 과하지 않은 붉은 계열의 베리류의 향과 옅은 spices가 나무향에 부드럽게 감싸며 올라온다. 기분 좋은 무게감과 중간 정도의 바디, 적당한 탄닌이 혀를 감싸고 미묘한 여운을 오래 남겨주는 기분 좋은 와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쾌함이 조금은 잦아들면서 차분함과 여유가 늘어나고, 묵직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가 북부 이탈리안 와인을 찾으니, 이 와인을 추천해주셨던 소믈리에분은 이 와인이 몇 안 남았는데 이렇게 맛 보일 수 있어 행복하다며 몹시 좋아해 주셨다. 같은 와인의 2010년 빈티지만 되어도 아직 단단한 감이 있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고. 찾아보니 2011년은 피에몬테에 유독 봄이 빨리 찾아왔던 해로, 평소보다 2주나 일찍 수확하게 된 탓에 평년과는 굉장히 다른 빈티지가 되었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 이마저도 그날이 더 특별해지는 요소였을 수도 있겠다.


피에몬테 네비올로면 어느정도야,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가 반했다.

그날 나와 함께  친구는 나와는 많이 다른 친구다. 커피 취향부터 성향까지, 양쪽 극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달라서 누가 보면 둘이 어떻게 친하지 의문을 느낄 수도 있겠다.  다름에서 나는  배우고 있다. 매사에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 주변 사람을   챙기는 사람.  친구와 내가 유일하게 겹치는   가지 취미가 있다면 그건 술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해 찬양하느라 중간중간 서로의 말을 끊어가면서도 이해하고 나누고 즐길  있는 그런 친구는 드물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와인을 마셔서  좋았겠지. 그렇게 좋은 기억과 좋은 술은 맞물려간다.

 


Proprietà Sperino


피에몬테 지방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있는 레소나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와인 산지 중 상당히 높은 산도를 보이는 토양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독특한 토양이라 키우기는 어렵지만 덕분에 독특한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포도를 재배할 때 최대한 환경을 생각하는 바이오디나미를 지키며, 미생물과 지렁이를 활용한 농사를 짓고 있다. 빽빽한 랩 노트를 쓰며 포도를 키우고 와인을 담은 선대 관리자들처럼 기록들을 토대로 고유한 맛을 찾는데에 노력을 기울이며 환경도 생각하는 와이너리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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