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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Jun 04. 2021

직장인으로서 꼭 마음에 두면 좋을 이야기

애 셋 팀장님의 주옥같은 조언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난 글이네요. 써놓고 다듬지를 못 해서 포스팅이 미뤄졌네요. 그래도 십여 년 회사 생활하면서 들은 이야기 중에 참 많이 느끼고 와닿았던 조언이라 글을 올려봅니다.



(20년 12월 어느 날)

지난주 고과 면담을 했습니다. 팀에 하나 있는 나쁜 고과를 저에게 주겠다고 했네요. 사실 말이지 면담이지, 그냥 통보에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작년 9월 회사에 복직하고 나서 브랜드도 바뀌고 담당 채널도 바뀌고 카테고리도 십 년 동안 해왔던 화장품이 아니라 바디, 헤어로 바뀌면서 많이 헤맨 건 사실입니다.


육아휴직 다녀오신 분들은 경험하실 거예요. 가기 전에 얼마 안 걸렸던 일들이 무한대로 걸리는 마법. 머리가 포맷이라도 된 마냥 회사 시스템의 사용방법이 기억이 안 나서 모든 버튼을 한 번씩 누르게 됩니다.


가기 전에 하는 것과 어느 정도 연장선상에 있었으면 훨씬 적응하기 쉬웠겠지만, 늘 회사생활이 마음대로 되진 않더라고요.


거기다 올초부터 심각해진 코로나는 담당 채널의 주요 활동들을 다 막아버렸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더라고요. 어렵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모바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올 6월 정도부터 저도 최선을 위해 달렸습니다. 다행히 추락하던 매출이 반등했고 영업팀들에서도 저 브랜드 담당자 진짜 열심히 했다는 소리를 들었죠.

목표도 달성했고요.


그래서 나쁜 고과를 주겠다는 말이 너무 속상했습니다.


집에서 울기도 하고, 열심히 한 걸 인정하지 않는 팀장을 원망하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지요.


내년이면 39살. 힘든 순간마다 퇴사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제 진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긴 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회사를 나가게 되면
뭐가 제일 아쉬울까?


확실히 회사가 좋은 건 남의 돈으로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는 거죠. 제가 혼자 사업한다면 몇 백씩 몇 천씩 들여서 동영상 찍고 뿌릴  수 없겠죠. 이런 제품 좋아할까? 하고 3천 개씩 쉽게 만들 수도 없을 거고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1년 동안 회사 돈으로 할 수 있는 것 중에 안 해본 것들을 다 해보고 후회 없이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찾자고.




그걸 위해 애 셋 팀장을 찾아갔습니다. 새로운 조언을 들었습니다.


애들 클 때까지만 버티겠다.
여차하면 그만두겠다


맞벌이하면 많은 사람들이 회사 다니는 걸 선택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전투력의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본인은 그 카드는 지워버렸다고 말씀하셨어요.


언제나 마음속에 사직서를 안고 살아가지만, 벌써 이 회사에 다닌지도 12년 하고 반이 지났습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생각하면, 돈을 벌지 못 한다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어떤 곳에서도 속하지 않는다는 게 겁이 납니다. 어차피 다닐 수밖에 없다면 사실 퇴로를 생각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본인의 포지셔닝을 고민해라


그 팀장님은 사실 진급을 굉장히 늦게 하신 케이스였어요. 일 잘하고 성격도 좋으신 분인데  팀장 진급할 때쯤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면서  4~5년이 지나가버렸거든요. 원망이 클 법도 한데 팀장님은 그러시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팀장 승진하시기 전까지 저한테 '우리 회사는 파트장이 좋아요 아기 키우면서 다니기 좋으니 꼭 복직해요.' 하실 정도로 그늘이 없으셨어요.


이번에 여쭤보니 본인은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히스토리도 잘 알고 제품도 잘 아는 노쇠한 고문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으려 했데요.


그러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사실 마케팅이라는 게 나이들 수록 잘하는 게 아니라고. 마케팅은 경험보다는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하고 때로는 선도해야 하는 게 중요한 직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트렌드를 공부해야 하는데 젊은 아이들은 그게 생활이기 때문에 점점 젊은 애들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세우신 전략이

후배들과 친해져서 찾아오게 만들자


셨데요. 그래서 회사의 후배 아이들한테 '요즘 뭐 없니' 하면 알려줄 수 있게 친해지려 노력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상사에게 어떤 면에서
쓸모 있는 카드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는 말씀을 했어요. 어떤 일이 떨어졌을 때 자신 있게 '이건 **한테 맡기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에요. 그 게 바로 본인의 강점이자 본인이 회사 내에서 조직 내에서 갖는 포지션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어떤 회사든 이상한 사람은 있고, 상사가 불합리하게 굴 때도 많죠. 그럴 때마다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상사가 화를 내면 그냥 고칠 부분만 받아들이고, 그 감정까지 받을 필요가 없다


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회사 사람들이 화가 많은데 특히 위로 갈수록 목표가 높아지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라고 말이죠. 본인이 옛날 사람이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그러면서 사실 본인은 회사에서 키보드 소리 크다고도 혼나봤다시는 거 있죠. 근데 그냥 저 사람이 스트레스가 많구나 하고 넘기시는 것 같더라고요. 굳이 그런 것 하나하나에 감정 소모할 필요 없으니 말이에요.


