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예방접종도 자주 해야 할 뿐 아니라 감기도 쉽게 걸린다. 39도, 40도가 넘어가는 일도잦다. 하지만 아이의 고열을 흔하다고 쉽게 넘길게 아니다. 심각한 병 때문에 열이 오른 것일 수도 있고, 단순 감기더라도 고열로 인한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도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맘 카페에 가면 아래와 같은 글이 다양한 버전으로 바뀌어 꾸준히 올라온다.
"아이가 39도인데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열이 안 떨어져요, 지금 응급실 가야 할까요?
그때 고민하는 건 지금 응급실을 갈 것인가? 아니면 내일 소아과를 갈 것이냐?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다르다.
스웨덴은 육아에 대한 인식, 제도, 육아 분담까지 여러 면에서 아이 키우기에 좋은 나라이다.
하. 지. 만. 의료만큼은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8월에 처음으로 스웨덴에 도착한 우리들이 여름을 채 맛보기도 전에, 바람이 차가워져 버렸다. 북유럽의 여름은 그렇게 빨리 끝났다.
그래도 아직은 해가 길고 볕이 좋던 날이었다. 놀이터에 있는 얕은 연못 같은 곳에서 어느 아빠가 아이를 놀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럼 나도 넣어줘 볼까?
첫아이, 늘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고 싶던 터였다. 6개월이 갓 지난 첫째의 바지를 올리고 맨발로 물에 넣었다. 물을 몇 번 첨벙 거리던 아이는 금세 나오고 했다. 새로운 경험을 하길 바라는 내 욕심에 아이를 바로 빼주지 않고 놀아주기 시작했다.그래 봤자 십 분이나 놀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저녁. 아이는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감기는 몇 달에 걸쳐 괜찮아졌다가 심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어느 날, 열이 39도 넘게 오르고컹컹거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들판에 돌아다니는 야생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메마른 기침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무리 찾아도 소아과가 없는 것이다.
왜 소아과가 없지? 결국 한참을 뒤지다가 못 찾고는 근처에 있는 일반 병원에연락을 했더니가능한 날 예약을 잡고오란다. 아파 죽어가도 예약 안 하면 의사도 못 보는 건지 투덜거리며 예약을 했다.
처음으로 갔던 병원@Doktor Com hem
예약 당일, 병원에 가보니 인도계로 보이는 의사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에게 증상을 설명하자 피검사를 받게 했다. 자그마한 손가락에 콕하고 바늘을 찔렀다. 그리고 십여분 정도 기다리자 결과가 나왔다. 검사 결과를받아 든 의사가 말했다.
"Just cold."
'그냥 감기야, 물 자주 먹고 쉬어, '
'그 말은 나도 하겠네'
속마음을 삼켰다. 대신 약은 따로 없는건지 물었다.
'해열제 있니? 열나면 해열제 먹여.'
힘들게 예약하고 아침부터 서두른 게 허무하게 약 하나 없이 빈 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스웨덴에서는 아무도 감기로 병원에 안 간다고, 자연치유에 맡긴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돌도 안 되는 아기가 며칠째 열이 나는데 설마 그렇겠냐 싶었는데, 들리던 풍문이 사실임을 몸소 느낀 하루였다.
그러고 나서 자연치유가 되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였을까.
하지만, 그날 저녁 첫째는 짙은색 토를 조금 했고 그다음 날 남편을 만나러 가는 지하철에서 2번, 마트 안에서 1번,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아주 크게 검은색 토를 했다. 아무것도 안 해주는 병원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틀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또 피검사를 하고 의사가 말했다.
'Just cold.'
욕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 작은 아이가 숨쉬기 힘든 상태로 얼마나 더 밤을 견뎌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안 해도 진짜 괜찮긴 한 건지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다행히도 의사는 상급병원으로 가도록 편지를 써주겠다고 했다. 염증 수치는 낮아져서 낫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아직 어린 데다 숨 쉬는 걸 힘들어하는 거 같다며 말이다.
스톡홀름 근방에 있는 유일한 소아과@Karolinska University Hospital
그 길로 스톡홀름의 유일한 소아과인 캐롤린스카 대학병원을 향했다. 그때가 11시쯤이었을 것이다. 전날 '아기 병원 갔다가 출근할게'라고 말해놨던 남편은 결국 '오늘은 못 갈 것 같아.'라고 연락을 남겼다.
어릴 적 서울대병원에 자주 입원을 했던 나에게 병원은 그렇게 낯설거나 차가운 곳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는 아련한 유년시절의 추억이 있는 장소였다. 그 날 찾은 캐롤린스카 대학병원도 어릴 적 추억이 물씬 나는 곳이었다. 곳곳에 알록달록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놀 수 있는 장난 감방이 있었다. 심지어 병원에 소속된 피에로들이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주고 책을 읽어주는 아동 친화적인 곳이었다.
