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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Jul 20. 2022

사진으로 하지 못하는 말들


옆 섬으로 휴가를 떠났다. 블루 홀, 와이메아 캐년 등 웅장한 자연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자연이 이런 위압감과 떨림을 줄 수 있구나.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두려울 정도의 경외감이 느껴지는구나. 거대한 폭포와 캐년 앞에서 갑자기 새삼 내 존재가 한없이 약하고 작아졌다.



그 웅장함을 담고 싶어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사진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가. 폭포의 깊이를 담고 싶어 발끝을 최대한 들어 아래를 향해 찍어 봐도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아득한 폭포의 저 아래 쪽이 사진에 담기지는 않는다. 눈으로 본 폭포는 너무도 떨리는데 사진은 아무리 들여봐도 평온할 뿐이다. 시원하게 치솟아 오르는 블로우 홀도, 이 곳의 그랜드 캐년도 사진 속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담담할 뿐이다.



위로의 말도 그렇다. 마음 속에서는 너무도 뜨겁고 아프고 쓰라린데 진심의 위로는 말로 잘 표현이 안 된다. 힘내자, 라는 위로는 상대방에게 조금의 힘도 주지 못하고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허공으로 사라진다. 차라리 말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들 만큼 무능력하다, 내 위로가.



얼마 전, 친구의 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 열심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몇 년 전 합격을 하고 상사때문에 스트레스를 무지 받았다던 언니는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회사에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았고 젊은 탓인지, 암 세포가 급속도로 번져, 결국 암 선고를 받은 지 겨우 1년 반만에 그렇게 됐다.



언니가 내내 고생만 하다 하늘로 갔다며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삶을 왜 살아야되냐는 친구의 물음 앞에 나는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신이 어떤 생각으로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가혹한 일들만 주셨는지. 이제 조금 누리려는 찰나에, 왜 언니를 데리고 가셨는지. 언니가 아픈 이후로 친구는 얼굴빛을 잃었고 나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땐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하는 걸까. 친언니가 하늘로 간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친구는 세상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다. 우리는 같은 교복을 입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함께 지나왔다. 여름방학 때 살을 빼겠다며 실컷 운동을 한 후에 힘들다며 팥빙수와 아이스크림 치킨을 함께 먹은 철없던 시절부터 사회로 나와 인생의 쓴맛을 조금씩 볼 때마다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 한 캔으로 서로를 다독이던 사이다. 좋았던 일이든, 힘들었던 일이든, 친구와 나는 뭐든 함께 나눴고 우리는 서로를 의지해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이번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언니를 잃은 슬픔에 친구도 암담하고, 나 역시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무력하다. 그저 기도할 뿐이다. 친구의 부모님과 친구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고.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위로를 얻게 해 달라고. 친구의 가정에 감사와 기쁨의 일들이 넘쳐나게 해 달라고. 큰 축복과 은헤를 부모님께 허락해 달라고. 그게, 전부다.



혜영아. 힘내자.

네가 내 옆에 있었던 것처럼,

나도 네 옆에 있을게.

같이, 견디자.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라,

미안하다,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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