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 간다고 말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모두 스웨덴을 낯설어했다. 사실 나 또한 그랬다.스웨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건 부루마블 판 위 스톡홀름과 복지 강국, 딱 이렇게 두 가지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부루마블과 복지 밖에 몰랐던 내가 스웨덴을 가서 살게 된 건 바로 남편 덕분이었다.
한국 대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남편은 구글을 비롯한 업계를 이끌어가는 IT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만났던 2010년부터그저 마음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대학원까지 남들 다하는 휴학 한 번 없이 졸업해 병역특례로 회사에 입사했던 타라,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경험 한번 없는 진정한 토종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업무상으로 구글과 회의를 한 날이나, 구글이나 아마존에서 발표한 기술혁신을 기사로 읽은 날이면
'나도 저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
로 시작해
'영어도 못하고 코딩 천재도 아닌데 안 되겠지.'
를 끝나는 이야기를 자정이 넘을 때까지 하곤 했다.
업계가 달라, 남편의 객관적인 코딩 실력은 내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부담감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칭찬도 계속 들으면 지겹다는데, 자조 섞인 푸념을 4년씩 듣고 있으면 어떻겠는가. 결국 더 이상 푸념을 견딜 수 없던 2015년 새해, 나는 남편에게
'말만 하지 말고 한번 도전이나 해보자'
라고 부추겼다. 사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얘기했던 아니었다. 그저, 하지도 않고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시도를 해보고, '아니'라는 결과라도 받는 편이 후회가 적지 않겠냐는 심산이었다.
뭐.. 또 모르지? 진짜 될지?
1년이 넘는 수 없는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고 합격한 곳은 다름 아닌 스웨덴의 한 기업이었다.
그 회사는 남편이 원하던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큰 기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나름 그 업계에서는 1위를 하고 있는 유망한 기업이었다. 업종또한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업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로 바뀌는 것이였기에 프로그래머인 남편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스웨덴에 대해, 아니 외국 생활에 다해 아는 게 거의 없었지만, 나라에 대한 이미지도 나쁘지 않았다. 유럽하면 떠오르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문화, 북유럽하면 연상되는 울창한 숲과 깨끗한 자연환경이 우리를 반겨줄 것만 같았다. 그저 유럽에 살아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기도 했고 말이다.
더군다나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는 첫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 1년짜리 육아휴직을받아놓은 상태이니 마음도 편했다. 이민이니 하는 거창한 선택은 할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