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 윗세오름 어드벤처

Top of the Hill

by 유유자적 무적기타


#Previously on 나홀로 제주 여행기

여기서 잠깐 미드 흉내내면서 친절하게도 지난 줄거리를 요약해보자. 무작정 떠난 제주도 나홀로 여행에서 Airbnb 앱으로 예약한 숙소의 주인장과 펜더 기타와 음악 얘기가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그곳에서 하루 더 머무르기로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한라산 등반에 나섰다. 이 날 오후에는 숙소 주인장의 지인분들이 모여 앨범 작업을 위해 합주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편, 평상복 차림으로 산책삼아 나섰던 한라산 등반 중에 예기치 못한 비바람을 만나게 되는데...


가파른 계단이 끝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눈 앞에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구름이 가득하여 시야 확보는 되지 않지만 맑은 날 왔다면 한라산 절경을 볼 수 있었으리라. 갑자기 주변 풍경이 바뀌어서 등산로가 아니라 공원 산책로 같은 길이 펼쳐진다. 길 옆으로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반긴다.

비에 젖은 한라산 등산로

아마도 정상에 거의 다다른 것 같다. 경사로를 오를 때는 몰랐는데 이젠 비가 차갑다. 비에 젖은 옷이 체온을 서서히 앗아간다. 입술이 파랗게 변해가는 듯 하다. 온 몸에 한기가 스며들자 뼈 속까지 시리다. 순간 등골을 지나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다.


"으.... 추워 따시"


참으로 산과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10년 전인가. 중국의 황산을 오르려 했을 때 동료 중국인이 일기 예보를 보여주며 나를 말렸었다. 일기예보 사이트에는 내가 아는 한자어로 '대설'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미 황산행 기차표며 숙소가 예약되어 있었던 터라 예정대로 황산을 올랐는데 그곳에서는 그야말로 재난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해야 했다.


이번에는 기상예보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한라산에 올랐다가 이게 무슨 고생인가. 이런 푸념을 하고 있을 때 즈음 반가운 이정표가 나타났다.


윗세오름에 다다르다


윗세오름. 이번 등반의 목적지이다. 뜨거운 라면 국물만 생각하며 추위를 이겨내며 차가운 비 를 맞으며 이곳까지 왔다.


이 곳에 위치한 대피소를 기점으로 다른 코스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이 있는데 영실 탐방로 입구에 렌트카를 주차를 했기에 다른 코스는 가지 못하고 이 곳에서 잠깐 몸을 녹인 뒤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가야 한다.


드디어 목적지인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

윗세오름 대피소 안에 들어서니 삼삼오오 몇 그룹의 등산객들이 컵라면과 배낭에 싸온 김밥 등을 먹으면서 쉬고 있었다. 비에 완전히 젖어서는 야구모자 창에서는 머금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정녕 이 곳에서 온 몸을 100% 순면으로 감싸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이란 말인가.


대피소 매점에서 컵라면과 양갱 하나를 샀다. 입구에서 사온 초코파이도 꺼내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휴. 한 숨 돌리고 가자. 해발 1600미터에서 먹는 컵라면. 그 어떤 산해진미와 비교하리.



그러나 달콤했던 잠깐의 휴식을 즐길 여유도 없이 한기가 엄습해온다. 나도 모르게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춥다. 이제 다시 한 시간 넘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데.. 몸을 움직여서 체온을 올리지 않으면 구급대에 실려가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짐을 정리해서 다시 길을 나섰다.


내려가는 길은 처음엔 걷다가 약간 큰 걸음으로 바꿔서 걸었다. 가파른 계단에 이르러서는 거의 뛰어내려가다시피 했다. 땀이라도 나야 이 추위를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구름이 걷힌 잠깐 사이에 드러난 한라산 등산로의 경치


시간이 조금 지나서일까. 등산로를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병풍바위를 지나 내리는 길에 잠깐 구름이 걷혀서 시야가 확보되었는데 순간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저 계단들을 올라왔구나.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한라산의 위엄. 맑은 날엔 저 멀리 바다도 보이겠지. 날씨 좋을 때 반드시 다시 찾으마.


낮은 곳으로 내려오자 조금씩 빗방울이 약해지더니 날씨가 개기 시작했다. 정상보다는 기온도 많이 따뜻해진 듯 하다. 빨리 내려가서 젖은 옷들을 말려야지.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눈에 띄는 등산객이 한명 있었으니. 그건 바로 샌들을 신고 즐겁게 오르는 한 아주머니. 허. 나보다 더한 사람일세. 저기.. 저 위에 비와요. 산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구요라고 알려주고 싶었으나 미지의 땅을 밟는 설레임에 스포일러로 실망을 안길 수는 없는 법. 자. 행운을 빕니다.


드디어 출발지로 복귀. 평온해보이는 구름 위 저 너머로부터 무사히 내려온 것에 대해 감사한다.

출발지로 되돌아오니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너무 일찍 내려왔나보다. 음. 이제 오늘 남은 시간동안 뭐하지? 한라산 등반 말고는 계획 세운게 없는데.


차에 타서 히터를 최대로 틀고 젖은 옷이며 신발을 말린다. 온기가 되살아나자 나른한게 졸리다. 그래. 일단 사우나에서 피로를 풀자. 다행히 새벽에 숙소에서 나오면서 차에 모든 짐을 실어놓은 상태여서 갈아 입을 옷을 가지고 나온 상태다.


폭풍검색. 사우나라... 여기가 해발 1100 고지인데 근처에 있을리는 없고. 아. 산방산 부근에 탄산 온천이 유명하구나. 시설도 좋아보이고 근처에서 식사도 해결하면 되겠다. 네비 찍고 바로 출발.


완전 사이다, 탄산 온천


20여분 넘게 달렸을까. 산방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으로 기이하게 생긴 것이 매력적이다. 근처에 자리잡은 산방산 탄산 온천. 세계 3대 천연 탄산 온천이라니. 입장료가 다소 비싸긴 한데 시설 깔끔하고 무엇보다 탄산 온천이라는게 매우 신기했다.


참으로 기묘한 분위기의 산방산

마치 사이다 속에 온 몸을 담그고 있는 느낌. 닥터 피쉬에 둘러 쌓여 간지럽힘을 당하는 것 같다. 공기 방울이 살갗에 생겼다가 이내 뿅뿅 하나씩 사라지는데... 이거 시원한게 중독성이 강하다. 1시간 넘게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수영복을 가져 가면 야외 노천탕도 이용할 수 있으니 반나절 정도 일정으로 여유있게 휴식을 취하다가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우나를 마치고 여벌 옷으로 갈아 입고 나오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몇 시 쯤 되었을까. 이제 밥을 먹으러 가볼까. 주변 식당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부재중 전화 2통...


탄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는 동안에 부재중 전화 2통이 와있었다.


음 누구시더라. 가만..... 이 분은 정말 오랜만인데? 갑자기 무슨 일로 연락을 했을까. 마지막 연락했던게 3~4년은 훌쩍 지난거 같은데...


무작정 이 곳 제주도로 여행온 지 24시간. 만 하루가 지난 시점. 우연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기막힌 상황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 같은 이 상황을 설명하려면 잠시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 6부에서 계속 됩니다 .....




Tol of the Hill은 재즈와 블루스를 양념반 후라이드반의 황금비율로 멋드러지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Robben Ford의 곡이다.
Top of the hill 듣기
매거진의 이전글4. Fool in the 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