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항은 첫인상이다.
호놀룰루 공항에서 나는 하와이를 처음 마주했다.
처음 만난 하와이는 남루했다. 모든 것이 낡아 보였다. 오래된 벽, 천장, 바닥. 출구로 향하는 긴 복도에는 낡은 그림들만 몇 점 있을 뿐이었다. 터치스크린과 같은 현대 장비는커녕, 광고판도 하나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뭐랄까. 그저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 위해, 여행객들이 가방을 찾고 출구로 나가기 위해, 최소한의 건물만 간신히 서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에서나 가끔씩 본 한국의 60~70년대 시골 버스 정류장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인천공항의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나는 처음 만난 하와이의 초라함에 조금 당황했다.
게다가 날씨까지 습했다. 눅눅한 공기는 산뜻하게 굴지 못하고 자꾸만 내 피부에 척척 감겼다. 12월에 한국을 떠나 하와이로 오느라 나는 긴 팔, 긴 바지 차림이었다. 더운 하와이 날씨를 감안해 코트 안에 가벼운 차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와이의 12월은 꽤나 더웠다.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왔어야 했나 보다. 후덥지근한 열기에 금세 옷에서 꿉꿉한 냄새가 났다. 습한 장마철에 에어컨 없이, 창문을 모두 닫은 채, 답답하게 집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여기가 하와이야? 지상 최대 낙원? 파라다이스?
하와이에서 잠시 살게 됐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부럽다는 둥, 놀러 가겠다는 둥,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둥. 생각해보니 그런 친구들 틈에서 정작 나는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것 같다. 하와이에 가야 한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와이 맛집을 찾아본다거나 가 볼 만한 곳들을 블로그로 검색해 보지도 않았다, 한 번도. 하다못해 하와이 4박 5일 관광코스 정도라도 인터넷으로 찾아볼 만했을 텐데. 어쩌면 그런 것들을 깡그리 생략했을까. 대신 나는 이삿짐센터를 알아보고 가지고 갈 물건과 버리고 갈 물건들을 분류했다. 비상약을 사고 된장, 고추장, 건어물 등을 챙겼다. 내 앞에 놓인, 내가 해야 될 일들만을 기계적으로 처리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 전에 당연히 느껴야 하는 떨림과 긴장, 기대, 호기심, 열띤 흥분. 설렘으로 인해 배시시 터져 나오는 옅은 웃음.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들. 이런 것들을 완벽히 놓치고 있었다.
30년을 넘게 그렇게만 살았다. 0교시 수업을 들으라니까 잠도 못 자고 아침도 못 먹고 빈 속에 허겁지겁 달려 교문을 통과했다. 그러다 위장병을 얻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고시 공부를 한답시고 신림동에서, 도서관에서, 고시반에서 청춘을 보냈다. 흔한 배낭여행도 내 젊은 시절엔 없었고 풋풋한 대학시절을 마음껏 낭비하는 여유도 없었다.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해야지 안 그러면 취업하기가 더 어렵다기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모른 채 허겁지겁 입사를 했다. 맞지 않는 회사 생활 때문에 사표를 냈다가도 밀린 등록금 대출금 때문에 또다시 급하게 입사하고 퇴사하기를 몇 차례. 30살이 넘으니 이번엔 결혼 압박. 소개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끝이 없다.
나는 조금 지쳤었나 보다. 마음이, 감정이, 체온이, 얼어붙었나 보다.
하와이가 만난 내 첫 얼굴은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조금 시무룩해 보였을까. 무뚝뚝했을까. 감정은 없고 엄격하게만 보였을까. 이런 첫인상을 주고 싶진 않았는데. 호기심 한 가득한 맑은 눈에, 코는 반짝이고, 부끄러움 없이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입술. 달아오른 두 볼과 자유로운 발걸음. 내가 원하는 것들.
다시 가져 보려고 한다, 빛나는 눈을. 새로운 곳에 왔으니 나도 모르는 변화가 있겠지.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니 뭘 하려고 하지 말자. 우선 조용히 있어 보자.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 조급해하지도 말고 쫓기듯 서두르지도 말 것. 한국에 두고 온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지도 말고 아까워하지도 않기. 내 방식대로, 내 속도대로, 나 하고픈 대로. 숨만 쉬어보기.
이렇게 나는, 하와이와 처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