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BVC(barnavårdscentralen)

6개월도 안 된 아이 예방 접종은 어떻게 시키나요?

by 노랑연두

아이가 돌까지 받아야 하는 예방접종은 무려 13개! 심지어 처음에는 한 달 간격이라서, 돌아서면 예방접종시기가 온다.


스웨덴에 간다고 할 때, 먼저 엄마가 된 친구가 말했다.


'6개월까지 접종할 것도 많은데 6개월은 지나서 가지.'

7월30일생 아이 기준으로 보면 7월 8월 9월 11월 1월 끊임없이 예방 접종을 받아야한다.여러개를 며칠간격으로 나눠 맞추기도 하니 병원이 내 집같다.


다행히도 새 회사에 받은 출근일은 첫째가 6개월 하고도 10일째 되는 날. 우리는 가기 전에 맞을 수 있는 예방접종을 모두 땡겨 맞은 채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음 예방 접종은 돌아올 터. 스웨덴에서는 예방접종을 어떻게 맞는지 몰라 고민만 하고 있던차에, '티티'가 물었다.


오픈유치원에서 만나 첫번째 스웨덴 생활에 큰 힘이 되어줬던 티티@ 그녀의 그리스 여름휴가 사진


'시원이는 어디 BVC에 다녀?'


'응? BVC가 뭔데?'


'아기들 잘 자라는지 체크하는 거야.'


'어린이 병원이야?'


'아니, 병원은 아니고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BVC에서 잘 자라는지 체크해.

담당 간호사가 있고, 주사 맞을 때는 의사가 와.'


'거긴 어떻게 가는 거야?'


'나는 크리스티나 베리 역에 있는 BVC에 다니는데 너도 거기 가면 될 거야.

비용은 무료고 예약을 해야 해.

아마 우편으로 신청서 같은 게 왔었을걸.'




그러고 보니 광고전단지 속에 섞여 있던 신청서가 생각났다. 낯선 스웨덴어로 써져 있어 무슨 내용인지 모른 채 번역하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그 서류였다.


스웨덴 공공 의료사이트인 1177에 쓰여진 BVC 설명 @ https://www.1177.se/barn--gravid/vard-och-st


티티의 말에 따르면, BVC에서 정기검진을 하려면 미리 예약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차마 전화로 예약을 잡을 엄두가 안 났다. 지금도 썩 편하지는 않지만, 그때만 해도 전화영어는 우리 부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영어도 힘든데다가 발음하기 힘든 스웨덴어 주소를 말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당시 우리 집 주소는 'Sjöbergs väg 3'. 저기서 사는 8개월 동안 우리는 수없이 저 주소를 말했지만, 어떤 스웨덴 사람도 알아듣지 못했다. 전화로 몇 분 동안 얘기하다 지처 결국 핸드폰 번호를 받아서 주소를 보내줄 정도였다. 발음이 궁금하다면 구글 번역 앱에 Sjöbergs väg 3 복사해 들어보라.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쇠르 베리 베그 뜨리에'. 음성인식으로 구글이 당신의 발음을 알아듣는다면 스웨덴어를 배우길 추천한다. 당신은 이미 큰 산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티티는 8개월 정기 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스웨덴에 왔으니 스웨덴법을 따라야하는 법.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전화예약 대신 '직접 방문'이었다. 티티가 소개해준 bvc에 도착하니 키가 170은 훌쩍 넘어 보이는 북유럽 여인이 나에게 물어봤다.


'너 예약했니?'


스웨덴은 모든 게 예약제인터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행히 원래 있던 진료가 취소되어 시간이 있다며, 그녀는 스웨덴어로 된 신청서를 채우는 걸 도와주었다. 그 후 2주 후로 예약을 잡아줬다.


첫째와 내가 갔던 첫 BVC

Bvc는 참 독특한 곳이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소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 대기 공간에는 마치 키즈카페처럼 아이용 텐트와 주방 놀이, 블록 등의 장난감들이 놓여 있다. 그녀는 아이와 놀 곳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들려서 놀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간호사들은 자신의 진료실을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도 장난감이 있다. 아이의 건강을 체크하는 곳이지만 아이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스웨덴인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담당 간호사를 갖게 되고 정기적으로 bvc를 방문해 발달 과정을 체크한다. 우리나라라면 조리원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신생아들이 와서 건강상태 체크도 받고 예방접종도 맞는다. 모든 것은 무료로 진행된다.





