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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스 Jan 19. 2023

린다의 반창고

린다시리즈 누구나 반창고

 피부과에 갔다. 언제부터인가 얼굴에 누런 콩 만한 것이 보이더니 색이 점점 거무스름하게  짙어졌다. 그러고 보니 코 옆으로 모기에 물린 것처럼  빨간 점 같은 것도 있다. 어느 날 오후 거울을 보다 눈에 더 두드려 지게 보였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는가. 오늘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 서둘러 병원에 갔다. 예약도 없이 갔지만 다행히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의사는 빨간 것은 점이 아니고 피가 혈관 쪽에 몰렸으니 짜서 없애면 되고 거무스름한 것은 레이저로 치료한다고 했다.      


 치료가 끝난 후 얼굴에 피부색과 비슷한 반창고를 붙이고 일주일 후에 보자고 말하며 그동안  떼지 말라고 했다. 삼사일이 지나자 반창고 안이 하얗게 부풀어 올랐다. 상처 난 부위에 빠르게 새살이 나게 하는 반창고다. 일주일 후 병원을 가니 잘 아물고 있다며 새로운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아물어 가고 있었다.     


 얼굴과 몸에 상처 한번 안 난 사람이 있을까. 평생 얼굴에 뾰루지 한번 안 난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살면서 마음의 상처를 한 번도 안 받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몸의 상처가 크기와 깊이가 제각각이듯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몸에 붙이는 반창고는 약국에 가면 살 수 있으니 얼마나 간편한가. 상처에 맞는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면 시간이 지나면 새살을 돋아난다. 마음의 상처에 붙이는 반창고는 쉽게 살 수가 없으니 이것이 문제이다.      


 몸에 볼 수 있는 상처는 어느 정도 아픔을 가늠하지만 문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다. 볼 수 없으니 스스로 아프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아픈 척도 하지 않으면 주위사람들은 지나치게 마련이다. 간혹 아픈 낌새를 알아채기도 하지만 알아도 심각해 보이지 않다고 생각되면 깊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숨긴 마음의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아 터진 상처처럼 심각한 상태까지 간다.      


 비대면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아무리 화면의 질이 좋다고 해도 눈 덮인 설산을 따뜻한 방에서 보는 것과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눈을 밟으며 걷는 산자락이 같을까. 과학의 발달로 눈부신 선명함으로 단풍으로 물든 설악산을 보여 준다고 해도 직접 오르고 나뭇잎을 만지고 상쾌한 공기를 피부로 느끼는 것과 같겠는가. 사람과의 만남도 그렇지 않을까. 스마튼 폰이라는 첨단기기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지만 만나서 밥도 먹고 손도 잡아 보겠다고 한다. 기기에 약속을 공증이라고 하듯 약속날짜를 적어 놓는다.      

  상처는 자신의 실수로도 생기고 타의로도 생긴다. 언제든 어디서든 상처는 날 수 있다. 이런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상처를 보여 줄 만한 가족이나 친구를 통하면 더 빠르게 덧나지 않게 새살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의사가 붙여 준 반창고처럼 우리는 서로가 반창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얼굴에 여전히 붙어 있는 작은 새 반창고를 보며 일주일 후에는 깨끗하게 올라온 새살이 보일 것이다.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중시되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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