아동친화적인 병원. 소아과병동에는 상시 근무하는 삐에로가 있다
하. 지. 만.
정말 굼벵이도 이런 굼벵이가 없었다.
일단 처음에 접수를 한다. 잠시 후, 진료 코너에서 간호사가 키 몸무게 등을 체크하고 아이의 상태를 묻고 기록했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기다리니 진료실로 안내해줬다. 침대와 세면대가 있는 방이었다.
우리는 전용 진료실에 앉아 기다리면 의사가 방문해서 진료를 봐줬다.
한참을 기다리니 의사가 왔다. 앞의 간호사와 비슷한 체크를 다시 했다. 우리 둘은 혹시나 여기까지 왔는데 물 먹고 쉬라고 할까 싶어, 아이가 밤새 컹컹거리면서 기침을 해서 잠을 못 잔다는 걸 강력하게 어필했다. 의사는 진료실을 나갔다.
한참 후 다른 의사와 함께 들어와서 진찰을 시작했다. 둘이서 한참을 얘기하더니 아이가 목이 부어서 그런 것 같다며 기도 확장제를 놔주겠단다.
주사액을 만들러 갔는지 또 한참을 기다린 후에 주사액을 가지고 와서 아이에게 연결했다. 똑똑 떨어지는 주사액이 다 들어간 후에도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니 1시간을 더 기다리라고 했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병원을 나가는데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기도 확장제 하나 맞는데 하루가 다 간 것이다. 그나마 널찍한 진료실이 우리에게 배정되어서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기도 확장제 하나를 놓기 위해 그 큰 공간이 하루 종일 쓰이고 있었던 것이아닌가. 비효율도 그런 비효율이 없었다.
게다가 울지 말라고 아이의 몸에 진찰할 때마다 비눗방울을 어찌나 불어대는지, 그 날 하루 비눗방울만 대여섯 차례 봤던 것 같다. 울든 말든 5분 만에 모든 처치를 끝내는 한국식 소아과에 익숙한 토종 한국인에게는 속 터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진료라도 받았지, 우리의 응급실 방문기는 더 험난했다.
두 번의 병원체험은 스웨덴 병원에 대한 극심한 불신을 심어주었다. 웬만큼 열이 나도 해열제만 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자다가 재본 체온계에는 40.9도가 찍혀있었다. 때마침 스웨덴에 계시던 엄마는 단백질 변성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병원을 가라고 재촉했다.
그때가 새벽 2시. 스웨덴에 와서 처음으로 택시를 불러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대기인원은 7명, 의사는 모두 6명이라고 했다. 접수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응급실이면 일단 의사가 와서 잠깐 봐주지 않나? 그런데 여기는 아무리 기다려도 의사가 우리를 봐주지 않았다. 더 이상했던 건 1시간 동안 대기인원이 하나도 줄지 않던 것이다. 의사가 6명이나 되는데도 1시간 동안 한 명도 잠깐 나와서 보지 않는다니.
기다림에 지쳐 접수대에 의사는 언제쯤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스웨덴에서는 응급실이라도 의사는 담당 환자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다른 환자를 봐주지 않는단다. 아마 여기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보다 8시에 여는 소아과 외래를 보는 게 빠를 거라는 조언을 해줬다.
결국 새벽 3시 반, 한밤중의 응급실행은 의사 한번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한참 전에 잠에서 깨서 응급실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열은 해열제 덕분인지 내리기 시작한 터였다.
스웨덴에 있으면 한국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의료혜택을 받았는지 느끼게 된다. 걸어가다 보면 흔하게 병원을 볼 수 있다. 의사와의 만남은 예약 없이 가능하며, 약을 쉽게 살 수 있다. 이런 일상적인 일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당연한 게 아님을 크게 느끼는 것이다. 충분히 고마워하고 자긍심을 가져도 좋은 제도이다.
8개월 만에 한국에 와서 바로 간 곳은 병원이었다. 5분 진료만에 감기, 결막염, 후두염, 중이염의 병명을 알려주고 약을 잔뜩 주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병원 가기가 쉽다고 너무 많이 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긴 하다. 한국에서는 콜록거리면 바로, 열이 나면 바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약을 타 오게 된다. 그런데 이게 아이의 면역력 형성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잦은 방문 때문에 의료진들의 피로도가 올라가고 정말 필요한 환자들을 면밀히 관찰할 시간을 뺏는 건 아닐까?
결론은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감사하되 너무 남용하진 말 것. 감기에 걸려도 물을 마시고 신선한 공기를 쐬며 이겨나가는 나라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