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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May 31. 2020

1. 대중교통

왜 한국에선 유모차를 잘 안 가지고 다니나요?


작은 캐리어 한 개, 큰 캐리어 두 개, 이민가방 두 개, 큰 박스, 유모차에 핸드캐리용 짐까지.


2016년 8월. 정말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으로 우리는 스톡홀름에 도착했고, 차도 없이 6개월 아기와 함께 하는 쉽지 않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알 것이다. 외출 한번 하려면 들고 갈 짐이 얼마나 많은지.


 기저귀,  여벌 옷, 젖병, 분유, 간식, 장난감까지. 거기에 마지막으로 아이까지 안고 나오면 아기띠와 가방이 걸린 내 어깨는 미스터코리아 부럽지 않은 어깨뽕을 자랑하게 된다. 출산 후 회복도 덜 된 몸으로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는 아이를 안고 이동하려면 극기훈련이 따로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아기띠가 극기훈련이라면 유모차로 대중교통 타기 특공훈련쯤 된다고 해야할까. 



일단 버스는 저상 버스가 아니라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타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아기가 든 유모차를 들어올려 버스에 태워도, 그 위에 또 계단이 있고 입구가 좁아서 올라가기가 힘들다. 겨우겨우 안으로 올라가도 버스 안에는 유모차를 세워놓을 마땅한 공간이 없다. 그래서 어깨가 너무 아파 유모차를 가지고 날이면, 그야말로 버스 안 요주의 인물이 된다.




 '유모차 넘어지지 않게 꼭 잡고 계세요.' '위험하니까 아기 안고 있으세요.'
'유모차 접으세요, '




기사님은 매번 바뀌었지만, 유모차를 가지고 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기사님은 없었다. 그나마 타지말라고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까. 기사님들의 말씀을 듣자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짐을 챙기며, 더이상 남은 손이 없으니 다리로 유모차가 굴러가지 않게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힘든 버스 탑승을 하고 나면 유모차를 가지고 탄 것을 백만 번 후회하곤 했.



지하철

버스에 비하면 지하철은 참 양반이다. 몇 량에 한량씩 노약자석 대신 휠체어, 유모차 등을 놓는 공간이 있다. 주차할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탑승을 허가받는 느낌이 들어 버스탈 때와 달리 조금은 당당해질 수 있다. 게다가 탈 때 계단과 ''이 없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지만, 지하철의 문제는 끝없는 계단에 있.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 먹는 순간부터 매순간 엘리베이터와의 숨바꼭질이었. 아이를 갖기 전까지 나는 지하철 탑승과 환승을 하는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냥 사람들을 가는데로 가면 되었고, 가끔 헷갈릴때  '나가는 곳', '갈아타는 곳'이라고 적힌 표시를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유모차와 함께라면 항상 매의 눈으로 엘리베이터를 찾아야했다. 최소 10키로가 넘는 유모차와 아이를 들고 수십개의 계단을 내려 올게 아니라면 말이다. 실제로 엘레베이터를 못 찾아서 지하철을 만나지 못하나 지상으로 못  올라온 채 왔다갔다 같은 층을 맴돈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스웨덴은 어떨까?


처음 스웨덴-한국어 언어교환 모임에 나갔을 때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1년 동안 머물렀던 아이가 물어봤다.


'왜 한국에선 유모차를 잘 안 가지고 다니나요?'


'한국에서도 유모차 많이 가지고 다니는데? 아파트 단지나 마트 같은데 가면 다들 유모차 밀고 다니는데.. '


'근데 길거리나 홍대 같은 데서는 하나도 안 보이던데요?'


그랬다. 스웨덴에서 유모차는 산책용이 아니었다. 말그대로 운송수단이었다. 스웨덴에서는 거의 모든 부모가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아기띠를 한 부모들도 있지만 그런 부모 또한 유모차를 같이 갖고. 그 건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 한복판인 T-Centralen에서도 예외가 없다.

 

우리는 스웨덴에서 차가 없는 뚜벅이였지만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참 많이도 다녔다. @스톡홀름근교나들이


유모차가 편한 사회를 만들어주는
가장 큰 원동력은 그 것이 당연한 사회 분위기였다.


 스웨덴의 버스는 유모차, 휠체어를 위한 공간이 비어있다. 거기에는 간이 좌석은 내려서 앉을 수는 있지만 언제든 유모차나 휠체어가 타면 일어나서 비켜준다.

유모차 탄 채로 버스에 앉아있는 두 아이

혹시라도 멋모르고 계속 앉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여기는 유모차 공간이야, 비켜줘야 해.'라고 말해준다.


