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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Jun 09. 2020

2. 열린 유치원(öppna förskola)

혼자 하는 육아는 스웨덴도 외롭다.

외국생활이 처음이었던 우리 부부는 어학연수나 유학을 간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이 컸다.


미국 드라마처럼 국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하고 여행을 다니는 사진을  봤을 때. 외국에 다녀온 후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갖게 되었을 때. 그런 경험이 업무로 이어져 인정받는  걸 볼 때.


그럴 때면 나도 그렇게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서른 중반이 되어 외국에 되었다.


외국인 친구도 많이 생기겠지?

추억도 많이 만들고 영어 실력도 많이 늘겠지? 이런 경험이 글로벌한 나를 만들어주겠지?


이런저런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드디어 시작된 스웨덴 생활


외국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여행을 온 관광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려한 왕궁과 번화가들을 다니며 감탄하고 또 벅차오른다.


와 이런 멋진 곳에 우리가 산다고?


잔뜩 들떠 있던 한 달 동안 참 많이도 돌아다녔었다. 각종 관광지부터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위한 모임과  열린 유치원까지.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서 외로운지도 잘 몰랐다.


...

 '외국인 친구를 사귀며 빠르게 현지에 적응하겠다'

는 계획은 한 달여 만에 벽에 부딪혔다.


 원래도 사교적인 편이 아닌 데다가 언어와  문화까지 익숙하지 않으니, 어디에서도 대화에 끼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떤 모임에 가든 비슷했고 금세 지치기 시작했다.



유창하진 않아도 의사소통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은 너무 쉽게 깨졌다.


스웨덴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어느 정도는 영어를 하는 줄 알았다. 비록 어학연수는 다녀오지 않았지만 십 년 전 토익 900점을 넘겼고 대학원 시절 1년 가까이 회화 수업을 들었던 터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스웨덴어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스웨덴어는 독일어와 영어 중간에 속한 언어로 낯선 모음(å, ä, ö)이 3개나 더 있고 억양이 매우 낯선 언어이다. 스웨덴 사람들의 대부분은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 그래도 모국어가 편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스웨덴어가 가능한 사람끼리는 어느새 스웨덴어로 대화를 했고 나는 아이를 보는 척하며 자리를 피하곤 했다.


하지만 영어 하는 엄마 모임(English mums in Sweden meet up)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임은 영국, 남아공 등 영어권 국가들에서 온 엄마들이 주축이  모임이었는데, 

남편이 스웨덴이어서 또는 스웨덴에 직업을 구해서 스웨덴에 정착한 아이 엄마들이 아기와 함께 만나 커피도 마시고 플레이 데이트도 하는 모임이었다.


나는 남편이 스웨덴에서 일하게 되어서 한국에서 왔어,
육아휴직 중이고 우리 아기는 6개월이야. 사는 곳은 쿵스 홀멘 크리스티나 베리 역 근처야.


여기까지 늘어놓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한인들도 많아졌지만 처음 갔던 2016년만 해도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조차 보기가 쉽지 않았다. 부족한 언어 실력에 동서양의 문화 차이까지 더해지니 대화는 영어 듣기 평가보다 백배는 어려웠다. 게다가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른지. 모국어가 영어인 사람들끼리의 대화라 흘려 말하는 신공까지 더하니,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기 일쑤였다.



집 근처 열린 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열린 유치원은 기관에 다니지 않는 아이와 양육자를 위한 공간으로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면 키즈카페처럼 안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공간이다. 정부 또는 교회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대부분은 중간에 '노래 부르는 시간'이 있어서 다 같이 원을 만들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는 활동이 빠지지 않는다.


너무도 친절했던 Maria @집근처 오픈 유치원
Öppna Förskolan Kristineberg strand - Öppna Förskolan Kristineberg strand
Kristinebergs Strand 1, 112 52 Stockholm, 스웨덴
+46 76 120 88 99
https://maps.app.goo.gl/nohjD9LKhGTjs2r97

처음 살던 집에서 제일 가까운 열린 유치원은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Öppna Förskolan Kristineberg strand 였다. 이 오픈 유치원의  정원은  한 타임에 15명. 정원이 오버되면 문을 잠그고 안 들여보내 준다.  하지만 인기가 많아서 시작하는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허탕 치기 일쑤다. 처음 도착한 날에는 영문도 모른 채 잠긴 문 너머로 담당자가 고개를 흔드는 것만 보다 가기도 했다. 두 번째 갔던 날인가  오늘은 꼭 들어가겠다는 생각에 한참을 서있었더니, 친절한 부모 한 명이  영어로 자리 없다고 알려줬다. 



