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간단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연두 Jul 01. 2024

졸업

이십 년 전 학창 시절과 십수 년  신입사원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드라마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하면 봤던 이 드라마. 처음에 생각보다 대치동 학원가 얘기가 깊게 나와서 놀랐다. 그러면서 시작된 추억(?) 여행.


모두 다 그랬겠지만 고등학교 입시는 지옥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힘든 싸움이다. 드라마처럼 대치로는 안 다녔지만, 중3 때는 목동으로 고등학교 때는 노량진 정진학원과 서울역 대일학원으로 다녔던 기억이 모락모락 나면서 참 기분이 아련해졌다. 그때도 일타강사라는 말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수강신청 날이면 강의를 들으려고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던 간판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다. 매번 필기할 공간까지 계산해서 만든 교재들로 교과내용과 수능 출제경향까지 빠삭하게 파악하여 강의하시던 선생님들. 주말도 휴일도 없는 수험생처럼 추석에 명절 특강을 여시던 그분들과 한 뼘만 한 책상과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서 강의를 듣던 우리들.


그렇게 끝이 안 보이는 것 같은 공부의 터널을 지나고 그래도 꽤나 이름 있는 대학을 들어가고 대기업을 들어갔어도 이게 뭔가 싶은 순간이 많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명문대만 들어가면 다 끝인 것 같지만, 사실 그게 내 미래를 보장해 줄 만큼 강력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준호선생님이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학원으로 간다고 하면서 했던 말이 참 마음에 남았다. 우리 부모님 때야 열심히 살면 강남에 집 가지고 사시지만 기껏 대기업 가서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우리는 도움 안 받고 절대 강남에 집 못 산다고 했었나? 분명 명문대 나와 대기업 가게 하려고 돈을 쏟아부어가며 공부를 시켜서 이뤄놨는데도, 부모님 세대의 현상 유지도 못 하는 걸까. 젊은 세대의 좌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예전에 푸른 피가 도는 회사에서 신입 사원 교육을 받을 때 지도 선배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한참 전지현이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라 너희들이 전지현을 만나면 뭐라고 어필하겠냐고 물었던가? 그랬더니 한 동기가 "ㅇㅇ다녀요"라고 얘기하겠단다. 그러자 그 선배가 ㅇㅇ 다니는 사람 몇만 명이 넘는다고 그게 어떻게 어필이 되겠냐고 되물었다. 그 해 신입사원만 해도 6천 명이 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ㅇㅇ직원이 아니라 임원은 되어야 전지현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했을는지 아니며, 그냥 여기가 시작이라는 얘기를 하려고 그 얘기를 꺼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냥 ㅇㅇ직원이라는 간판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 느끼게 해 줬던 그 순간이 기억에 선명하다. 자기 전공에서 손에 꼽히는 대학원으로 유학을 갔던 선배 이야기도 생각난다. 거기만 가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가보니 자기 같은 사람이 한해도 수백 명씩 쏟아져 나온다며.. 잘 풀리지 않는 자신의 진로를 씁쓸해했었다.


그럼에도 학원은 그 간판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 간판을 얻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인 것처럼 군다.


대치동 찬영고 학생들을 꽉 잡고 있는 국어 강사 서혜진은 수능뿐 아니라 아이들의 내신을 위해 선생님들 출제 경향까지 파악하여 예상문제를 만들어 풀린다. 심지어 아이 내신을 올려주기 위해 정답 정정을 하려 학교까지 찾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같은 학원강사가 되어 나타난 옛 제자는 예전 8등급에서 고대를 보냈던 자기에게 그렇게 했던 꼼수가 아닌 진정한 실력을 길러내도록 해야 한다고 그녀를 설득한다. 학원은 성적만 올려주고 학생수만 많으면 된다고 참스승인척 하지 말라는 닳고 닳은 학원가에서 물들어버리 그녀에겐 꽤나 불편한 이야기였지만 결국은 설득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에게 온 건, 달라진 강의 스타일과 옛 제자와의 지저분한 스캔들이 더해져 만들어진 학생 이탈 사태였다. 틈을 노린 경쟁 학원의 계략이 빛을 발한 것이었다.


어쩌다가 학원으로 빠져 이른바 일타강사로 최근에는 유명 인강업체 광고까지 찍은 선배가 있다. 한 십 년 전쯤인가, 학원 때문에 바빠서 모임에도 거의 나오지 못해서 느지막이 얼굴만 비추고 갔던 날이 있었다. 그날 같이 있던 다른 선배가 그 선배 간 다음에 그런 얘기를 해주더라. 우리는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때, 그 선배는 악플이랑 소송 걱정하며 스트레스받는다며 우리랑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니다. 경쟁학원에서 일부러 알바 고용해서 비방글 올리고 게시글마다 악플 달고 그랬고 다른 학원으로 이적할 때 원래 학원에서 수억 대 소송 걸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정된 학생을 나눠 먹는 거라 진흙탕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건진 몰라도 아무튼 쉽지 않은 바닥이긴 하다.


아무튼 나보다 더 잘 되길 또는 나만큼은 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녹록지 않은 경쟁사회가 키워온 그림자 같은 사교육 시장. 그래도 거길 배경으로 꽤나 재밌는 러브스토리가 나오긴 했다. 비록, 로맨스에 집중하기에는 학원가 비중이 많이 크긴 했지만.


그런 면에서 기억에 남았던 대사는

"아무리 생각했어도 몰랐을 리 없어요. 이준호 첫사랑이 서혜진인 거."




매거진의 이전글 왜 스웨덴 소설은 다 이렇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