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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Apr 26. 2021

무감각하게 만들기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궁여지책

저는 해산물을 좋아합니다. 처음 스톡홀름에 갈 때,  가면 생선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트 가면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많이 보니까요.


그런데 웬일 막상 가보니 해산물을 잘 안 팔고 어렵사리 찾아도 가격도 비싸더라고요. 우럭회도 먹고 싶고 해물탕도 먹고 싶고 생선구이도 먹고 싶은데 말이죠.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마음속으로 너무 간절해서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육아휴직 갔을 때는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꾹꾹 눌렀어요. 간절한 마음을 마취한 것처럼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렸죠. 그런데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견딜만하더라고요.





남편이 스웨덴으로 돌아간 뒤, 혼자 두 아이를 돌보며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친정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총책임자는 저죠.


기러기부부 초반, 아이들 식판을 챙기고 출근길에 자가진단 앱으로 등원 여부를 챙길 때면, 일상이 참 고단하다 싶었어요. 요 몇 주는 회사가 너무 가기 싫어서 괴로워했고요.


근데 오늘..'힘들다' '회사 가기 싫다'는 마음이 들려고 하자, 그 마음에 제동을 거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생각하면 그 마음 때문에 힘드니까, 그냥 생각하지 말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내부의 방어기제랄까요.





어제는 낮잠을 스킵한 둘째가 짜증을 내다가 저녁 6시 반쯤 잠이 들었습니다. (정말 애매한 시간이죠. 저녁 6시 반) 밤잠이길 기대하며 잠깐 우유 사러 갔다왔는데 문 밖에서 들리는 아이 울음 소리. 아차. 거실에 나와서 울고 있네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를 안아 들고 안방에서 들어갔습니다. 다시 재우려는데 갑자기 '음료수'를 먹고 싶다고 울기 시작하는게 아닙니까. 자기 전에 음료수라니 되죠. 하지만 둘째는 막무가내입니다. 혹시 소파에 있던 먹다 남은 레모네이드를 보고 그러는 건가 싶어서, 결국 둘째와 같이 거실을 나왔습니다. 둘째에게 레모네이드를 건네주니 음료수를 밀쳐냅니다. 그러고는 '뽀로로 음료수'가 먹고 싶다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뽀로로 음료수가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고장 난 장난감처럼 뽀로로 음료수만 외치며 우네요.


아 또 이 상황이구나.

울기 위해서 우는 느낌.


며칠 전에는 없는 우유를 달라고 울고불고했다죠. 밥 다 먹고 엄마랑 우유 사러 가자, 아무리 말해도 없는 우유만 달라고 울었던 게 머릿 속을 스칩니다.


결국 계속 우는 둘째를 다시 방에 데리고 가서 침대에 눕혔습니다. 진정되면 나오라고 하고 나왔네요. 침대에 누워있으면 다시 잘까 싶기도 했는데 끊어질 듯 말 듯 30분 넘게 계속 웁니다. 결국 안으로 들어가서 울다 지친 둘째를 데리고 나와 물을 주었습니다. 밖에 못 나와서 싫었다고 말하는 둘째. 이제 더 이상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것 같습니다.


같이 동화책을 읽어주니 금세 신나서 웃습니다. 한참을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웃으니 안쓰럽네요.




아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쓸 때.

한 달이 지날 때마다 반복되는 업무가 지겨울 때.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해야 하는 건지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 없는 고민이라 여기고 이렇게 감정을 지워내고 외면하는 게 맞는 걸까요.


이런 고민들 속에서 또 한주가 시작되고 한 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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