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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Aug 11. 2018

자주 올게, 시시하니까.


동물원은, 시시했다. 


동물원에서 눈을 반짝이며 환호성을 지를 나이는 훌쩍 지났다. 원숭이 재주를 보며 박수를 치자니 그 재주라는 것이 내게는 이제 너무 뻔했다. 코끼리 동상을 껴안고 신나서 사진을 찍을 어른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니까 나도 좋아 죽겠다는 듯, 이 코끼리 동상이 마치 살아 있는 코끼리나 되는 듯, 연기를 할 뿐이다. 



햇빛이 너무 뜨거운 것도 동물원을 시시하게 만들어 버린 이유 중 하나다. 직사광선을 정수리에 그대로 받으며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 호놀룰루 동물원을 걸어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뻔한 얼룩말이나 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한데, 그 지루함을 위해 뙤약볕 속에서 두 시간 정도 걸으니 살갗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동물원을 구석구석 다 보지도 못했다.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당장 시원한 그늘 아래에 들어가 아이스커피를 들이켜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동물 우리가 생각보다 큰 것도 문제였다. 사자가 살고 있는 공간은 웬만한 집 한 채보다도 넓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저 구석에 가 있는 사자 대신 사자 우리 안의 바위만 실컷 보게 된다. 치타 우리에도 치타는 없었다. 치타 보기는 굉장히 어렵다. 나중에도 동물원에는 몇 번 더 놀러 갔는데 갈 때마다 치타는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지나가던 동물원 관리자에게 이 동물원에 치타가 있냐고 물었더니 치타는 낮에 너무 더워서 어디 숨어서 낮잠을 잔다는 답을 들었다. 코뿔소도 우리 안 바위 뒤에 숨어 있는지 영 볼 수가 없었다. 두 시간 넘게 땡볕을 돌아다녀도 볼 수 있는 동물은 많지가 않았다. 텅텅 비어 있는 우리만 실컷 본 셈이다. 그래서, 동물원은 시시했다. 



나는 잔인한 사람이다. 겨우 잠깐 눈요기나 하자고 넓은 동물 우리가 불편하고 시시하다고 말하는 사람. 매일매일을 그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들 입장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두 시간 정도 잠깐 동물원을 방문한 내 눈요기를 동물들의 삶보다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나도 모르게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았던 건 아닌가 싶다. 당장 나 좀 좋자고, 나 하나 편하자고. 당일 배송, 총알 배송이 그렇다. 빨리 물건을 받아 보고 싶으면 직접 매장에 나가서 사든지. 치킨이나 짜장면을 시켜 놓고 빨리 갖다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비 오는 날 차를 운전하면서 무거운 짐까지 들고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에게 어서 비키라고 빵빵거렸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어린 아기를 안고 무거운 가방까지 멘 아기 엄마에게 내 차가 먼저 지나가야 하니 잠시 기다리라며 쌩, 횡단보도를 지나쳤다. 나 하나 편하자고 다른 사람들의 고생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서로 배려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지 못해서 그렇다. 배려보다는 편의성이 우선하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많은 학생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서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똑같은 교복을 입히고 머리 모양까지 통일시켰다. 채점자의 편의성을 위해 객관식이나 단답식으로 낸 시험문제에 정해진 답만을 내야 했다. 학교의 규칙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학생은 정학이나 퇴학을 통해 징계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동물 우리가 지나치게 넓어 사자를 보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는 내 마음이 참 못났다. 학교 교육을 그리 받아 효율성만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고 변명하는 내 모습이 비겁하다. 사자나 치타를 못 보면 어때, 잘 보이는 코끼리나 기린을 보고 좋아하면 되지. 동물원에 있던 두 시간이 좀 시시하면 어때, 그래서 누군가가 그나마 좀 더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됐지. 왜 이런 생각은 못하는 걸까. 



동물원은 더 시시해져야 한다. 

얼룩말은 더 넓은 초원을 뛰어다닐 수 있어야 하고 사막여우는 제 굴에 들어가 꽁꽁 숨어 느긋하게 낮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목을 빼고 둘러봐도 여기에 사슴이 산다는 푯말만 보일 뿐 사슴이라곤 코빼기도 볼 수 없어야 한다. 



우리 세상도 더 시시해져야 한다. 내 입맛대로 누군가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없어야 한다. 그 누구도 쉽게 타인을 조종할 수 없어야 한다. 전화 한 통으로 당장 무언가가 설치되고 고쳐지는 일도 없어야 한다. 내 입맛대로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무료하고 나른해져야 한다.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통해 내 쾌감을 충족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덥기만 덥고 재미는 하나도 없는 시시한 동물원. 그래서 자주 와야겠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동물원에는 오히려 인간미가 있다. 그늘에 앉아 물이나 마시면서 조용히 쉬다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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