BVC에서 받았던 첫진료는
참 인상적이었다.


시작은 평범했다. 먼저 아이의 키와 몸무게, 머리둘레를 쟀다. 그리고 아이가 잘 먹는지, 모유수유는 하는지, 이유식은 시작했는지, 잠은 잘 자는지 물었다. 혼자 앉을 수 있는지, 잡고 일어설 수 있는지 같은 발달 사항을 물었다. 한국 소아과에서 영유아 검진을 가면 측정하는 수치들과 물어보는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당신은 어떤가요?'

'아이는 잘 지내고 있고..'

'아니요 당신이요,

나라면 이렇게 어린아이를 데리고

낯선 땅에 와서 키운다면 힘들 거 같은데, 어때요?'


그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스웨덴에 도착한 지 두 달 남짓. 낯선 땅에서 적응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녹아들지 못해 힘들어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지친 나를 보듬을 여유가 없었다. 그저 좀 더 힘을 내라고 채찍질을 할 뿐.


그런데 처음 보는 스웨덴 사람이 나를 걱정해줄 줄이야. 심지어 내가 아닌 아이를 체크하러 온 곳에서 말이다.아이가 아닌'엄마'의 상태를 물어줬다는 게 얼마나 특별했는지 모른다. 물론 내가 운 좋게 따뜻한 사람을 만났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아이와 부모에 대한 스웨덴의 인식이 반영된 일화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아이가 최우선이 되지 않는 스웨덴 특유의 분위기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이번에는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스웨덴에 와있었다. 근처 BVC에서 보낸 우편이 새로운 집에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새로운 bvc는 병원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어서인지 아늑함은 좀 떨어졌지만 상태가 안 좋으면 언제든 의사를 볼 수 있다는 든든함이 있었다. 참고로 대부분의 BVC는 상주하는 의사 없다. 담당 간호사가 검진을 하며 접종이 필요할 때만 의사가 오는 날에 맞춰 예약을 잡아주는 시스템이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바로 첫째 3돌 정기검진 때였다. 우리나라 영유아 검진처럼 스웨덴도 정기 검진이 있다. 비교적 단순하던 검사가 3번째 생일이 되니 달라졌다. 키, 몸무게, 시각, 청각 등에 신체나 지적발달까지 추가되었다.

카드를 늘어놓으며 흥미롭게 시작된 3돌 정기검진.

신체 계측을 마친 담당 간호사는 여러 개의 카드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첫째가 고른 카드에 따라 마치 게임하듯 검진을 시작했다. 듣고 있는 카드를 고르면 청력 검사를 하고, 그림을 맞추는 카드를 고르면 아이와 함께 그림을 기억하는지 검사하는 식이었다.

검사를 받는 내내 신나했던 첫째@bvc

그런 장치 덕분이었을까 45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는 집중해서 미션을 수행했다. 검사마다 격한 칭찬을 받은 덕분인지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집에서 작성한 검진표를 스윽 보고 몇 분만에 끝나는 한국의 영유아 검진보다는 기관에서 받는 검진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한국에서도
저런 케어가 가능할까?


검진을 받고 돌아오며 내내 생각을 했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첫째, 한국 소아과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환자수와 진료시간이 반비례해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하나하나 검진을 해주기에는 한국에서 인당 진료시간이 턱없이 짧다.


둘째, bvc는 병원이 아니라 검진만을 해주는 별도 기관이다. 또한 미리 예약을 해서 스케줄을 잡기 때문에 여유있는 검진이 가능하다.


셋째, 봐주는 사람이 의사가 아니다. 경험해보니 이런 검진은 꼭 의사일 필요는 없었다. 의사보다 간호사를 배출하는 데 거리는 시간이 적게 짧으니간호사가 담당하는 게 좀 더 효율적인 듯했다. 이상이 있거나 특이사항이 있다면 의사가 볼 수 있도록 예약을 잡아주면 되니 의료공백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솔직히 우리나라 소아과에서 저런 케어를 기대하긴 쉽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보건소가 주체가 된다면 괜찮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로 운영되는 아이발달센터를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아프기 쉬운 생후 몇 년 동안 담당 간호사가 계속 건강과 발달과정을 봐준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경험해지 못 했다면 알지 못 했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지지망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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