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아이슬란드의 한 생선가게에서 열린 전시의 기록

by 노을



그림 그리는 배수경과 글 쓰는 이노을은 2019년 1월 29일부터 3월 1일까지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아이슬란드 북쪽의 도시 이사피요르두르Ísafjörður에 머물며 전시를 열었다. 이 연재는 우리가 열었던 전시를 책으로 엮다가, 책에는 다 담지 못할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시작하였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전시를 열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나 계획은 없었다. 우리는 그저 즐거워서, 스스로 해 나갔다. 각자가 좋아하는 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 함께 전시를 만들었다. 전시에는 자연히 세 번에 걸친 아이슬란드 링로드Ring Road 일주와 이사피요르두르에 머무는 동안 경험하고 느낀 것이 담겼다.


아이슬란드의 지형은 거대하고 무심한 이가 점토 칼로 썩, 썩 베어낸 듯하다. 끝도 없는 평원을 달린다 싶었는데 어느새 땅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폭포가 굉음을 내며 떨어진다. 불쑥 눈 앞을 막아선 산의 가파른 경사를 돌아 정상에 올랐다 싶으면 다시 평지를 달리고 있다. 지형 못지않게 변화무쌍한 기후는 경외와 활기를 불러일으킨다. 검게 흐린 날도, 거짓말처럼 푸르게 빛나는 날도 모두 아름다웠다.


모든 생명은 자연에 몸을 맞대고 산다. 날개에서 쉭 소리를 내며 나는 큰까마귀와 새끼 두 마리씩 데리고 풀 뜯는 양, 호기심에 동그란 머리를 수면 위로 내미는 물개들, 바람을 피해 땅을 기듯 자라는 자작나무까지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생김새와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간다. 사람도 자연 안에 있다. 서울에서라면 아파트 단지 하나에서 몰려나올 만한 인구가 하나의 도시를 이루어 사는 이곳은 인간의 삶에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여실히 보여 준다. 길 위에서, 마을 안에서, 산등성이와 계곡과 바닷가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삶과 마주쳤다. 삶은 풍경과 꼭 어울렸다. 풍경 안에 우리 역시 어울릴 수 있어 기뻤다.


지하철을 타거나 매일 같은 거리를 지나 출근할 때면 종종 눈을 감은 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거대한 것에서 미세한 것으로, 다시 그 반대로 시선을 옮기고 몸의 감각을 열기 위해서는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써야 했다. 주의를 기울여 내 몸을 둘러싼 세계를 느끼는 일, 작은 차이와 변화를 알아차리는 일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질리지도 않고 멈춰 서고 가리키고 바라보고 만져보며 함께 놀라워했다. 그러다 보니 함께 발견하고 놀라워하는 편이 혼자 발견하고 놀라워할 때보다 훨씬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전시를 만들고 다시 책으로 만든다.



Fiskbúð Sjávarfangs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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