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끝을 알기에 더 슬픈 우리 조국의 이야기
한때 꽤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미스터 션샤인을 이제야 봤습니다. 둘째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했던 드라마라 그 당시에는 볼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가끔 채널을 돌릴 때 보이던 재방송 화면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요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한번 봐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다지 큰 느낌은 없었습니다. 잠깐 돌리다 봤을 때처럼, 여전히 김태리는 양반댁 아씨라기엔 없어 보였고, 이병헌은 역할에 비해 너무 나이가 들어 보였습니다. 변요한은 잘생긴 척하는 뺀질이처럼 보였고 유연석의 수염과 머리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연기의 힘일까요. 회차가 지날수록 말도 안 되는 나이 설정도 우스꽝스러운 분장도 어느새 더 이상 거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신분을 뛰어넘는 애달픈 사랑과, 떠난 뒤에 알게 된 그를 향한 절절한 기다림을 함께 느끼고 있었네요.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건 안타까운 러브스토리가 아니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없는 제국의 황제의 모습. 집 지도에 빨간 줄 하나를 긋고는 이제 이 집 위로 철도가 들어서게 되었다며 부숴버린 애국자 양반댁 담장. 맨몸으로 마구 죽어나가던 사람들. 이익을 위해 배신하는 매국노들 손에 점점 위태로워지는 나라의 운명.
그리고 드라마를 보며 제발 일본 손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고 바래도,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다는게 젤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변절자를 낳았던 문화통치기를 거쳐 전쟁을 위한 물적 인적 자원 수탈로 고통받던 말기까지. 우리 손이 아닌 다른 나라 손에 얻어버린 광복 덕분에 깨끗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와 그 뒤로 일어난 민족의 비극, 625 전쟁. 그리고 여전히 친일파 후손은 옳지 못한 방법으로 축척한 부와 권력으로 떵떵거리고 독립운동가 후손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 한 채 힘들게 살고 있다는 슬픈 현실까지.
비록 지금 대한민국의 이름을 갖고 당당하게 살고 있지만, 그 시절 나라를 생각했던 그들의 마음이 결국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어릴 적 소설을 보며 전 과연 조국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며 싸울 수 있을까 상상해 봤습니다. 어린 마음에 전쟁 나가면 무조건 죽은 척하고 숨어 있어야지 생각했었죠. 나이가 든 탓인지 아님 드라마를 잘 만든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 드라마를 보니 나도 어쩌면 목숨을 바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한국이라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