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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May 19. 2018

쌀쌀맞은 친절함


소비의 천국, 알라모아나 센터. 가방, 시계, 보석, 화장품, 신발! 눈이 돌아간다. 한 가방 브랜드 직원이 살짝 귀띔해 준 바에 의하면, 같은 가방인데도 이 곳에서는 mainland(미국 본토. 하와이에서는 미국 본토를 메인랜드라고 부른다.)보다 가방 가격이 20%나 저렴하다고 한다. 세계 최대 야외 쇼핑센터의 위엄이다. 그 말을 들으니 눈이 더 돌아간다. 직원의 설명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가방, 저 가방에 괜히 관심을 가져 본다.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비싼 가방을 선호하지 않는다. 가방뿐 아니라 다이아몬드 반지, 하다 못해 유명 브랜드 운동화 등에도 별 관심이 없다. 옷이든, 신발이든, 가방이든 그저 실용적이고 오래 쓸 수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다. 명품 가방이나 비싼 브랜드 옷이 없다고 주눅들지도 않는다.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가방을 들었는지, 무슨 브랜드 신발을 신었는지, 결혼할 때 얼마나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았는지 일일이 신경 쓸 만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많이 쏟지도 않는다. 더욱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썰미도 없다. 누가 뭘 들고 왔는지, 뭘 입고 왔는지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명품 가방이나 천 만원이 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랑할 때면 나는 예쁘다, 좋아 보인다,를 연발하며 호들갑을 떤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신나게 맞장구를 쳐주는 게 나의 큰 장점이다. 그다지 부럽지 않은 가방임에도 잘 샀다, 잘 어울린다, 뽀대가 난다고 말해주는 건, 가방을 자랑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또는 그녀는 그 가방을 사기 위해 다른 필요를 접어가며 돈을 모았을 테고, 면세점이든 해외든 가방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을 테다. 이 가방이 나을까 저 가방이 나을까, 예쁘긴 이게 예쁜데 아무 옷에나 무난하게 들려면 저 가방이 낫겠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 얻은 기쁨이기 때문에 나는 상대방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부러움을 기꺼이 만들어 낸다.




좋게 말하면 친절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쌀쌀맞은 거야.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뭐라고?

겉으로는 상대방에게 동조하면서 웃고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아무 관심 없잖아. 누가 가방을 사든, 반지를 끼든, 뭘 자랑하든, 넌 상관 안 하잖아. 부러워하지도 않고, 나도 갖고 싶다 생각하지도 않고, 하다 못해 나는 왜 저런 게 없나 속상해하지도 않잖아. 게다가 솔직히 네 생각을 말하지도 않지. 사실 나는 명품 가방에 관심이 없다고. 그런 걸 쌀쌀맞다고 하는 거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쌀쌀맞다니.

아닌데! 배려한 건데! 즐거워하는 상대방의 표정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데!



20대 초반, 친구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준 적이 있다.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고 내 딴에는 며칠을 끙끙 고민해 A 쪽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했다. 사법고시의 높은 벽 아래서 우리들의 한심한 기억력과 나약한 체력과 부족한 끈기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좌절하던 시절이었다. 진로에 관한 고민에는 우리들의 꿈, 인생, 삶의 목적 등 모든 것이 걸려 있었다. 이 고민은 그냥 술 한 잔 마시면서 이렇게 해 봐,라고 즉흥적으로 조언해 줄 수 없는, 친구의 인생이 걸린 '매우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며칠을 고심한 후 간신히 A를 친구에게 권했다. 이런 나의 진심과는 달리, 조언을 들은 친구는 울면서 나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충분히 B를 할 수 있는데 왜 나에게 A를 권하냐며. 나를 무시하는 거냐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라면 어떻게 할지 완벽하게 친구에게 감정을 이입해 내린 결론이었는데 이런 반응이라니. 친구도 속상하고 나도 속상해진 이 조언 이후로 나는 한동안 그 친구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내 친구가 그때 왜 울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친구는 그때, 내 격려가 필요했던 거다. 넌 사법고시 1차도, 2차도 무조건 한 번에 붙을 수 있어, 라는 다소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절대적인 지지와 인정을 듣고 싶었던 거다. 친구는 아마 이 허무맹랑함으로 혼자서 사그라뜨리기 힘든 불안감을 잠재우고 싶었을 거다. 그만큼 절실했을 거다. 무언가라도 붙잡아야 했던 그때, 눈썰미 없는 난 눈치도 없어서 그걸 몰랐다. 장기전으로 봐야 한다, 그렇게 쉽게 할 마음이면 하지 마라며 친구를 몰아붙였다. 가뜩이나 힘들어 허우적거리던 친구를 기어이, 울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상대방에게 내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는다. 간신히 서 있는 사람을 아예 밀어 넘어뜨리는 실수를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방을 울리고 싶지 않다. 그냥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해 주고 네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힘들게 회사를 다녀 모은 돈으로 원하던 가방을 산 사람에게, 난 그런데 관심 없다며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가 없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세계 평화가 달린 문제도 아니고, 명품 가방 구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주제로 100분 토론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마음이었는데, 쌀쌀맞은 건가?


되짚어 보니 맞는 말이다. 내 마음과 표정이 정반대의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진짜 생각을 말하지 않게 되면서 나는 조금씩 상대방에게 무관심해졌다. 깊은 감정이입을 차단하니 무관심해지는 게 당연하다. 너는 그렇구나, 가 아니고 너는 그래라, 나는 이러련다, 는 때가 종종 있다. 아니, 더 솔직히 고백하면 대부분 그렇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쌀쌀맞더라도 친절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아픈 말이라도 솔직히 꺼내야 하는 걸까. 반대로 나의 취향이나 생각, 가치관 등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 나에게 친절한 사람일까, 아니면 나에게 가장 신랄하고 날카로운 독설을 퍼부어 주는 사람이 친절한 사람일까. 나는 따뜻한 사람이고 싶은 걸까, 차가운 사람이고 싶은 걸까.


다만 쌀쌀맞은 만큼 친절한 사람이고 싶다.

친절한 만큼 쌀쌀맞은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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