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서른 살, 롱보드 입문기

대놓고 넘어지고 깨져야만 성장할 수 있는 골 때리는, 하지만 짜릿한 취미

by 노이의 유럽일기
수줍은 라이더가 밝히는 '서론'


언젠가 '롱보드 여신'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등장한 여성 라이더의 보딩 영상이 SNS로 쫙 퍼진 적이 있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알고, 심지어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독일인 친구까지 알고 있었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지금까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롱보드'라는 세계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아직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몇 개 없는 평범한 초보 라이더다.

그래서 나는 멋진 사진을 찍을 수도, 영상을 찍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런 기술들을 하지 못하더라도 보드는 충분히 재미있고 설레고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취미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내 글은 '롱보드' 가 주제이지만, '내가 찍은 사진'이나 '내가 찍은 영상'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때 느끼는 '우와' 하는 감동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작은 열정, 또 다른 라이더들의 열정을 잔잔하게 글로써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자 한다.


'롱보드'? 그냥 나무판자 타고 앞으로 가면 되는 거 아냐?


롱보드란 스케이트 보드 중 길이가 길쭉한 보드들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보드는 아스팔트 길을 좀 더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한 이동 수단이지만, '댄싱', '크루징', '프리라이딩', '트릭' 등 그 아래에 꽤 다양한 장르가 분포되어 있다.

저렇게 보면 복잡하지만, 결국 결론은 길쭉한 보드를 이용해 그 위에서 스텝을 밟고, 그 보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구현하는데 집중하는 취미이다.

수많은 기술들이 있는데, 그중 내가 원하는 것을 골라서 하면 된다.


SNS의 전성기를 맞아 온라인에서 멋진 보드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영상들을 보면 보통 아래와 같은 구조로 구성된다.

라이더의 이름이나 브랜드의 이름, 멋있는 풍경, 그리고 영상 속 라이더들의 화려한 기술들이 등장하고, 그 마지막에는 드라마의 NG 모음처럼 실패한 장면들이 들어간다.

화려한 스텝과 기술들이 나를 두근거리게 하기도 했지만, 마지막의 이런 '실패'하는 장면들의 모음이 나는 참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거 그냥 나무판자 타고 앞으로 가는 게 아니라, 심장이 쫄깃한데?'


대놓고 넘어지고 깨져야만 성장하는 골 때리는, 하지만 짜릿한 취미


노래를 연습하면서 못 부르는 게 창피하다면 혼자 방음이 잘되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내가 열심히 쓴 글이 내가 봐도 이상하다면,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춤도, 공부도, 남들에게 보이기 전까지는 혼자 연습할 시간이 주어진다.

조금 덜 부끄럽다.


하지만 보드는 보통 밖에서 탄다. 그마저도 맘 편히 탈 수 있는 공간이 여의치 않다. 장소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더욱 사람이 몰리게 된다. 좁디좁은 대한민국 땅에서 그 장소는 주로 공원의 어느 널찍한 공간이다. 그러다 보면 보드를 탄다는 건 걸음마를 떼는 그 순간부터 타인에게 노출이 된다. 우리 자신이 노래를 못 불러도 다른 사람이 잘 부르고, 못 부르는 정도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안다.


'초보네. 저러다 넘어지겠다'


그리고 넘어진다.

그리고 가끔은 위험하게, 가끔은 우스꽝스럽게 넘어진다.

우리가 길 가다 넘어져서 쪽팔리듯이,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앞에서 넘어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대놓고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이니까.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떼면서 몇 번을 넘어져도 우리는 절대 나무라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걷기 시작해서 넘어지면 혼이 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혼이 난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넘어지면 혼은 나지 않지만, 창피하다. 그게 뭐라고 참 창피하다.

그런데 보드는 넘어질 일이 많다.

처음 타면서, 새로운 기술을 익힐 때마다, 잘 타는 사람도 안전하게 타기 위해서는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울 일이 많은 취미이다.

하지만 그건 인생도 똑같다.

