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박물관

길고 긴 추운 겨울, 갈 곳이 없다면 박물관

by 노랑연두


스웨덴의 겨울


우리가 도착한 첫해였던 2016년. 그 해 겨울은 첫 '북'유럽이라는 말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폭설은 10월 말부터 시작되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풍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거리에 눈은 엉덩이까지 쌓였고 길에 세워진 자동차는 운행은커녕 문조차 열 수가 없었다. 집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잔뜩 쌓인 눈 탓에 창문이 열리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우리 갔던 첫해. 눈은 원없이 봤다.

시간이 지났지만 눈을 치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추운 날씨 탓에 눈은 얼어버렸다. 도로는 금세 미끄러워졌고 결국 버스 운행마저 중단되고 말았다. 온 도로가 마비되어 외곽에 사는 사람들은 한참을 출근조차 하지 못 했다. 태초에 스키는 스포츠가 아니라 이동수단이었던 나라여서일까.. 도심 한복판에 눈으로 뒤덮인 도로를 컨츄리 스키(평지용 스키)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까지 보였다.


아직 걷지 못하는 첫째와의 외출에 유모차는 필수였지만, 휴대용 유모차의 조그만 바퀴는 잔뜩 쌓인 눈길에서 전혀 굴러가지 못했다. 그저 눈을 밀어낼 뿐인 유모차를 밀고 가려니 1m도 쉽지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도로는 빙판길이 되어버렸고, 5분 거리 지하철역조차 가기 힘들어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도 했다.


그 헤 겨울에는 폭설도 잦았지만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는 일도 빈번했다. 계속된 추위 덕분에 집 근처 강이 얼어 광활한 천연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도 추울 때 정말 추우니까, 그리고 북유럽이니까 추위는 견딜만했다.


하지만,
급격하게 줄어든 일조량은
견디기 힘들었다.


처음 스웨덴에 도착했던 건 8월 초. 밤이라고 느낄 정도의 어두움은 밤 10시가 지나서부터 찾아왔다. 새벽 3시부터 동이 터오기 시작했으니, 밤은 5시간 남짓. 첫날 호텔방에서 짧은 밤에 적응하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렸던 기억이 난다.

8월. 해도 길었고 파란 하늘도 참 예뻤다.


하지만 가을에 들어오면서 무서운 속도로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11월 첫째 주 일요일, 시간대가 1시간 앞당겨지는 윈터 타임이 시작되면, 4시면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한다. 11월부터 2월부터는 해가 짧기도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어두운 날씨 탓에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며칠만에 해가 보였던 어느날. 오후 1시도 채 되기 전 이미 지고 있는 해와 어둑어둑한 3시.

스웨덴의 겨울 하늘은 그냥 한국의 흐린 날씨 정도가 아니다. 장마가 며칠씩 지속될 때 기억나는가. 너무 어두워서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정도의 그런 잿빛. 스웨덴에서 그런 날씨가 며칠씩 이어지고 나면 겨울철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추워도.. 나가야 했다.


우리의 첫 집은 5층짜리 건물의 6층이었다. 24평 정도로 3명이 살기에 넉넉한 크기였지만 창문은 고작 두 개. 다락을 개조해서 만들어서인지 창문이 딱 두 개밖에 없었다. 게다가 북유럽 스타일 노르스름한 등으로 그 넒은공간을 커버하려니 해가 없는 날 집은 창고 같았다. 그런 집에서 말도 못 하는 아이와 단둘이 하루를 보내다가는 아마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유모차가 못 몰면 아기띠라도 해서 겨울에도 꾸역꾸역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우리를 반겨 줬던 곳이 바로 박물관이었다.


열린 유치원도 아이와 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그렇지만, 월령별로 시간이 정해있고 겨울에는 방학도 길다 보니 내가 가고 싶을 때 찾아가기는 힘들었다. 다행히 박물관은 쉬는 날이 많지 않아 늘 열려있었다.

이렇게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할 일이 없을 때면 하나씩 둘러보곤 했다.

스톡홀름 왕궁 바로 옆에 있는 유고르덴섬과 그 주위에는 다양한 박물관이 모여있다. 그중에 무료로 입장 가능한 박물관들도 많이 있어서 그 해 겨울 아장아장 걷는 첫째를 데리고 많이도 다녔었다.


우리나라에서 박물관은 어린이박물관을 제외하고는 조금 엄숙한 분위기라면, 스웨덴의 모든 박물관은 아이들에게 열려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을 위한 무료/유료 클래스는 흔하고, 갓난쟁이를 위한 클래스나 심지어 유모차를 모는 부모를 위한 가이드 투어까지 있다.

생후 1년이전의 아이와 함께 하는 가이드 투어@스웨덴현대미술관(Moderna museet)
대부분의 박물관은 18세 이하는 무료 입장이며, 아이등을 위한 놀이공간을 마련해놓는다@북유럽박물관(Nordiska musset)

우리 아이가 관람에 방해될까 하는 걱정은 조금 내려놔도 좋다. 물론 소란하지 않도록 조심시켜야 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쉽게 어린이 관람객을 만날 수 있고, 그런 어린 관람객을 보는 시선이 따뜻하다는 게 양육자로써 큰 위안이 된다.



리모델링을 할 때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공간이 늘어나는 곳도 반가운 변화였다.


Sjöhistorika museet(해양사 박물관)


해양사 박물관은 시대별로 각종 배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무료 박물관이다. 2019년, 놀이 공간이 리모델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았다. 박물관 콘셉트에 딱 맞는 놀이공간이 우리를 반겨줬는데, 잠수함 모양의 입구에 배 모양 미끄럼틀이라니. 보기만 해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잠수함으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
잠수함이 그대로 형상화된 놀이공간
물결 모양 천장에 배모양 미끄럼틀까지


Naturalhistorika museet (자연사박물관)

18년 겨울에 참 많이 갔던 자연사 박물관. 그 당시 살던 집에서 버스로 3 정거장 거리라 가기도 쉬웠다. 다양한 동물 모형이 있어 아이들도 흥미로워 했다. 커다란 피크닉 존이 두 개나 있어서 간단히 식사 거리를 가지고 와서 먹어도 좋고, 안에 있는 식당에서도 식사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팔고 있어 끼니를 때우기도 괜찮았다. 당시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해보지 못했지만 주말과 방학 때는 아이들을 위한 유료 체험 코너들이 진행되었고 IMAX관에서는 흥미로운 자연다큐멘터리들을 상영했다.

공룡들이 가득한 공간@자연사박물관
18년 새단장을 마친 스웨덴의 동물들 전시는 너무 예뻐서 갈 때마다 사진을 계속 다시 찍게 만들곤 했다@자연사박물관
꼬맹이 둘째는 아직 유모차 신세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끝나면 둘을 유모차에 태워 50번 버스를 탔다. 집을 거쳐 자연사박물관을 가는 이 버스를 타고 공룡과 엘크, 고래를 보러 갔다. 길고 긴 겨울, 이 공간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박물관도 참 좋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어린이 박물관들이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훨씬 더 크고 풍성한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스웨덴 박물관의 시설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어린이는 어린이 박물관에서 충분히 커버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한국에 있는 일반 박물관에서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다. 스웨덴의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퀴즈 코너와 놀잇감들이 있어 아이들의 관심을 끌도록 되어있지만, 학문적 깊이도 있어 학생들도 방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차이가 있다고 해서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것. 아이들의 한계를 규정짓지 않고 배려하는 스웨덴의 문화가 드러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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