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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간단 리뷰

종의 기원

순수 악

by 노랑연두

국제도서관 한국어 코너에 있는 많지 않은 소설 중 하나라 늘 표지는 유심히 봤지만, 가볍지 않은 내용이라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시작으로 정유정작가님의 글을 읽기 시작해서, 28에 이어서 오늘 새벽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설마설마하면서 보다 보면 우려했던 살인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예전에 있었던 살인들도 그 진실을 드러낸다. 이유도 없는 살인. 혹은 이유는 있지만 죄책감이 없는 살인들의 향연….


처음에는 낭자한 혈흔과 시신에 충격을 받는 정신적으로 취약한 주인공에 이입해서 읽기 시작했다가 결국 그가 갱생의 가능성조차 없는 사이코패스임을 깨달으며 책을 덮게 된다.


읽으면서 느꼈던 점 몇 가지

1. 시작하기는 힘든데, 막상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드러나는 진실이 충격적이면서도 끝을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 추격자 같은 느낌도 있었다.

2. 살면서 저런 또라이를 만나면 어쩌지? 새삼스레 무서워진다. 특히 물리적인 힘이 달리는 여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그를 보니 괜스레 둘째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3. 소설을 다 읽은 뒤 책의 모티브가 된 두 살인마에 관한 글을 읽으며 어쩌면 현실은 소설보다 무섭고 잔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잃었던 기억들을 찾아가는 정신없는 와중에 주인공은 온갖 흔적들을 꼼꼼히 지워냈다. 결국 그게 충격적인 마지막으로 이어졌을 때 섬뜩함과 당혹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까뮈의 이방인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살인을 변호하고 싶어 함을 깨달았을 때만큼 충격이었다.

5. 자신의 아들이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억지로 약을 먹이며 세상에 무해하게 한 채로 살아가게 만드려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다른 한 편으로 다른 의미로 둘째 걱정이 되었다. 둘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받아들어지지 않았을 때 감정조절을 힘들어한다. 아직 어려서인지 아니면 기질적인 건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지금처럼 지적하고 혼내고 다그치는 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맞는지 생각이 많아졌다. 혹 이게 개선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꾹꾹 억눌러놓아 나이가 들어서 폭발하게 만드는 건 아니길..

6. 마지막으로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려면 어떤 식으로든 강한 충격을 주는 요소가 필요한 건가 싶어졌다. 그러면서 지금 쓰고 있는 나의 첫 소설의 갈등과 고민이 다른 소설들에 너무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작은 고민도 들었다.


한줄평

잔인하고 섬뜩하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고 충격과 여운이 깊은 책.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소화하기 쉽지 않은 주제인 탓에 강하게 추천을 하긴 힘들지만, 그런 장르에 부담을 갖지 않는 분이라면 재밌게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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