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능력 부족인가 영어실력 부족인가

조 과제하면서 좌절하기

by 노랑연두

10월에 시작한 '구매자 행동'수업에서는 조모임이 있다.

논문을 하나 정해서 측정방법을 바꿔서 실험해서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이다.


우리 조가 선택한 논문은 식료품점에서 벌어지는 가족 내 어른과 아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원래 논문에사는 '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결과를 도출했는데, 이걸 '설문조사'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하루 종일, 그리고 세미나 후에 이틀 내내. 쉬지 않고 엄청 열심히 가설 정리하고 질문 추려서 설문지 초안을 만들었다. 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작업을 좋아한다. 회사에서도 설문 만들어서 돌리고 결과 해석하는게 너무 좋아서 며칠씩 빠져있곤 했었다. 그래사 조모임에서도 주도권을 가지고 설문지 만드는 걸 진행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문제가 있다. 일단 설문을 영어로 만들어야 하는데 내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것. 내가 원하는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데 영어로 표현하기가 너무 까다로웠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애들이 물건을 들어주는 거', '물건 사달라고 떼쓰는 거' 이런 건 아무리 번역기를 돌려도 무슨 단어를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가족에는 애들이 몇 명 있을지 모르는데 각아이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것도 문항 설계할 때 고역이었다. 아이들 각각에 대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문항이 너무 지저분하고 길어지게 되고, 그렇다고 뭉뜨그려서 물어보면 나중에 해석할 수가 없고.




아무튼 오늘 오후 어찌저찌 꾸역꾸역 만들어서 교수에게 보냈다. 세미나 시간에 초안을 공유하며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더니, 가설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해서 설문을 보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수가 다시 만들어 보내준 설문지가 너무 좋다. 문항이 간단하면서도 묻고 싶은 게 다 들어있다.


나는 며칠 동안 고민해도 잘 안 되었던 건데, 역시 교수인가 싶기도 하고, 능력에 한계가 느껴져서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


심지어 앞부터 퀄리티가 다르다.

설문지 앞에

"이 설문은 ××학교의 ㅇㅇ수업의 일환으로써 진행되며 □□을 알아보는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설문을 통해 수집된 내용은 통계를 거쳐 익명으로 활용됩니다"

같은 걸 쓰고 싶었는데 내 영어실력으로는 쉽지가 않다. 그런데 교수가 바꿔준 걸 보니 너무나 매끄럽다.

내가 만든 설문지와 교수가 만들어준 설문지. 때깔부터 다르다.


사실 요즘 나의 영어가 거지 같음을 많이 느낀다. 간단한 것도 생각하지 않고 말하면 문법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일단 시제가 안 맞고, (왜 나는 모든 문장을 현재형으로 말하는가?) 어순이 안 맞고(주어 다음에 동사 말하는게 왜이렇게 어려운지), 문장 구조가 이상하다.(말하다보면 주어가 없거나 동사가 없는 일이 허다하다)



사실 어제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오늘 숲 체험 가나요"라고 묻고 싶어서 그 문장을 한참 고민했다. 그러고서 말한 게 고작 'will he go to forest?'였나..


오늘은 둘째 부모 상담시간이었다. 처음 어린이집 갔을 때 둘째가 이상하게 생긴 음식은 거의 손도 안 대고 남겼다고 했어서 이제는 잘 먹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선생님과 남편 모두 이해를 못했다.


공부하면 괜찮아지는 거겠지 싶으면서도 이십 년 가까이 intermediate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하루에 한 장씩이라도 문법 공부를 해야지. 이대로는 안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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