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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May 02. 2021

요즘 부쩍 화가 늘었습니다.

화 대신 훈육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요즘 화가 늘었습니다.


남편이 스웨덴으로 떠난지도, 독박 육아를 한지도 몇개월.. 요즘 들어 육아할 때 여유가 없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듭니다.



예전에는 애들이 물을 흘리고 장난감을 어질러도,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했다면 요즘에는

'왜 또...'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정리하라고 말하는 것도 '같이 해볼까'같은 설득과 구슬림 대신  '안 치우면 다신 안 사줄 거야' 등의 협박과 ' 너!!!! 당장 안 치워'같은 분노가  섞여 있습니다.


절대 화를 내지 말아야지, 이성적으로 혼을 내며 훈육해야지라는 다짐은 버거운 독박 육아에 모두 무너져버렸습니다.

연필꽂이에 꽂힌 색연필. 정리해놓으면 얼마 안 되는 아이인데 어지르면 거실 바닥을 모두 어지럽힐 수 있네요

어제저녁에도 연필꽂이에 꽂혀있는 색연필을 바닥에 죄다 쏟은 후에 모른척하는 둘째에게 화가 났습니다. 치우라고 말해도 딴청만 피우고,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면서 장난만 치는 둘째가 얄밉더라고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걸까.. 살살 구슬리기에 저의 멘털이 너무 안 좋습니다.



화의 시발점. 없어진 책


사실 어제 하루 종일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책을 찾았습니다. 책 읽는 걸 녹화해서 월요일까지 보내줘야 하는데 책이 없어졌거든요. 집은 엉망이고 책은 아무리 찾아도 없고. 4살 난 둘째는 컴퓨터방에 놔뒀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책이 없더라고요.


없어진 걸 찾아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저는 '해야 하는데 못하는 상황' '다시 돌려줘야 하는 걸 잃어버린 상황'에 매우 취약하더라고요. 어질러진 집이 양념처럼 화를 더 돋웠어요. 몇 시간 후 잠깐 들린 친정엄마가 책은 찾아주셨지만 화는 그대로더라고요. 하루 종일 첫째한테 포켓몬 카드 치우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가뜩이나 이미 화가 나있는 상황에서 색연필 수십 개를 거실에 어지러 놓고 나몰라라 하는 둘째가 곱게 보일 리 없겠죠. 그리고 평소에도 둘째는 어지르는 건 즐거워하고 치우는 건 손도 안 대라고 해서 얄미웠고요.


결국 딴청만 피우는 둘째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준 시크릿 쥬쥬 장난감을 다시 가져간다고 말했습니다. 둘째의 마음은 조금 다급해지긴 했는데 여전히 치우지는 않더라고요. 장난감을 다시 상자에 넣어서 치워버렸는데도 색연필을 하나도 줍지 않았네요. 연필꽂이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에 놨냐고 계속 물어도 대답을 안 하고요.

 

다른통에 담은 색연필과 뒤늦게 찾은 연필 꽂이

결국 제가 색연필은 다른 통에도 담고 시크릿 쥬쥬는 택배 아저씨에게 다시 가져가시라고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둘째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받고 싶으면 장난감 방에 어질러진 장난감이라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리는커녕 책장에서 책을 꺼내서 보고 바닥에 어지릅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강압적으로 양치를 시키고 침대에 눕히고 나왔습니다.


둘째가 낮잠을 안 자서 피곤하기도 한 것 같고 저도 더 이상 실랑이하기가 싫었거든요.


둘째는 울다가 잠이 들었고, 첫째는 화난 엄마 눈치를 보며 집 정리에 동참했습니다. 덕분에 몇 주 동안 장난감이 가득했던 장난감 방이 깨끗해졌네요.


문득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힘든 건 엄마 또는 아빠가 없어서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한부모가정의 가장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을 테고, 아이를 떼어놓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누적된 피로와 욕구불만은 작은 원인에도 '극대노'로 표현되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는데 자꾸 화를 내고 있는 제자신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평정을 유지하기가 힘드네요.



남편이 엊그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2주 간의 자가격리를 거쳐야 하기에 아직 만날 수는 없습니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남편이 오면 시킬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정엄마는 옥탑방에서 자가 격리할 남편을 위해 먹을걸 챙겨놨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도움의 손길이 온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가 챙겨야 하는 게 하나 더 늘어났던 거죠.


남편이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가기 전에 미뤄왔던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긴 합니다. 더 이상 이 상태로는 안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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