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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아닌, 일상의 하와이
by 임노엘 May 10. 2018

낯선 카메라를 보고 V 할 수 있는 사람


카메라를 들이대면, 사람들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준다. 이렇게 찍어봐라, 저렇게 찍어봐라 코치를 해주기도 한다. 사진 찍는다고 싫어하면 어쩌지, 혼자 속으로 걱정하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멀리서 보고 아이들은 당당하게 V를 만들며 걸어온다. 발랄한 청춘들. 귀엽고 부럽다. 당당하고 자유로운 그들의 모습이. 나였으면 고개를 숙이고 허리까지 숙여 카메라를 피하기 바빴을 텐데.  



문신을 한 어느 아기 아빠의 모습은 매우 신선했다. 실제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아빠의 모습은 규범적이고 모범적인 모습이다. 사진 찍기를 청하니 상체를 약 30도 정도 비틀어 멋진 모습을 취해주는 아기 아빠의 표정은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보다도 더 짓궂었다. 아기 유모차를 남편에게 맡기고 유모차에서 조금 떨어져 환하게 웃는 아기 엄마도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엄마란, 아기에게 24시간 매여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여유 있게 외출을 즐기고 있었고 아기도 보채지 않고 편안하게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안전벨트도 하지 않고. 



과감한 끈나시 차림의 한 아기 엄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휴가 차 하와이에 왔다. 5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나 같으면 5개월 아기를 데리고 장시간 비행은 엄두도 못 낼 것 같은데 아기 엄마, 아빠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아기 엄마는 아직 이가 나지 않은 아기에게 맨 손으로 멜론을 먹이고 있었다. 목에 걸리지 않냐고 물으니, 전혀 염려할 필요 없다며, 아기가 멜론을 매우 좋아한다고 답했다. 끈나시를 입은 엄마, 아기와의 장시간 비행기 여행, 맨 손도, 아기에게 과일을 갈아 먹이지 않고 주는 것 모두가 생소했다. 내가 본 아기 엄마들의 모습과 확연히 달라서. 



이 곳 알라모아나 센터는 하와이에 오면 꼭 들려야 하는 관광 필수 코스다. 전 세계 사람들을 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인종에 언어도 내가 쓰던 한국말이 아니어서 나는 고작 알라모아나 센터에 앉아 있을 뿐인데 연신 새로운 세계가 밀려 들어온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알고자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아 전혀 알아먹지 못하는 신세계다. 허름한 옷차림과 쪼리, 화장기 없는 얼굴이 당당한 것도 신기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에서라면 집에서만 입을 옷차림으로 쇼핑센터를 사방팔방 누비고 다닌다. 이 곳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치장을 하고 나오는 게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다. 아기를 대하는 태도며 내 머릿속에 나도 모르게 저장돼 있던 엄마, 아빠의 이상적인 모습, 낯선 사람의 카메라를 대하는 태도 등. 모든 것이 내 예상을 벗어난다. 



내 세계는 좁았다. 지역도 한국,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행을 싫어해서 국내 여행도 몇 번 가지 못했고 해외여행을 30대 초반을 지날 즈음 처음 가 봤다. 머리도 상당히 딱딱하고 고지식해서 정답을 좋아하고 소위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매우 싫어한다. '정답'은 없는 건데. 그 정답이란 게 고작 내가 만든 것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상식'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세상'이 여기 있는데. 코끼리 꼬리만 간신히 만져보고 이것만이 코끼리라고 멍청하게 왜 그렇게도 확신하고 우기며 살았을까. 



사법고시를 준비한 적이 있다. 그 시험에 합격하는 것만이 '유일한 행복'이라고 여겼던 어리석은 때였다. 내 20대 빛나는 청춘을 시험을 위해 기꺼이 바쳤다. 풋풋한 청춘 따위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행복해져야 하니까.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공부했다. 시험에 떨어진 후, 당연히 나는 목숨을 잃은 듯 절망하고 낙심했다. 하늘이 꺼지는 것 같았다. 분했고 억울했고 평생 불행하게 살 자신이 없어, 딱 죽고 싶었다. 



여기에 와 보니, 왜 그랬나 싶다. '유일한 행복'이라니. 멍청했다. 내가 만일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아니 한 번이라도 해외에 나와 넓은 세상을 봤다면 나도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지 않았을까. 어지간히 고집스럽고 한심할 정도로 고지식한 내 성격도 지금과 같지 않아서, 나도 낯선 사람의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어리둥절한 표정의 관광객에게 친절하게 먼저 다가가 나를 찍으라고 말을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꼭 해외에 나가보라고, 그곳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삶과 꿈이 존재한다고, 

나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30살이 넘어서도 해외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고 하니,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꼭 시간을 내서 가까운 중국이라도 가보라고. 큰 세상을 봐야 시야가 넓어진다며 그 사람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때 그저 마음 한편이 시큰하고 말았었나, 아니면 그날 밤 속상해 울었었나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그때 해외여행을 갈 형편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엔 뭐라도 해서 해외여행 갈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둥, 당신이 정말 간절히 해외여행을 원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둥, 형편은 핑계라는 둥, 한 번도 못 간 건 말이 안 된다는 둥,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다. 그러나, 정말 그럴 형편이 아닌 형편도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힘겨워하는 청춘들에게, 열일 제치고 해외에 단 한 번이라도 나가 보시라, 그곳에 다른 세상이 있다, 고 말할 수 없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로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진심으로 한 조언이지만 그 진심을 알면서도 괜스레 서러운 날들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이랬으면 달랐을까, 하는 후회도 이제는 그저 인생의 한 부분인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억지로 이루려고 하는 것만이 열심히 아닌,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것도 성실이고 근면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니 아무도 아프지 말기를. 지나치게 울거나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때론 멍하지 앉아 시간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때가 있다. 열심히 해야만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틀릴 때도 있다. 지금의 울분을 남의 것인 양, 내가 그랬었구나, 하고 무표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온다. 지금 열일 다 제치고 독하게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는 내 모습이, 훗날에는 부끄러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자책하지도 말기. 세상 다 아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하는 조언 같지만 사실은 아직도 나에게 되뇌는 이야기들. 


중년 여인의 한가로운 모습에 유난히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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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관광지 아닌, 일상의 하와이
아기 예수와 크리스마스가 주는 떨림, 화평,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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