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드디어 어린이집에 가다

여긴 스웨덴이에요. 포기하면 마음 편한 스웨덴 어린이집

by 노랑연두
남편과 나, 우리 둘에겐
외국 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친구들의 교환학생과 어학연수 시절의 이야기와 외국 영화, 그리고 다른 나라에 사는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합해져 만들어낸 반짝반짝 빛나는 핑크빛 일상.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외국생활이란


'자전거를 타고 빵집을 달려가 바게트 빵을 사서 아침으로 먹고, 멋진 풍경 속을 지나다 미술관을 들리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부리는 . 그리고 저녁때면 프렌즈의 친구들처럼 맥주 한잔'


였는지 모른다.

남편과 함께 일하는 캐나다 디자이너 가족과 함께 했던 점심식사@restaurant J



처음 스웨덴행이 결정되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대조적이었다.

'진짜 좋겠다~ 부럽다.'
vs
'말도 안 통하는데서 애를 어떻게 키우냐.'


비율로 따지면 8:2 정도로 첫 번째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실 나도 누군가 외국에 나가게 되었다고 하면 '좋겠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하.지.만.


외국에서 아이 키우는 건..

외국이라는 환상만 걷어내면 낯선 도시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주위에 남편 발령으로 연고가 없는 먼 지방으로 아이와 함께 가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아마도 도와줄 사람도 하나 없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냐고 걱정해줄지 모른다. 아이가 아플 때, 혹은 내가 아플 때 모두가 아플 때도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고립된 육아.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외국이라는 사실을 부러워하며 잊곤 한다.


이런 건물들도 한달만 보면 익숙해집니다



여행 같은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어디든 현실이고 생활이다.


대학교 4년, 대학원 2년 그리고 회사 8년. 힘들고 지칠 때도 많았지만 끊임없이 달려왔던 내 인생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자리를 돌고 있었다. 예쁠 때도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을 볼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늘 함께였다.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유모차 없이 홀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먹이기, 기저귀 갈기, 재우기 같은 인간의 생리욕구 말고 다른 차원의 일을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믿고 아이를 맡길 만한 부모님도 언니도 친구도 여기엔 없었다. 베이비시터를 구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타지에서 낯선 이에게 아기를 맡기는 게 불안해 주저해서 있었다.



아이가 8개월이 되었을 때, 남편 회사에서 할로윈파티가 열렸다. 역시 선진국은 선진국인지 가족 있는 직원들을 위한 배려가 놀라웠다. 아이들 위한 별도 놀이 공간 마련은 물론 베이비시터까지 구해놨다는 게 아닌가.


이 참에 한번 경험해보고 괜찮으면 앞으로 베이비시터를 써봐야지.


자그마한 키의 베이비시터는 시터 경험이 많다고 걱정 말라며 아이를 받았다. 하지만, 행사장으로 간지 30분이나 지났을까. 자신감 넘치던 그녀로부터 너무 운다고 도저히 안 될 거 같으니 오라는 연락이 왔다. 아이는 눈물 자극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보고 웃었다. 후로 베이비시터 구하자던 말이 쏙 들어갔다.

할로윈파티@spotify





스웨덴의 어린이집은 12개월, 첫 생일이 지난 아이부터 시작할 수가 있다. 나의 복직은 4월 중순. 2월 초에 태어난 아이는 길어야 2달 정도를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었다. 초반의 적응기간을 생각하면 풀타임으로 맡기는 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6개월 동안 외국생활에 적응하느라, 그리고 홀로 육아하느라 힘들었던 터라 짧더라도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스톡홀름 내 어린이집 관련 정부 사이트

스웨덴에서는 생후 6개월이 되면 어린이집 신청을 할 수가 있다. 5순위까지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인기가 많은 어린이집은 대기가 길다. 대신, 3개월 보장 시스템이 있어서, 신청하고 만 3개월이 지나면 무조건 어린이집을 배정해준다. 이때 배정된 어린이집은 신청과 관련 없이 빈자리가 있는 곳 중 최대한 집 근처로 배정해준다.