또한 대부분의 버스는 내리고 타기가 쉬운 저상 버스이며, 유모차나 휠체어 등이 타고 내릴 때 승하 차기 쉽도록 버스를 기울여 인도와의 높이차를 최대한으로 줄여준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주위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대중교통을 탈 엄두조차 못 낼,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도 걸음마 보행기를 타고 버스를 많이 타신다. 심지어, 휠체어 탄 분들도 보호자 없이 버스에 탄다. 이럴 때면 버스기사가 일어나 뒤쪽 문 바닥에 있는 휠체어 전용 판을 펼쳐 승하차를 도와준다. 이런 과정이 버스의 운행을 지연시키지만 누구도 그것을 가지고 눈치를 주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가 있고 그렇게 걸리는 시간이 어떤 과외의(extra)의 시간이 아닌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승하차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너도나도 손을 걷고 도와준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간단히 장을 봐서 짐에 가는 길. 매일 버스를 타고 등하원을 했었다.

두번째 육아휴직때는 첫째가 3살 둘째가 1살이라 2인용 유모차를 밀고 다니며 장을 봤다. 목청이 남달랐던 둘째는 졸릴때면 날카롭고 우렁차게 울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려 안고 있을 때 버스가 왔다. 한 손으로 아이를 안은 채 첫째와 장본 물건이 가득한 유모차를 밀고 버스에 타면 주윗사람들이 비켜주고 끌어주며 승하차를 도왔다.

한국이였다면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타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스톡홀름시의 경우, 후문으로 승하차를 하는 유모차는 안전을 위해 버스비를 내지 않는다. 앞쪽으로 가서 버스비를 찍는 동안 유모차가 움직여 아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지하철은 어떨까?
출퇴근시간만 아니라면 지하철타기는 어렵지 않다.

기본적으로 지하로 내려가야 때문에 버스에 비해 지하철이 더 힘들긴 하지만, 사람이 미어져나가는 피크시간 때만 피하면 지하철 타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스톡홀름은 한국에 비해 지하철이 작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찾기도 어렵지 않고, 노선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갈아타는 일도 많지 않다.(20년 기준 3개 노선) 단, pendeltag이라고 우리나라의 1호선같이 광역으로 운행하는 지하철이 있는데, 환승구가 길고 탑승구가 깊어서 갈아타기가 힘든 편이다. 하지만 지하6층까지 내려가는 노선이 있는 국에 비하면 양반이다.



유모차 운행이 일상인 곳이기에 아이가 이용하는 시설에는 당연하게 유모차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은 리노베이션 중이지만 문화의 집(kulturhuset)에서 운영하는 아이의 방) rum för barn)이라는 공간이 있다. 책과 놀잇감들이 적절히 섞여 있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데 하루에 두 번 책 읽기, 노래 부르기, 만화 상영, 연극 등의 이벤트를 무료로 제공한다. 추가 금액을 내면 미술 등의 활동도 가능해 스톡홀름의 모든 육아 돌보미들의 최애 장소인 곳이다. 게다가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까지 있어서 어린이 집이 끝나는 시간이나 아이들 방학 때는 대기표를 받고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인 곳이다.

다함께 박수를 치고 리듬을 만들던 특별 세션& 한 쪽에 마련된 피크닉존에서 간식을 먹는 아이들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면 미술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
여기에 처음 갔을 때 놀랐던 게 유모차는 유모차 주차공간에 주차하고 오라는 표시판이었다.


 Kulturhuset의 지하 1층 입구로 들어가면 커다란 유모차 주차공간이 나온다. 땅값이 가장 비싼  스톡홀름 중심가 건물에 몇십대의 유모차가 빼곡히 있는 주차장을 만들어주다니.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어떤 놀이터나 박물관에 가도 이러한  유모차 주차공간은  볼 수 있다.



대학 졸업하고 첫번째 회사, 바로 대학원, 그리고 지금 직장까지 한번도 쉰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육아휴직이 시작하고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해 아이가 50일이 지났을 때부터 아기띠를 하고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도서관을 3군데씩 다니며 책을 읽고, 집 근처 마트는 하루 걸러 하루꼴로 출근하다시피 했지만, 더 멀리 갈 엄두는 못 냈다. 한국의 대중교통시스템으로는 마을버스 한번 타고 가는 도서관도 늘 긴장상태였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에겐 너무나 당연히 여겨지는 유모차 덕분에 스웨덴에서는 차 없이도 박물관이며 공원을 누비고 다닐 수 있었다. 유모차는 아이와 양육자의 이동의 한계를 줄여줘 사회 한 구성원으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당연한 이 문화, 그 배려가 '배려'가 아닌 다양한 구성원을 위해 당연히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문화가 참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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