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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May 31. 2018

잔디밭에 털썩, 앉을 수 있나요


동물원은 숲이었다. 


와이키키 끝자락에 호놀룰루 동물원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와이키키라니, 나도 모르게 바다나 관광객들을 상상했었나 보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예상치도 않게, 비현실적인 숲을 만났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SF 영화 <호빗>에나 나올 만한 상상의 숲. 혹은 옛날, 옛날, 아주 옛날 백설공주와 난쟁이들이 살았던 거짓말 같은 동화였다, 동물원은. 커다란 나무와 넓은 잔디밭이 어우러진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조그맣게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함부로 들어가서 마음껏 밟을 수 있는 진짜 초록 잔디, 웅장한 나무와 시원한 그늘, 거기에 상쾌한 바람까지 더해져 나는 괜히 어린아이처럼 해맑아졌다.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고 구르고 싶어 졌다. 



음…. 그런데 돗자리를 안 가지고 왔다. 산뜻한 잔디밭 위에서 떼굴떼굴 구르며 깔깔대고 싶은데, 맨 잔디밭 위를 구를 수는 없고. 살랑, 바람이 부는 그늘 아래 누워서 낮잠이라도 한 번 자보고 싶은데, 아니 밖에서 잠들기는 쉽지 않으니까 낮잠까지는 아니더라도 잔디밭 위에 대자로 누워서 하늘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은데, 음…. 바닥에 깔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음…. 돗자리가 있어야 되는데. 내 생애 처음 만나는, 흠뻑 취하고 싶은, 취해야 마땅한 CG 같은 풍경이 내 앞에 있는데도 나는 겨우 돗자리 하나 때문에 완벽하게 잔디밭을 즐기지 못한다. 돗자리만 있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마냥 멍하게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데. 여긴 딱 내 취향인데. 이렇게 우뚝 서서는 아무래도 풍덩, 잔디밭에 뛰어들 수가 없다. 


그저 약간 거리를 둔 채 감탄만 하며 바라볼 뿐이다. 




그냥 맨 잔디밭 위에 앉아볼까? 살짝 누워만 볼까?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벌레가 너무 많다. 아름다운 초록 벌판에 사는 온갖 벌레들.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특히나 바퀴벌레! 하와이 바퀴벌레는 검지나 중지 손가락만큼이나 크다. 게다가 새똥도 있을 거고 운 없으면 개똥까지. 그리고 하와이는 자연환경이 좋아서 그런가, 잔디밭에 개구리도 있고 심지어 두꺼비인지 큰 개구리인지 손바닥보다 더 큰 개구리가 뛰어다니는 것도 봤다. 그런데 어떻게 잔디밭에 앉냐고! 눕는 건 애당초 안 될 일이고! 



물론 이 곳 하와이 사람들 모두가 돗자리 없이 맨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는 건 아니다. 코스트코에서도 휴대용 매트를 팔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얇은 이불 같은 소재의 깔개를 가지고 와 돗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곳 사람들은 나처럼 돗자리가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난감해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바비큐를 굽기도 하고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가벼운 스낵을 준비해 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어떤 이들은 책을 읽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 가방을 베개 삼아 낮잠을 청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뼛속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도시인'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맨 땅바닥에 앉아 본 건, 아마 초등학교 운동회 때나 조회 시간, 체육 시간, 이 정도뿐이다. 이 외에는 바지에 흙을 묻혀 본 적이 거의 없다. 무서운 벌레나 더러운 진흙, 이슬의 축축함 등이 나는 전혀 익숙지 않다. 슬리퍼를 신고 잔디밭에 들어가는 것도 아직은 조금 어색하다. 맨 발등에, 잔디가 길어진 날이면 발목에까지 풀잎이 스칠 때면, 얼른 운동화로 갈아 신고 싶어 진다. 풀잎이 아픈 것도 아닌데. 발에 흙이 잔뜩 묻는 것도 아닌데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얼른 발을 깨끗이 물에 헹군다. 지나치게 야생에 깊게 들어선 느낌이랄까. 나는 전혀, 자연적인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깔끔한 도시적 기질이 나의 다른 일상에서도 티가 난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즐기기 위한 불편함을 나는 감수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 동경하는 것, 빠져들고 싶은 무언가가 내 앞을 지나가도 뭔가 꺼려지는 게 있으면,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볼 뿐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와락 붙잡지 않는다. 예를 들면, 기타를 배우고 싶었는데 기타를 많이 치면 손에 굳은살이 박인다고 해서 기타를 배우지 않았다(그렇게 오래 기타를 칠지 안 칠지도 모르면서, 그리고 손에 굳은살 좀 박이면 어때). 수영도 배우고 싶었는데 수영을 오래 하면 어깨가 넓어진다고 해서 또 포기했다(어깨가 넓어질 만큼 수영을 하려면 국가대표 선수처럼 온 인생을 걸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내 어깨는 이미 충분히 넓은데). 어떤 사람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는 바람에 너무 친해지면 귀찮을 것 같아 그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어이없는 변명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난 그 사람이 싫었나 보다). 사귀고 싶었던 이성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어렸을 때 큰 수술을 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사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사귄다고 다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수술을 했다고 결혼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만일 내가 기타를 배웠다면 아이유처럼 근사한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까? 아이유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곡으로 유명해 지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볕 좋은 날, 창문을 열어젖히고 띠링 띠딩, 감미로운 노래를 연주할 수는 있었을 테다. 내가 만든 곡이든,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듣기 좋은 노래들을 혼자 흥얼거릴 수는 있었을 텐데. 창가에 앉아 부드럽게 기타 줄을 튕기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근사하다. 이 정도 근사한 장면을 위해서는 손가락의 굳은살 정도는 감수했어야 할까. 무엇이든지 첨벙 뛰어들기보다는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고 따지는 내 성격 때문에 내 삶은 밋밋해진 걸까, 아니면 평화로웠던 걸까. 잠시라도 오도카니 잔디밭에 앉아 근사한 장면을 만들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잔디밭에 못 앉는다고 해도 별일 아닌 걸까. 기타가 조금 울적하거나 지루했던 나의 날들을 위로해 줬을까, 아니면 기타 하나 못 친데도 대수롭지 않은 걸까.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문득 만난 황홀한 풍경에 홀려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여기 정말 멋있구나, 감탄만 하고 그 자리를 스치는 사람인가요. 마음 내키면 잔디밭에 벌러덩 누워 하늘빛을 감상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여기에 벤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인가요.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활기차고 풍성했나요. 시끄럽고 복잡했나요. 조용하고 평안했나요. 지루하고 심심했나요. 궁금하네요. 말해 줄 수 있나요. 



큰 나무 밑에 앉아 있는 엄마와 아들. 저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 별 것 아닌 일상. 특별하지 않은 사진. 나는 또 조금 떨어져서 엄마와 아들을 바라본다. 어정쩡하게 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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