일단 어린이집을 신청하려면 스톡홀름 시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 주민번호(PN= personal number)와 인증 수단(일종의 공인인증서)이 나오지 않았던 상황이라 양식을 채워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방식으로 신청을 진행했다.








난생처음 보내는 어린이집이 '스웨덴 어린이집'이라니. 낯설고 어색했지만 열심히 정보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forskola.stockholm로 접속하면 모든 어린이집의 위치와 시설 그리고 학부모 평가를 확인할 수가 있다. 크롬으로 자동번역 기능을 켜고 짧은 영어실력으로 최선을 다해 자료를 찾았다. 대부분 스웨덴어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로 혹은 삼개국어로 운영되는 어린이집들이 있었다. 우리는 영어 어린이집 3곳과 집 근처 어린이집 2곳을 신청했다.



신청한 지 만 3개월이 지나자 스톡홀름시에서 st göran förskola에 배정해줬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이 어린이집은 원아가 백 명이 넘고 건물이 3개나 있는 큰 어린이집이었다. 어린이집이 배정되면 등원 여부를 1주일 안에 회신해야 한다. 어린이집을 가더라도 미리 신청했던 어린이집의 대기는 유지할 수 있다.


자리가 나면 1~2주 이내에 입소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스웨덴은 입학허가를 알려준 날 기준으로 최소 4주 이상 여유를 두고 입소한다. 처음 받은 입학 날짜도 2달 후였던 걸로 기억난다.

모든 게 빨리빨리 진행되는 한국과 달리 스웨덴은 모든 것이 느리고 미리 계획되어있다. 여름휴가철인 7~8월 수요조사를 3월에 시작할 정도이다. 이렇게 미리 받은 등원 인원을 바탕으로 필요한 인력을 확정해서 대체인력을 뽑기 때문이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회사를 가야 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회사도 마찬가지로 미리 받은 휴가 계획을 기준으로 업무 목표를 세우기 때문이다. 느린 일처리가 역으로 근로자의 삶을 예측하게 하고 계획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첫 돌이 지나고 새 어린이집에 입학했을 때 적응기간은 4주. 첫 번째 주에는 보호자와 함께 있었고 두 번째 주부터는 혼자 시간을 늘려가며 적응을 해나갔다.

나와 함께 있을때는 키즈 카페에 온 듯 즐겁게 지내던 아이는 혼자 있게 되자, 첫 날, 딱 하루 잘 지냈다. 그 다음 날부터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간다는 걸 깨닫고 온몸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도착해서 아이를 유모차에서 내리면 땅을 안 밟기 위해 발을 하늘로 쳐들었다. 내가 떠난 후 한 시간 내내 울어서 선생님이 전화를 주기도 했다. 마음이 아팠다. 어차피 얼마 다니지도 못 할 어린이집을 아이가 저렇게 싫어하는데 꼭 보내야 하는 걸까? 자꾸 나쁜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감기는 떨어지지 않고 열이 나서 집에 일주일씩 데리고 있기도 했다. 그냥 한국 갈 때까지 계속 같이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변했다.


하지만 결국은 끝까지 보냈다. 어차피 곧 복직이었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이는 헤어짐을 경험할 터였다. 그 헤어짐과 적응을 나와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곧 한국으로 돌아갈 텐데 육아에 많이 지쳐있던 나에게 시간을 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스웨덴 생활을 잘 경험해보지 못하고 가는 것 같은 아쉬움을 해소하고도 싶었다. 그러면서도 늘 걸림돌이 되었던 영어의 벽을 넘고 싶기도 했다.


적응기간은 한 달이 넘게 걸렸고, 아이가 9시 반~10시에 등원해서 4시까지 풀타임으로 다니게 된 지 3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길어야 2달 다니는 어린이집이었지만, 그마저도 어느날은 너무 울어서, 또다른 날은 열이 나서 아이를 데려가라는 호출이 잦았다. 의도한 영어공부도 스웨덴 경험도 못 한 채 첫 번째 스웨덴 생활은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 경험이 쓸모없던 것만은 아니었다.