우리의 마음은 참 많이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다시 일어나서 걷는다.

단지 숨기고 있을 뿐.

보드를 타면서 나는 그렇게 커밍아웃을 하는 기분을 느꼈다.


'우리는 모두 넘어질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떤 취미를 하든, 그것은 잡념을 날려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처음 보드를 배울 때 아주 많이 의식이 되었다.

보드는 보통 타기 전에 동호회 모임에 나가서 다른 분들 보드를 빌려서 타 본다.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서로 시험해보는 거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의 보드를 아무 대가도 없이 빌려 타는 것도 왠지 민폐를 끼치는 기분이고

(지금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당시는 그랬다)

보드를 타는 사람들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잘 타는 사람들 -

여의나루 역 한강 공원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바글바글 -

어색함, 미안함, 괜히 비교되는 기분, 타인의 시선들에 복잡 미묘한 기분으로 보드를 어떻게 타는지 배우기 위해 보드 앞에 섰다. 어지러운 정신 속에서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오른발을 보드 앞쪽에 올리고, 왼발로 땅을 두어 번 밀다가 보드 위에 '착-' 하고 올라선다.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가른다.

몸이 붕 날아간다.

보드를 타기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모든 잡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 이거다!'

나는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집중하지 않으면 중심을 잃는다.

중심을 잃으면 '내'가 넘어진다.

그래서 혼심을 다해 집중을 한다.

잡념이 사라진다.

집중력이 증가한다.

오랜만에 내 몸과 정신을 관통하는 긍정적인 사이클이었다.


보드를 타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쉽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롱보드는 숏 보드나 스케이트보드에 비해 길고 안정성이 있어 초반에 넘어질 위험이 적고,

가까운 한강 공원에 가서 라이더들에게 부탁하면 누구나 선뜻 보드를 빌려주기 때문에 돈도 안 들기 때문이다.



질릴 틈이 없는 새로운 도전들


처음에는 보드에 올라타서 출발하고, 속도가 줄어들 때마다 속도를 다시 내고, 멈추는 일 자체가 도전이다.

하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그리고 지겨울 새도 없이 보드의 세계에는 나의 도전을 기다리는 다양한 기술들이 존재했다.

싫증을 곧잘 내는 성격인 나에게 딱 맞는 취미였다.


처음 180이라는 기술을 익혔을 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워서 밤늦게 집 근처 공원에 나가 혼자 연습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해도 한두 명의 지나가는 행인까지는 막지 못하지만, 부담이 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에 바퀴가 걸려 몸이 날았고, 대리석 바닥에 꽝하고 넘어졌다.

내 몸이 날았던 순간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땅에 부딪힌 순간은 눈앞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데 하필 그때 젊은 남자가 지나간다. 땅바닥에 드러누워 소심하게 뒹굴고 있는 나를 그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힐끗 보더니 그대로 지나쳐갔다.

아프고, 창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몸 안에 막혀있던 혈관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는게 이런 기분인가?


보드 동호회 사람에게 얘기하니 '혼자 타는 사람은 꼭 다치더라' 고 한다. 같이 타자는 이야기다. 무심한 듯한 그 말이 싫진 않았다. 그 뒤로도 난 여전히 혼자 탈 때가 있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앞에서 당당하게 넘어지고 깨지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고 서로 걱정하고 챙겨주기 더 바쁘다.


멀찍이 그들을 멀리서 바라볼 때는 혼자서 탈 수밖에 없는 보드인데, 왜 굳이 모여서 탈까, 하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 녹아들었을 때는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묘한 동료애가 느껴진다.

조금만 실수해도 큰 실수인 것처럼 눈치 주던 상사, 빈틈을 보이지 않던 완벽한 선배.

그들의 틈에서 벗어나 나는 오랜만에 정말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롱보드 입문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생각, 느낌들을 공유합니다.

제 롱보드 실력이 성장해갈수록 제 이야기도 함께 성장하기를 기대하면서!


수줍은 서른 살 노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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