그러면서 학교 다닐 공부 잘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전 예쁨을 받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잘못도 안 하고 설사 잘못을 한데도 크게 혼나지는 않는 그런 조용한 모범생이었죠. 그런 사람들이 칭찬받는데 익숙해서 자신에게 누군가 뭐라고 하는 걸 잘 못 견딘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소위 말하면 맵집이 없다고나 할까.


지금 상사랑 일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게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었어요. 본인의 기분이 괜찮을 때 보고를 하면 잘한 일은 '너무 잘 되었다' 부족한 건 '이건 이렇게 해보자'인데, 기분이 안 좋으면 좋은 일도 '알겠어'정도 반응했어요. 특히 본인이 생각과 다른 내용이 있을 때는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짜증과 화를 냈고요. 심지어 미리 보고하고 오케이한 건이었는데도 관련 품의가 올라왔을 때, 불러서 화를 내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애 셋 팀장님께 그 얘기를 하니, '지난번에는 보고한 건'이라고 말했냐 하시더라고요.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라고 하니, 그래도 자기는 그런 일이 있을 때 화 다 풀린 다음에라도 얘기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위로 올라갈수록 신경 쓸 게 많아서 이야기해도 자꾸 까먹는 다시며, 그렇다고 그런 상황에서 꾹꾹 눌러 놓는 건 본인에게도 힘드니 지나가는 말처럼 이라도 하신데요. 자기는 예전에 너무 힘든 때가 많아서 지금 정도는 예전에 비하면 훨씬 괜찮은 거라 잘 넘길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시며 말이에요.



그리고 또 주옥같았던 몇 가지 팁들이 있습니다.


상사에게 같은 내용을 A방법으로 이야기했을 때는 설득이 안 되었는데, B방법으로 이야기했을 때 설득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그럼 똑같은 내용인데 말할 때마다 바뀐다고 폄하할게 아니라, 

저 사람을 설득하는 팁을 찾았구나

라고 생각하라고 말이죠. 한국 회사에서는 보고를 잘하는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기 쉽죠. 보고를 잘한다는 것이 어쩌면 윗사람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해서 설득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삽질 같은 저 과정이 이 사람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생각하는 거죠.



두번째

의견은 계속 제시해라


이 곳은 공산당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은 모두 다를 수 있다고. 혹시라도 모두의 의견이 같다면 '여기가 꿈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시면서 말입니다. 모범생으로 자라면, 맞는 답을 내는데 익숙해져서 확신이 없으면 잘 의견을 안 내게 돼요. 특히 지금처럼 본인의 주장이 강한 리더 밑에 있을 때 더 힘들죠. 나의 의견이 다양성에 의해 존중되는 게 아니라 틀린 것으로 평가받기 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시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 중에는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올바른 결정을 위해서는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나의 의견을 말해줘야 한다고 말하셨어요.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듣고 선택하지 않는 것과 아예 듣지 못하고 결정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리고 그때 가장 속상했던 포인트, 평가.  사실 한국 기업에서 평가라는 게 그 해의 퍼포먼스만 가지고 하긴 쉽지 않죠. 승진 예정자도 있고 작년에 낮은 고과를 받은 사람들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빼놓고 나머지 중에서 돌아가며 나쁜 고과를 받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승진 이듬해나 복직 첫해, 출산 휴직을 앞두고 낮은 고과를 받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집니다. 

나쁜 평가를 받았을 때
그게 진짜 나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라면 마음이 더 아플 테지만,

상황상 어쩔 수 없이, 억울하게 받았다면 너무 깊이 들어가서 본인을 힘들게 하지 말라고.
고과와 상관없이 노력한 나 자신을 칭찬해줘라

고 하시면서 말이에요.




애 셋 팀장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참 많이 위로받고 다시금 전투력을 불태워 연말과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최대한 상사의 의견에 맞추려 노력하고, 고민이 많은 성격 탓에 느렸던 속도를 개선하고자 최대한 고민하지 않고 움직였던 연말연시였습니다.


늦은 포스팅이지만 회사생활에 주옥같았던 충고라서 이렇게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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