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시리즈 복은 비는 것이 아니야
뜨거운 수증기가 그립다. ‘그립다’ 말하는 것은 지금은 할 수 없는 부정의 의미다. 마른 나뭇잎을 밟으면 부스럭거리고 쌀쌀한 바람이 느껴질 때 목욕을 다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땀구멍에서 땀이 흐르듯 찌든 생각도 흘러나가는 기분이다. 물에서 나와 마른 열기로 가득한 작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수군거려도 들린다. 두 여자의 이야기는 라디오 사연을 듣는 듯 지친 나를 붙잡아 두었다.
둘은 친근한 사이처럼 보였다. 늘 차만 얻어 타고 다닌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둘이 변죽이 잘 맞는다. 부자고 비싼 수입차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어디라도 가려하면 정작 자신의 차에는 누구도 태우지 않고 늘 남의 차만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도 그 차를 타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시작으로 홍수에 강이 범람하듯 인색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듣고 있는 나도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자신이 밥을 사야 할 때는 저렴한 것을 타인이 살 때는 제일 비싼 것을 주문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인색한 마음에다 얌체까지 겸비했다. 두세 번 그런 일을 겪게 되니 그 사람과 사적인 만남은 슬금슬금 피한다.
넉넉한 마음 갖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텃밭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조그마한 시골집이 있다. 어느 봄날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지인이 시골집에 방문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뜻밖의 일이라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러라 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왜 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시간에 온다고 하니 밥을 주어야 하나, 차만 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솔직히 반찬 걱정에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 지 듯 갈팡질팡했던 생각을 바꿨다. 따뜻한 밥과 집 마당의 봄나물을 먹고 맛있게 잘 먹었다고 말을 한다면..... 조금 전까지 밥으로 저울질했던 인색한 마음은 봄바람을 타고 멀리 산 너머 날아갔다. 부리나케 냉동실에서 생선을 꺼내고 나물로 차려진 시골밥상을 준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너그럽지 못하다. 밥도 약사 빠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헤어지면서 ‘잘 먹고 간다.’고 말하면 복을 받는다고 스스로 믿기로 한 것이다. 얼마나 꼼수를 부리는 행동인가. 어쩌겠는가. 타고난 넉넉한 마음이 부족한 나는 익숙한 인색함을 이렇게라도 버리려 한다. 받을 것이 더 크다는 것으로 속 좁은 마음을 누그리는 수단이 된 셈이다. 누군가는 꼭 주고받아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부끄럽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대가 없이 베푸는 행복을 온전히 느끼지 못해 애만 쓰면 지칠 것을 알기에 이렇게라도 한다. 아가페적 사랑을 하기에는 내가 달에 가서 산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조금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생각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이가 두터워지면서 이견에 날을 세우고 완강히 버티는 일들이 줄어든다. 꿈을 꾸던 세월이 지나 점점 현실을 인정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좋게 넘어가려는 것이 수두룩해졌다. 생각해 보면 너그러워졌다기보다 화를 내거나 인색한 마음이 결국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인은 봄나물에 맛있게 밥을 먹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에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지인의 방문이 고맙기까지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복을 받았다. 고맙다는 말. 잘 먹고 간다는 말.
그래. 복은 빌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중얼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