번 허탕을 치고 드디어 입성한 열린 유치원에서도 자기소개하고 난 뒤 뻘쭘함은 똑같았다. 오픈 유치원에는 관리해주는 교사가 있는데 다행히 친절한 Maria가 안내를 해주기 시작했다. 주방, 화장실, 놀이공간의 이용방법을 알려준 뒤, 아이 발달단계에 맞는 장난감을 추천해줬다. 덕분에 아이와 장난감으로 놀고 노래 시간에 참여하고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이유식을 먹이는 등의 일들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를 사귀기는 쉽지 않았다. 대부분이 스웨덴 사람들이라 서로 스웨덴어로 얘기를 하고 있었고 서로 잘 알고 있는 듯 반갑게 인사하기도 했다. 더욱 외톨이처럼 느껴졌다. 친절하게 나에게 관심을 갖고 영어로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도 금세 막히는 영어실력과 소재 고갈에 금세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돌아서곤 했다. 


아이들이랑 놀아주면서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길 고민할 때 다가왔던 스웨덴 친구가 바로 Titti이다. 그녀는 짧은 나의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아들 식스텐은 첫째 성별도 같고 태어난 날도 비슷한 데다가 사는 곳도 가까웠다. 게다가 헤어질 때는 본인은 월 수에 주로 온다며 그때 또 만나자고 허그를 해주는 게 아닌가?

나의 첫 친구 티티와 그녀의 아들 식스텐
 '우와, 열린 유치원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다더니 진짜였네, 이제 구석에서 혼자 놀며 새로 오는 사람마다 말을 걸었다 실망하는 일은 끝이구나. '


한 달 동안 처음으로 다음에 또 보자고 말해준 그녀와의 만남에 잔뜩 들떴다.


하지만 전화번호를 묻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건 약속이 아니었을까?


낮잠을 서너 번씩 자는 6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시간 맞춰 준비하는 게 쉬운 아니었지만 그녀를 보기 위해 자는 애를 깨워가며 헐레벌떡 뛰어간 곳에는 그녀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수요일에도, 그다음 주 월요일에도. 약속한 날짜에 가도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나 혼자의 설레발이었던가.. 시간이 끝날 때까지 문이 열릴 때마다 문을 쳐다보다 지쳐갔던 어느 날.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활짝 웃으며 반겨주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고작 한번 봤을 뿐인데 마치 절친이라도 만난 느낌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된 거야? 나 너 만나려고 계속 왔는데 볼 수가 없더라.


나의 물음에 언제는 식스텐 컨디션이 안 좋아서, 언제는 낮잠시간이랑 겹쳐서 못 왔다며.. 오늘이라도 만났으니 다행이란다. 그 이후로 항상 그녀와의  약속은 파투 나기 일쑤였지만, 첫 fika를 시작으로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날 작별 선물을 건네준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초대를 받아갔던 그녀의 집.그 초대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티티네 집

또한 그녀는 외롭고 힘들었던 내 첫 스웨덴 생활든든한 조력자 역할도 해줬다. 인터넷 쇼핑을 어떻게 하는지 예방접종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두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인 12개월 미만의 아이들은 주로 열린 유치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비슷한 또래들이 모이는 만큼 우리나라의 조리원 동기처럼  play group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 지도 못 하는 갓난쟁이를 데리고 갈 때가 마땅치 않는 건 스웨덴도 마찬가지. 아기와 하루 종일 씨름하는 초보 엄마 아빠들은 하루가 그렇게 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렇게 만난 동년배 엄마와 급속도로 친해진다.


밥 응가 잠의 굴레에 빠진 엄마들에게 같이 할 수 있는 동지가 있다는 게 어찌나 든든한지. 초보 엄마 아빠에게 그 힘든 시절을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동지를 만들어주는 소중한 공간.



그곳이 바로 스웨덴의 열린 유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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