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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Aug 15. 2018

내일 보자, 친구야!

얼굴 빨개지는 아이 - 장 자크 상페 


여기 한 꼬마가 있다. 꼬마의 이름은 마르슬랭.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진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얼굴이 심하게 빨개지고, 정작 얼굴이 빨개져야 할 때는 얼굴이 전혀 붉어지지 않는다. 의사들도 아무 때나 얼굴이 빨개지는 마르슬랭의 병을 고칠 수가 없단다. 친구들은 마르슬랭에게 자꾸 묻는다.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갛니? 마르슬랭은 친구들의 질문이 귀찮아졌다. 그래서 혼자 지내게 된다. 


그런 마르슬랭에게 친구가 생긴다. 친구의 이름은 르네. 르네는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한다. 얼굴이 자꾸만 빨개지는 마르슬랭과 계속해서 기침을 해대는 르네는 당연히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함께 자전거도 타고 숨바꼭질도 하며 둘은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르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돼 둘은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마르슬랭은 어른이 됐고 얼굴은 여전히 주체할 수 없이 빨개진다. 마르슬랭은 우연히 길에서 끊이지 않는 재채기 소리를 듣게 된다. 바로 르네. 두 친구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다. 



저자 장 자크 상페는 무심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혼자인 마르슬랭의 모습, 친구의 등장, 즐거운 나날, 헤어짐, 재회를 별 일 아니라는 투로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전혀 세심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은 아기자기한 그의 그림들은 그래서 오히려, 독자를 안심시킨다. 얼굴이 빨개져도 큰일이 아니라고. 누군가는 재채기를 연신 하듯 너는 그냥 얼굴이 조금 빨간 것뿐이라고. 작가는 그렇게 소곤거린다. 


삶이란 대개는 그런 식으로 지나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고, 매우 기뻐하며, 몇 가지 계획들도 세운다. 그러고는, 다신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대문이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며,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수많은 이유들로. 


장 자크 상페의 토닥거리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준 친구들이 생각난다. 굳이 셋을 꼽으라면 B, Y, O. 


B는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지 언 12~13년 차 정도 됐으려나. 최근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연차 한 번 제대로 쓸 수 없는 열악한 근무 환경, 불합리한 조직 문화, 의사들의 무시 등등 힘든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 순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까칠함과 짜증으로 온통 뒤범벅돼 있는 얼떨떨한 내 친구. 이렇게 소개했다고 B가 또 화를 내려나? 그러나 내가 가장 힘들 때 내 옆에서 함께 울어주고 욕해주고 나를 도닥여 줬던, 그 누구와도 바꾸지 않을 나의 베스트 프렌드. 요즘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지만, 나는 뭐 하나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가끔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밖에는. 세파에 이리저리 치여도 꿋꿋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임감 있는 내 친구다. 


책임감이라면 Y도 빼놓을 수 없다. 장녀로서 집안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온갖 일을 척척 해결하고, 아내로서 며느리로서도 백 점이다. 그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도 독하게 공부해서 단 1년 만에 단번에 붙은 그녀다. 누구보다도 세상을 열심히, 억척스럽게 잘 살아온 자랑스러운 내 친구다. 힘들면 잠시 주저앉거나 옆 사람에게 징징거릴 수도 있는데 여태 나는 그녀의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정작 내가 힘들었을 때는, 내가 헤쳐나가야 문제들을 풀어가지 못하고 그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을 때는, 옆에서 대신 발 벗고 나서서 마치 자기 일인 양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었던, 다시 생각해도 고맙고 감사한 친구다. 


O는 순둥이 중 순둥이다. 가끔 울컥해 얼굴이 시뻘건 채로 사람들과 싸울 때도 있긴 하지만 결국엔 늘 져주고 상대방을 이해해주는 착한 여자의 대명사다. 그녀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져 줘야지, 나도 그냥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라 줘야지, 하며 많이 배운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났는데 벌써 두 아이의 엄마라니. 그녀가 결혼할 때는 마치 동생을 시집보내는 것처럼 괜히 뿌듯해 신이 나기도 하고, 식장에 입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눈시울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알았던 O가 벌써 이렇게 다 자랐나 괜히 함께 한 추억이 떠오르고, 어렵고 힘든 시절 다 잘 지내고 이제 좋은 일만 남았구나, 잘 됐다, 진심으로 축복해 줬던 그녀의 결혼식이 새삼 떠오른다. 


얼굴이 항상 빨개져 모든 사람들의 놀림을 받아도 함께 할 믿음직한 한 친구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는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나도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릴 수 있다. 조금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친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급하게 성내고 참을성 없고 까칠한 내가 이렇게 환한 얼굴로 세상을 살아내 가고 있는 비결은 바로 내 친구들 덕분이 아닐까. 


내일은 B를 만나는 날. 어차피 우리들은 하고 또 했던 뻔한 이야기들을 또 풀어내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또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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