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built this city on Rock n' Roll
뜻밖의 부재중 전화 2통...
예전에 알던 분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전화를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한다. 모처럼의 제주도 나홀로 여행이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데...
하지만 이 분이 연락했다면 뭔가 일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어디 이 곳 제주도에서 오가다가 우연히라도 스치기라도 한걸까. 어쩌면 한라산 등반 길에 서로 마주쳤거나, 산방산 탄산 온천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휴대폰의 발신 버튼을 누른다.
통화 대기음이 이어지고, 잠시 후 약간 상기된 듯한 상대방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달된다.
"네. 여보세요?"
음.... 가만보자.
이 분을 소개하려면 내가 지난 몇 년간 몸 담고 있었던 직장인밴드의 얘기부터 해야 겠다.
약 9년 전인 2007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2007년 4월.
4월 11일은 퇴직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날짜이다. 부푼 마음과 설레임.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출근했다. 글로벌 공룡 기업에 영어라고는 삼육어학원에서 몇 달 배운 게 절반 이상인 토종 한국인이 출근을 한다. 외국계 기업답게 쿨한 분위기. 작은 것엔 크게 관여하지 않고 각자 일에 최대의 역량을 낼 수 있도록 매우 유연한 회사 분위기. 9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이긴 하지만. 아무튼 매우 좋은 회사였고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당시 1년에 2번씩 신규입사자 대상의 워크샵이 있었는데. 나는 약 2주 후 1박2일의 new employee workshop을 떠나게 된다. 직위를 떠나 직원이든 임원이든 최근 입사자는 모두 대상이다. 다양한 부서에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이틀동안 매우 재밌고도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기 소개 시간. 당시 30대 초반의 혈기넘치는 청년이었던 나는 '사무실 밖에선 rocker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미끼를 던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녁에 숙소의 각 방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진 술자리에서 루크 형님과 데쓰 형님이 나를 찾아 오셨다. 뮤지션들의 응집 본능이라고나 할까. 사내에 공식 밴드가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우리는 워크샵에서 복귀하는 대로 바로 밴드를 만들기로 했다.
그 밴드의 시작
이튿날. 우리는 다시 회사 건물로 복귀했고 워크샵 마지막 일정으로 삼성동 부근에서 회사 임원분들과의 저녁회식이 진행되었다. 밴드를 만들기로 한 일동들은 이날 회식자리에서 당시 한국지사장님 테이블에 동석해서 사내밴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음악에 관심이 많던 당시 사장님은 반가움을 표하며 밴드명을 "마이크로소프트밴드"라고 해달라고 하셨다. 사장님 요청을 어찌 어길 수 있을까. 사내밴드인데... 그게 M밴드라는 이름이 지어진 배경이다.
혹자는 Rock 밴드 이름이 뭐 그리 시시하냐고 한다. 사실 Microsoft Band라는 것은 여러 밴드의 대표명일 뿐. 그 안에는 수많은 밴드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 만들어지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매번 그 때마다 새로운 밴드이름으로 붙였다. 따지고 보면 그 멤버가 그 멤버인데. 그동안 있었던 내부 밴드명은 어림 잡아도 수십 개에 이른다.
의기투합해서 밴드를 결성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누군가는 베이스를, 누군가는 드럼을, 그리고 노래도 불러줘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기타만 3명 모여있다. 베이스는 누군가 백업을 하더라도 당장 드러머가 없다. 그로부터 한 달간 수소문하여 밴드 멤버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한 때 뮤지션이었으나 평범한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살고 있는 그들을 찾아나섰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드러머를 영입하다
소싯적 뮤지션들은 생업을 이유로 많이들 사양했다. 베이시스트로 영입하려고 했던 한 분과는 음악적 견해 차이로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같은 부서에 드럼 친다는 분이 있으니 만나보라고 알려 주었다. 그렇게 캐니다 국적의 다니엘을 만나게 된다. 그는 당시 한국어가 서툴었는데...
16층 사무실 앞.
"저기... 뺀드를 만드려고 하는데요. 같이 하시죠."
"음.. 네?....."
"뺀드요. 뺀드"
"(잠시 생각하다가)아..... 배애앤드요. 좋아요."
토종 한국인인 나는 band리는 단어의 원어민 발음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band는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단어 중에 하나이다.
역사적인 첫 합주.. 그리고 도원결의
5월 말. 드러머가 합류하면서 밴드 활동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나는 당분간 베이스를 맡기로 했다. 1주일 후 방배동의 모 스튜디오에서 첫 합주를 진행했다. 퇴근해서 부리나게 합주실로 향했으나 1시간 가량 늦게 도착한 합주실. 튜닝하고 이래 저래 시간을 보내니 실제 합주는 채 40분 정도 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교대역 부근의 선술집을 찾았고 첫 합주의 감회를 나누며 도원결의를 한다.