아는 게 힘이라고 두 번째 스웨덴 생활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되었으니 말이다. 알고 보니 적응기간은 어린이집마다 차이가 있었다. 첫 번째 어린이집처럼 4주 정도 차근차근 적응하는 곳도 있지만, 2년 뒤 두 번째로 다녔던 어린이집처럼 보호자와 함께 4일 후에 바로 풀타임으로 지내는 곳도 있다. 아는 사람은 한 달 넘게 어린이집 앞 나무에서 아이를 지켜보며 낮잠을 못 재우고 데려오기도 했다. 한국도 어린이집마다 방침이 다른 것처럼 스웨덴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어린이집이 동일하게 진행하는 것도 있다. 바로 바깥놀이. 영하 이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씨나 심하게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씨가 아니라면 어린이집 일과의 시작과 끝은 무조건 바깥놀이이다. 처음 다녔던 어린이집은 st. Göran förskola 였는데 Göran 성당에서 운영하는 대형 어린이집으로 건물 두 개에 마당이 넓어 놀이터도 크고 넓은 곳이었다.


바깥놀이를 하고 들어오면 아이들이 스스로 옷, 장갑, 신발을 벋아서 자신의 얼굴이 붙어있는 자리에 놓는다@st Göran förskola

일과는 이렇다. 보호자는 아이를 놀이터에 있는 선생님에게 건네주고 인사를 한다. 아이들은 거기서 모래놀이도 하고 미끄럼틀도 타며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되면 실내로 들어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신발장이 있어야 할 곳에 아이들 사물함(?)이 있다. 거기에서 신발과 외투, 장갑, 모자를 벗은 후 정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때 신기한 것은 만 1살이 지난 어린아이들에 게도 스스로 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만 2살이 넘어가면 스스로 자신의 옷을 벗어 자리에 정돈하는데 익숙해진다. 물론 혼자서 잘 벗겨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미리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는다. 혼자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래놀이 자주 하고 부슬부슬 비도 많이 오는 스웨덴의 날씨 때문에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갈 때는 장화를 주로 신는다. 겨울철에는 따뜻한 방한 장화,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레인부츠로 갈아 신는데, 이런 신발의 특징이 벗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찍찍이 운동화도 아니고 목이 긴 장화를 신으면 어른들도 시간이 걸리는데 아직 어린아이들이 벗으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래서 신발장이 있는 공간에는 신발을 걸어 쉽게 뺄 수 있도록 고안된 물건과 낮은 의자가 있다. 아이들은 줄지어 들어와 신발을 빼고 옷을 벗어 자기 자리에 정리한다. 손도 씻고 화장실도 다녀오면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데만 30분씩 걸리지만 아무도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혼잡할 수가 있으니 그룹을 지어 순차적으로 들어오고 먼저 들어간 아이들이 실내 활동을 한다. 그리고 모두 들어가고 나면 간식을 먹는다. 오전 간식은 대부분 과일로 그 자리에서 잘라서 준다.

바깥 놀이 시간


오전 간식시간, 한국 부모라면 난리 날 일들이 발생한다.


첫째, 아주 어린아이가 아니면 껍질을 깎아주지 않는다. 많이 양보해서 사과까지는 껍질째 먹는다 쳐도 배를 껍질째 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게다가 그 과일들을 잘 씻은 채 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과일에 물기가 별로 없고 껍질 위에 스티커가 붙어있으니 말이다.


