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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Nov 30. 2018

단단해지기

검정도 색깔이다 - 그리젤리디스 레알 



'혁명적 창녀'라 불렸던 그리젤리디스 레알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녀는 매춘부의 일상과 그녀의 솔직한 심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년, 늘 매춘 여성들을 찾으면서도 동시에 매춘 여성을 비난하는 사회의 위선을 비난한다. 


공장에는 노동자가 있고, 가정에는 주부가 있으며, 길거리에는 창녀가 있다. 보석처럼 밤을 반짝반짝 빛내는 그녀들이 있다.


인류의 시작과 역사 동안 늘 존재했었던 창녀들. 지금도 그녀들은 밤거리를 반짝반짝 빛내고 있고 100년이 지난 미래에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는 항상 그녀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크게 들리지 않는다. 그녀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님 우리들이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녀들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인간과 함께 하지만 우리 옆에는 없는 그녀들. 욕망의 밤을 물들이나, 아침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녀들. 그러고 보니, 내 친구들 중에도 창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처음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친구들 중에도 창녀는 없고 그렇다고 술 취한 밤거리에서 여자인 내가 미친 듯이 창녀를 찾아 헤매는 일도 없으니. 그러나 내가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오늘 같은 밤에도, 누군가는 허전한 마음을 혼자 달래지 못해 그녀를 찾고 있을 것이다. 
  

나는 천 겹의 살갗 아래 숨어 있다. 그 마지막 살갗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온전히 나에게만 속해 있기에 당신은 결코 나를 발가벗기지 못할 것이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살갗은 하나같이 소중하고, 가치 있고, 예민하고, 달콤하고, 눈부시다. 따라서 나는 대체물 없이는 단 한 겹의 살갗도 제거하지 않는다. 단지 허물을 벗을 뿐. 나는 뱀이다. 절대로 닳지 않고, 비참해지지 않는 여자이다. 


처음 만난 그녀는 단.단.했다. 많은 수모를 당하고 굴욕적인 순간순간이 많았을 테도 불구하고, 그녀는 타인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을 만큼 강했다.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어느 한순간도 그녀는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여자가 감당하기엔 힘들고 아픈 시간이 있었을 텐데도 그녀는 사랑 하나로 충만해했고, 자신의 아이들과 행복해했다. 
  

반면 나는, 예민하고 깨지기 쉽다. 강해지려고 마음을 단련도 시켜보고 무감각하게 심장을 마취시켜 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녀처럼 질겨질 수는 없나 보다. 더 뻔뻔해지고 악랄해지고 독해져야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그렇게는 될 수 없나 보다. 자꾸 부서지고 상처를 받는다. 힘을, 내야 하는데. 언덕을 오르다 고장 난 자동차처럼, 온 힘을 다 쏟아 퍼져버린 말처럼, 꼼짝을 못 하겠다. 참다 참다 이제는 알 수 없는 어떤 한계선을 넘어 버렸나 보다. 
  

이럴 때 그녀는 어떻게 고비를 넘겼을까. 동트는 새벽, 잠에 취한 세상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을까? 독한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환각에 취했을까? 클럽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고 돌아와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젠장, 이라고 한 마디 내뱉었을까. 단순하고 쉬운 성격이 아닌 나는 그녀처럼 홀가분하게 휘파람을 부는 걸로는 아무것도 쉽게 잊을 수 없는데. 술에 취해 훌훌 털어버릴 만큼 호탕하지도 않은데. 그녀는 암흑의 칠흑 같은 검은색을 사랑했다는데, 난 그렇게 대범하지는 않은가 보다. 큰일이다.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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