퇴근 후 기타를 들고 합주실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에너지를 뿜어 내고 그래도 남은 에너지는 맥주와 치킨과 함께 뒷풀이에서 비운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하는 것은 폭발적인 재미를 동반해서 한 번 재미를 붙히면 좀처럼 빠져나가기 힘들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때마침 이 때 즈음에 중년 남자들이 다시 모여 직장인 밴드를 한다는 내용의 영화 '즐거운 인생'도 개봉했었다. 방구석에서 먼지 가득한 기타를 다시 꺼내 닦으며 녹슨 줄을 새 줄로 갈았다. 손 때 묻은 기타를 정성스레 닦아주고 광도 낸다. 이 얼마만의 출동인가.
파죽지세로 달리다
첫 합주 이후 우리는 6주 연속으로 매주 한 곡씩 추가하면서 홍대나 강남 일대에서 연습을 이어 갔다. 건반주자로 세일러문도 합류했다.
사내 밴드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해왔다. 하지만 밴드 멤버로 참여하려면 초기 진입 장벽이 있다. 호기심과 열정만으로는 쉽지 않다. 일단 무엇보다도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들어야 한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곡을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합주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기를 다져야하고 그리고 합주곡에 대해서 개인연습을 해와야 한다. 열정이 있어도 기본기가 없다면 참여할 수 없고, 아무리 실력이 뀌어나도 연습할 시간이 없다면 밴드멤버로 활동하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지인들이 밴드의 초기 단계에 참여하였으나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많은 수의 객원보컬이 마이크를 잡으려 욕심을 냈으나 얼마 못가서 애간장이 녹아서 밴드에서 멀어져 갔다. 연주 멤버는 연습하면 실력이 늘지만, 보컬은 어느 정도 기본 역량을 타고 나야 하기에 보컬에 대한 눈높이는 높았던 것이다. 사실 어차피 아마추어 밴드인데 실력운운하는 것이 웃기는 얘기지만 암튼 보컬은 중요하다. 보컬만큼은 양보하기 어렵다.
우리는 몇 달간의 연습을 거쳐 밴드를 사내동호회로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사내에 멤버 모집 포스터를 제작해서 각 층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부착했다. 그동안 연습은 이 날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것. 연주멤버도 선발대상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밴드를 대표할 보컬이 필요했다.
2008년 1월. 공개 오디션을 통해 보컬을 뽑다.
강남구청역부근 모 스튜디오의 가장 큰 합주실을 빌렸다. 여자 보컬 8명, 남자 보컬 2명 정도가 신청을 했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해서 세 시간 가량 진행된 보컬 오디션에서 우리는 여자보컬로 스칼렛과 쟁, 남자보컬로 BK를 선발했다. 이 당시에 지금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했었다면 보다 체계적인 오디션을 진행했을 텐데. 지정된 연습곡과 자유곡 한 곡씩 준비해서 돌아가면서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사내에서만 멤버를 모집하는 것이라서 인력풀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모여보니 우리는 그럴 듯한 모양새의 밴드가 되었다. 파워 보컬들의 합류로 더욱더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까지는 연주멤버들이 중심이 되었다면 보컬이 들어온 이상 보컬에 선곡을 맞춰야한다. 보컬 목소리에 맞는 곡을 정하고 연주멤버는 약간 뒤로 물러서는게 필요하다. 어찌되었건 보컬의 비중이 가장 높고 책임감도 막중하다.
때 이른 공연 요청...
보컬을 뽑은지 얼마되지 않아 3월초에 있을 외부 행사에 공연 섭외 요청이 왔다. 첫 공연이다. 그것도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였다. 이를 계기로 해당 행사를 담당한 마케팅부서의 민스프님을 만나게 된다. 사내에 밴드 멤버 모집 포스터가 붙자 마침 기획 중인 행사에 밴드 공연을 만들면 괜찮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후담으로는 비용절감도 주요 이유였다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 밴드를 대외행사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주최측으로는 리스크가 있는 일이었지만 우리는 첫 공연을 위해 한 달 가량 열심히 준비했다. 밴드의 시작과 끝은 선곡이다. 무슨 곡을 공연때 올릴 것인가. 각자 좋아하는 음악의 취향도 다르거니와 기적적으로 모두 만장일치로 곡을 정했다고해도 그 곡을 모든 멤버가 소화해낼 수 있냐는 문제가 남는다. 제 각기 실력의 편차가 있기때문에 곡의 난이도는 멤버 중의 가장 리스크가 큰 파트 멤버의 수준에 맞춰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컬 목소리에 맞아야 한다.
첫 공연을 위한 선곡이 끝나고 퇴근 후 틈틈히 연습해서 7곡을 준비했다. 30분 정도 공연할 수 있게 됐다. 공연 전날 밴드 멤버들은 저녁에 모여 리허설을 위해 홍은동으로 향했다. 퇴근시간 교통정체에 시달린지 한참 후 도착한 행사장. 각자 기타며 악기들을 들고 두리번 거리다 공연 무대가 설치 중인 곳을 찾았다.
유후. 바로 이 곳이 내일 엠밴드가 역사적인 첫 공연을 하게 될 곳이구나.
... 7부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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