둘째, 날이 좋은 날이면 바깥활동 길어지고 오전 간식을 밖에서 먹는다. 스웨덴 바깥놀이는 모래놀이가 기본이다. 아이들 장갑이며 옷은 모래 범벅인데. 거기에 장갑만 벗겨서 과일을 쥐여준다. 돌 지난 아이를 상상해보자. 과연 그 아이가 손에 든 과일이 입에 모두 들어가기 전까지 얌전하게 있을까? 아이들은 과일 든 손을 내리기도 하고 올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옷에 묻어있던 모래들이 과일에 묻는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야외테이블이라서 비도 맞고 날아온 모래가 붙어있는데 물티슈 같은 걸로 닦지도 않는다. 이건 아동학대가 아닌가 싶은 게.. 과일이 모래바닥에 떨어지고 주워 먹어도 놔둔다. 심지어 주워주기도 한다. 적응기간이라서 아이와 함께 있는데 20개월도 안 된 아이가 모래 범벅인 과일을 먹고 있는 걸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던 기억이 난다.


문화적 차이라고 쓰고 위생관념 제로라고 읽을 수밖에 없는 현상들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바깥 놀이를 할 때였다. 돌이 갓 지난 아이가 모래 놀이를 할 때 옆에서 계속 지켜보지 않는다면 꼭 하는 게 있다. 바로 모래 먹기.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는 나이라서 모래 또한 입으로 가져가기 쉽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아이가 온통 모래 투성이인 것이다. 일단 아이는 모래를 먹어서 입안에 모래가 잔뜩 들어있고 머리 뒤에도 모래가 가득했다. 옆에 있던 교사에게 물어봤더니 모래 놀이를 하다가 조금 먹었지만 안 된다고 했더니 더 이상 먹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머리 뒤의 모래는 뒤에 앉은 아기가 삽으로 모래를 파다가 맞은 거라며 울지 않았으니 괜찮단다.


읭?


도대체 무엇이 괜찮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아이가 모래를 먹다니! 한국이라면 병원이라도 달려갔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아무리 무던한 부모라도 화장실에 데려가 씻겨줬을 상황이었다. 근데 괜찮단다.

접시를 준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했던 두번째 어린이집

밥을 먹을 때는 어떤가. 방금 전까지 색연필로 그리고 놀던 테이블을 열심히 닦더니 거기에 빵을 하나씩 놓고 햄, 오이, 치즈를 나눠준다. 접시는 어디로 갔기에 테이블 위에 바로 빵을 올려놓는 걸까? 다행히 두 번째 어린이집은 접시를 나눠주긴 했다. 하지만 아직 잘 못 씹는 아이의 햄은 테이블에 놓고 자르고 있더라.

그리고 돌이 갓 지난 아이들이지만 스스로 먹도록 한다. 손으로 잡고 먹고 떨어뜨린 걸 주워 먹고 난리도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만 도와줄 뿐 그렇게 먹도록 내버려 둔다. 그래서 첫 번째 어린이집에서 거의 매일 점심이 끝나면 옷을 갈아입혀줬는데 까만 비닐봉지에 들은 옷에는 온통 토마토소스 투성이었다. 그렇게 난장판을 해도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준다. 그리고 바닥에 흘린 음식은 한꺼번에 치운다.


설상가상으로 양치는 안 하고 낮잠이 드는데, 양치시간이 아예 없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칫솔질을 봐주는 건 너무 과한 업무인 걸까? 너무 어려서 빼먹는 건 아닌 게 첫째가 3돌이 지나서도 여전히 그런 시간은 없었다.




아마 이 글을 읽다 보면, '스웨덴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하고 느낄지 모른다. 아기가 지저분한 거 만질까 물티슈 가지고 다니면 이곳저곳 이것저것 닦던 한국 엄마가 보기에 아동학대와도 같은 상황이 아닐까.

하지만 '여긴 스웨덴이에요.' 어차피 여기에선 모두 이렇게 산다. 안 보내고 계속 데리고 있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밖에.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이를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돌아보게 된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조금 지저분해도 아이는 크는데 말이다.


언어의 한계로 혼자 노는 일이 많아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첫째는 늘 어린이집이 재밌었다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둘째도 고작 2주밖에 못 다녔지만 마지막날에는 친구까지 사귀며 잘 적응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8.BVC(barnavårdscentral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