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니콜로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는 정치에서 윤리를 제거함으로써 정치의 음흉한 속내를 고스란히 폭로했다. 군주론에서 그는 군주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사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군주는 자비나 관용과 같은 덕목과 함께 잔인함을 겸비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상대방을 잔인하게 짓밟아야 하며 배신도 서슴지 않아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입혀야 한다.
군주는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그의 말을 한 문장씩 읽다 보면, 군주를 모셔야 하는 국민으로서, 그의 말에는 절대 동의하고 싶지 않아 괜히 반발심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슬프게도,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선거 때마다 국민의 일꾼이 되겠다며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현 정치인들의 공약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라는 사실과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당위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당위만을 고집하는 군주는 결국 파멸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군주를 야수에 비유했다. 특히 군주는 야수 중에서도 여우의 영리함과 사자의 힘을 모두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군주는 짐승처럼 행동하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우와 사자의 기질을 모방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때 그리고 약속을 맺은 이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 된다.
게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는 항상 둘러댈 수 있기 마련이다. 이 점에 관해서 근래의 무수한 예를 들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평화조약과 협정이 신의 없는 군주들에 의해서 파기되고 무효화되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여우의 기질을 가장 잘 모방한 자들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여우다운 기질은 잘 위장하여 숨겨야 한다. 인간은 능숙한 기만자이며 위장자이어야 한다. 또한 인간은 매우 단순하고 목전의 필요에 따라 쉽게 움직이기 때문에, 능란한 기만자는 속고자 하는 사람들을 항상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명한 군주란, 신의를 지키지 않는 군주란다. 성공을 거두는 군주란, 능숙한 기만자이며 위장자란다. 속상하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마키아벨리도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민심'을 꼽았다. 가면 쓴 군주의 맨 얼굴을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공개했던 마키아벨리도 백성의 만족은 군주에게 있어서 절대적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은 억압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지배자가 자신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언제든지 지배자를 갈아치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고 군대를 구성할 백성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세습 군주제, 절대 군주제에서도 두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군주는 시민들이 상업, 농업 그리고 기타 업무에서 각각 안심하고 맡은 바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또한 과중한 세금이 무서워 상행위를 꺼리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심지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배신과 살육과 거짓을 일삼는다 하더라도, 백성에게는 성실하고 신의가 두텁고 언행이 일치하고 인정이 많고 신실한 사람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군주에게 민심이란 이렇게나 중요하다. 전쟁을 일으키고 동맹국 군주를 죽이는 그 순간에도 백성들에게는 인자한 웃음을 보여야 하는 것이 군주다. 마키아벨리 시대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군주든 민심을 얻어야 하는 것은 영원불변의 진리다.
그렇다면 민심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어떤 군주를 원하고 있는가. 갖가지 공약과 구호로 민심을 구하고 있는 후보들.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의혹과 정치 공방들. 자신들의 잇속을 위한 이합집산. 어느 한 후보도 민심을 얻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후보들만의 문제일까.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어떤 군주를 원하는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들을 비판하기만 했지 정작 우리는 어떤 시장, 구의원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심하고 이야기를 나눈 바가 없다. 국민들 스스로 어떤 군주를 원하는지 이상을 제시해야 후보들이 이에 맞춰 민심 잡기에 열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민심의 실체가 없다. 우리는 과연 어떤 군주를 원하고 있을까.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 눈 질끈 감고 마키아벨리의 말을 믿어 보련다. 이왕이면 가장 사자답고 가장 여우 같은 사람. 후보들 중 어느 누가 가장 잔인하고 포악한지, 누가 가장 야비하고 교활한지, 꼼꼼히 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