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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Nov 04. 2019

매년 할로윈 파티에 꼭 참석해야지



할로윈 시즌이라고 어딜 가나 할로윈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마트만 가 봐도 할로윈 때 꼭 필요한 펌킨 바구니가 산처럼 쌓여 있다. 분장 도구들과 할로윈 복장들도 눈에 띄는 곳에 전시돼 있다. 곳곳에 커다란 마귀할멈 인형도 세워 놓는다. 한 번도 할로윈을 맞이해 본 적 없는 나도 괜히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그렇다고 할로윈 당일에 와이키키에 나가는 건 위험한 일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 같겠지. 감당하기 힘들다. 다행히도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trick or treat을 한다고 해 나가 보았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할로윈 옷을 입고 서로 사진을 찍으며 벌써부터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나 아이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다양한 할로윈 복장을 입고 사탕을 받을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어른들도 어린 시절의 할로윈이 생각나는지 덩달아 아이들을 따라 설레는 모습이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야단법석, 흥이 절로 넘쳤다.



드디어 시작됐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씩 펌킨 바구니를 들고 차례차례 사탕을 받으러 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따라갔다. 할로윈은 단연 미국의 큰 명절이 맞다! 사람들은 분장에, 코스츔에, 할로윈 장식에 엄청 공을 들였다. 어떤 집은 너무 무시무시하게 변장을 하는 바람에 몇몇 어린아이들은 저 집은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울기도 하고 그 집은 건너뛰기도 했다. 당황한 집주인은 괜찮다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겁먹은 어린아이들은 눈을 질끈 감고 다른 집으로 향해 한껏 준비하며 어린아이들보다 더 신나 했을 집주인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사실, 모든 집들이 trick or treat에 참여한 건 아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는 trick or treat을 어느 날짜에 하는 것이 보다 많은 어린아이들과 집들이 참여할 수 있는지 미리 설문조사를 했다. 참여할 수 있는 집은 사전에 관리 사무소에 알려달라는 공지도 있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하고 조정하는 과정들을 통해 할로윈 행사 날짜가 정해졌다. 행사 당일에는 trick or treat에 참여하는 호수에 관한 안내문도 모두에게 일일이 지급됐다. 아이들은 안내문을 들고 이 곳 저곳을 방문하며 'happy halloween'과 'trick or treat'을 큰 소리로 외치고 다녔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공동체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 집 저 집을 노크하며 happy halloween이라고 인사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며 '오, Daniel! 네가 우리 집에 왔구나. 반갑다.'라고 인사를 한다. 너는 이런 분장을 했구나, 멋지다, 오늘 우리 집에 와 줘서 고맙다, 이야기를 나눈다. 어른들끼리도 할로윈 때문에 호박 속을 파내느라 힘이 들었다는 둥, 아이가 꼭 저 옷을 사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는 둥, 나는 저 옷을 직접 만들었다니까요, 라며 할로윈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나누며 함께 웃는다.



이런 점은 부러웠다. 하와이에 와서 생활하면서 모든 것들이 당연히 한국과 비교되는 건 당연했다. 무조건 하와이가 한국보다 너무 좋다, 이래서 미국은 미국이다, 이런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많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옆집, 아랫집, 윗집, 옆 동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축제를 즐기는 공동체 문화는 부럽다. 아무래도 하와이는 도시가 아닌 시골이다 보니 아직까지 이런 따뜻한 정서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아파트에 누가 살고 있는지, 오며 가며 자주 만나는 아이들 이름 정도는 서로 알고 있을 정도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 앞에 마련된 벤치에는 저녁마다 모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다. 거의 매일 이 곳에 모이기 때문에 나는 이들을 benchers(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라고 혼자 별명을 붙였다. benchers는 매일 저녁마다 이 곳에 모여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붙이며 안부를 묻는다. 너희 집은 안 덥냐, 올해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다, 아기가 기저귀는 뗐냐, 집으로 방문해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수영 선생님이 있다, 나는 요리는 안 한다, 빵이면 충분한데 내가 왜 요리를 하냐, 나는 사실 최근에 이혼을 했다, 지금 나는 행복하다는 등등 이 벤치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할로윈은
모두가 함께 하는
큰 파티다.

평소에 오며 가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던 아파트 주민들은 할로윈 때 만나 함께 큰 파티를 연 거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신나게 몰려다녔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어울려 별 것 아닌 파티를 다 같이 즐겼다. 아파트 전체가 한 파티에서 만나 어울리다니! 처음 맞은 할로윈에 대한 문화 충격보다 아파트 전체가 모두 한 마음으로 떠들썩하게 파티에 참여한다는 점이 꽤 신선하고 새로웠다.



나도 오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동안 사람들을 사귀어 보려고 꽤나 애를 많이 썼다. 엘리베이터에서든, 복도에서든 사람들을 만나면 good morning 인사를 먼저 나눴다. benchers에게 다가가 나는 한국에서 이사 왔다고 내 이야기도 먼저 했다. 영어 이름이 없어서 Julia라는 가칭도 만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 거리를 좁히며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도 했다. 외국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초코파이도 몇 박스 사 두었다. 그리고, 어색했던 그간의 노력들이 오늘 빛을 발했다. 나도 사람들과 함께 이 집 저 집을 방문하며 크게 웃었다.


그래서 오늘은, 외롭지 않았다. Happy hallowee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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