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끝날 것을 두려워 말고, 인생이 시작조차 안 할 것을 두려워하라
스포츠는 인생과 닮은 면이 많이 있다. 비단 스포츠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우리는 스키점프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아이스하키를 즐겨보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감동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영화가 끝나고 생각한다. 금메달을 따기 위한 치열한 투쟁은 이상적인 인생과는 닮아있겠지만, 나의 진짜 인생과는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나는 맹렬하게 하고 싶은 것이 아예 없었던 인생을 29년간 살았고,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너무 많아서 갈피를 못 잡는 인생을 1년 정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라, 영화를 잊을 때쯤 같이 잊혀 버린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보드를 타던 어느 날, 문득 이 생각이 다시 기억이 났다. 그리고 진짜 내 인생과 닮아있는 스포츠는 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질 각오가 필요하다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보드를 탈 수 없다. 두려워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지만, 그건 보드의 참재미를 알기 어려운 굉장히 제한적인 행위이다. 마치 자동차에 시동을 걸 줄 안다고 해서 자동차를 탄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보드를 가질 수는 있지만, 보드를 알고 익숙해지기는 어렵다. 그냥 들고 서있기만 해도 되고, 제자리에서 올라탔다가 내려오기만 해도 된다.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달릴 수 없고, 보드 위에서 발을 한 짝 뗀다는 게 너무 무섭다. 그래서는 보드의 참된 의미와 기쁨을 알 수 없다.
내 인생은 지금까지 그냥 '보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인생이었다. 실패가 두려워 생소한 분야는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열정이라는게 나라는 사람에게는 태초에 주어지지 않았거나, 혹은 인생이라는게 꼭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을 가진 채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그 삶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괴로웠다. 인생을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어서 - 이 보드를 어떻게 타야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 - 괴로웠다. 그렇게 29년을 살았다. 그런데 최근 1년 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르지 않은 나이에 보드를 배우고, 살사를 배워보고, 코딩을 배우고, 독일어를 배운다. 모든 것은 언제든 그 자리에 있었다. 언제든 내가 배울 수 있도록 거기에 있었다. 바뀐 것은 나였다. 나는 편의를 위해 붙여진 내 나이라는 숫자 앞에 숫자 '3'을 달고 나서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서야 나는 넘어질 각오를 했다. 이미 넘어져 보았던 기억들이 여전히 내 발목을 붙잡고 여전히 두렵지만, 나는 그래도 진짜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지쳐있음에도 계속 달리기만 하면 별거 아닌 것에도 크게 다친다
지난번 글에서 보드를 타다가 '날아서 쿵' 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고통이 좀 잠잠해지고, 몸을 추스르게 되자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이 무엇일까? 그렇다. 원인을 찾았다. 나를 넘어지게 한 원인, 그것은 단단한 나뭇가지 한 조각이었다. 보드를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고 작고 딴딴한 녀석이 바퀴에 탁 하고 걸리면서 보드가 멈췄고, 나는 운동 에너지를 간직한 채 날아서 바닥에 꽂힌 것이었다. 사실 그때는 이미 한두 시간 탄 이후라 체력이 좀 빠져있었다. 하지만 이제 좀 새로 배운 스텝이 발에 익은 느낌이 들어서 쉬지 않고 계속 탔다. 지친 몸은 둔해졌고, 사고로 이어졌다. 그 뒤로 나는 보드를 타면서 길바닥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나뭇가지나 돌이 보이면 바깥으로 멀리 던져버린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힘들어서 울었던 일, 애인이랑 싸운 일, 가족들이랑 다툰 일, 돌아보면 별 거 아닌 나뭇가지 같은 일들로 나는 상처를 받고 쓰러질 때가 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일도 유독 마음이 힘든 날은 가슴이 더 먹먹하다. 그럴 때 그것의 원인에 대해 '에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지나치지 말고 상처를 보듬어 주길 바란다. '나 상처받았어' 하고 그 원인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 화를 낼 필요도, 울 필요도 없이, 내 옆에서 멀리 휙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선 가끔은 늘 다니던 길도 다시 보고, 늘 참던 일들도 다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나의 나약함'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나에게 바란다. 별거 아닌 일에 상처를 받을 때는, 그런 일로 상처받는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쳐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진정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내 발끝에 걸린 돌뿌리에 걸렸을 때 더 크게 넘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장애물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장애물을 만났는데 지쳐있을 때는 잠깐 멈추고 쉬자. 나를 다치게 할 장애물이 보일 때는 멈춰서 돌아가든, 치워버리든 할 수 있게 내 삶을 가끔 좀 더 잘 들여다보자. 그리고 내가 나의 보드에, 내 삶에 조금 더 익숙해지면, 나의 기술로 그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계속 달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쳇바퀴 같은 일상은 정말 지겹기만 한걸까?
보드를 타는 장소를 '보드 스팟'이라고 하는데, 주로 기술을 익히는 사람들은 같은 스팟 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연습을 한다. 처음에는 그게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는 것처럼 바퀴 달린 이동 수단을 탔다면 어디론가 씽싱 달려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보드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익히기 위해서는 이런 공간이 가장 적당한 장소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수 십 번, 때로는 수 백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느낀 건, 이건 어쩌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겉만 봐서는 반복되는 이 생활에 염증이 날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에서 나는 (혹은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다쳐서 뒹굴기도 하고,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었는데 아쉬운 실패에 땅바닥을 치고, 혹은 작은 성공에 혼자서 환희를 지르기도 하고, 누군가 그 장면을 봤다면 함께 환호해주기도 하는. 또 그 장소에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익숙했던 사람이 떠나고, 늘 먹던 그것을 먹으면서 매번 다른 이야깃거리에 까르르까르르 웃기도 한다. 얼핏 보면 같아 보이는 그 장소에 사실은 매번 다른 사람들이 모여,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우리네 인생도, 사실은 너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아름다움을 외면한 채, 적어도 스스로의 입으로 내 인생을 오해한 채로 살진 말자.
적어도 내 입으로 '이 쳇바퀴 같은 일상, 지겨워 죽겠네' 라는 말은 하지 말자.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런 '지겨운' 일상을 만든 주체가 누구인지 말이다.
나는 진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발목 사고 이후, 두 달 만에 돌아온 나를 보며 어떤 친구가 물었다.
"그래도 다치고 나서도 다시 돌아왔네요? 보통 다치면 보드 다시 안 타려고 하던데"
"다치고 나서 겁이 좀 나긴 하는데, 이겨낼 만해요. 그리고 넘어졌을 때 그 기분이 묘하게 싫지 않더라고요."
내 대답을 들은 그 친구가 씩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럼, 보드 탈 자격 있는 거예요."
나는 수줍게 웃었다.
마치 그 말이 너는 지금 잘 살고 있노라는 말처럼 들려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아마도 앞으로 내가 보드 기술들을 하나하나 성공시킬 때마다, 삶에서 내 앞을 막아서는 작은 시련들을 넘어서는 자신감으로 바꾸어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드에서 떨어져서 몸이 다치는 것은 괜찮아요.
하지만 당신의 생각없는 한마디에 내 마음이 다치는 것은 괜찮지 않아요.
언젠가 당신의 가시돋힌 그 말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만큼 강해질 수 있길.
수줍은 서른 살 노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