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가 없어도 갈 수 있어요. '믿음'으로 빌려드려요.
보드를 타는 사람들 중에는 혼자서 독학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동호회처럼 모임에 가입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즐기면서 타는 분들이 많다. 보드를 타는 사람들은 이런 모임을 '크루'라고 부르는데,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이 크루의 모임에 나갔었더랬다. 보드를 혼자 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보드를 배우고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이 크루 사람들과 알게 되고 친해져 가는 과정도, 하나의 꽤 큰 도전이 될 수 있기에, 오늘은 이 보드 커뮤니티에 적응해 온 나의 경험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솔직히 이런 모임에 나가고 친구도 사귀고 싶은데, 혼자 가기 뻘쭘해서 용기가 없어서 못 나가는 분들도 정말 많으리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먼저 한 말씀드리자면, 전혀 부끄러워하지 마시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이 모임을 알게 된 경로는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기의 모임을 홍보하고, 또 그런 모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생긴 몇 가지 앱 중 하나를 통해서였다. 검색창에서 '롱보드'를 검색하니 몇 군데의 모임이 나왔는데, 나름 모임 소개글도 꼼꼼히 읽어보고 공개된 글이나 사진들을 보면서 꼼꼼하게 체킹을 했더랬다. 모임에 가입하고 자기소개글을 쓰고 나면 모임장이나 운영진분이 단체 카톡방으로 초대를 해 준다. 그래서 모임에 나가기 전 그곳에서나마 소소하게 서로 인사를 하고, 친분을 쌓을 시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보드가 없는데 정모 나가도 되나요?"
대답은 "Yes"이다.
나도 똑같은 질문을 했고, 모든 사람들은 쿨하게 그냥 나오라며, 보드는 빌려드린다고 했다. 특히 정모 같은 날은 신입이 여러 명 온다고 하면 운영진이 여분의 보드를 서너 개 더 챙겨 오는 듯했다. 첫 정모를 나갔고, 정모 장소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드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같은 크루가 아니다! 난 세 번이나 물어보고서야 내가 가입한 모임인 크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물어보는 일조차 얼마나 수줍던지. (기억하시라, 나는 수줍은 서른 살이다...) 여차저차 미리 연락을 드렸던 운영진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보드 하나를 할당받았다. 그리고 선생님 한 분을 붙여준다. (선생님이라고는 해도, 같은 크루원이다) 그렇게 어떻게 보드에 올라타는지, 또 멈추는지 가장 기본적인 동작들을 배우게 된다. 이건 마치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인사팀이 우리를 케어해주던 햇병아리 같은 신입사원으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렇게 조금 배우고 나서는 혼자 연습하는 시간에 돌입한다. '이십 대였으면 조금 덜 힘들었으려나'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급격한 체력의 저하와 빌려 타는 보드라는 괜한 미안함에 보드 정착장(?) 같은 곳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미안할 일도 아니건만, 그때는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보드를 탄다는 행위가 생각보다 허벅지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꾸준한 힘'에 취약한 내 몸뚱이는 생각보다 빠른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쉬러 돌아가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 앉아있었는데, 이것도 참 어색하기가 그지없다. 이미 친해진 사람들 사이에 끼어드는 일에 정말 젬병인지라, 한 마리의 찐따처럼 그 속에서 숨만 쉬고 있었다. 이따금 아무 알림도 없는 핸드폰이나 들여다보면서.
꺼야 꺼야 할 거야, 혼자서도 잘할 거야
가끔 나도 나 자신이 참 특이하다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인데,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혼자서 멀뚱멀뚱 있는 일'이 굉장히 불편하고 싫으면서도 종종 생기는 이런 모임에 나는 늘 거의 '혼자서' 참석한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을 설득할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냥 혼자서 일단 간다. 가는 동안에는 긴장이나 걱정이 전혀 없는데, 막상 가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굉장히 불편하고 어색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 어느 조직이든 처음에는 겪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보기와는 다르게 낯을 가리는 데다, 누군가 말을 걸어준다 쳐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일에도 정말 젬병이라 대화는 금방 단절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라는 게 보통 처음 오는 사람들은 친구를 한두 명씩 꼭 데리고 온다. 그래서 혼자 덩그러니 와있는 내가 가끔 더 이상하게 보이나 보다. 그래서 늘 듣는 말은 '어떻게 혼자서 오셨네요? 용기가 대단하세요' 같은 말들이다. 그러면 마음속으로 본능적으로 나오는 대답은 이렇다. '혼자 오는 게 이상한가요?' 물론 겉으로는 그냥 웃어넘기지만.
이쯤 되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음? 보드 모임 나가면 나도 이 사람처럼 혼자 어색해하면서 뻘쭘해하다가 오는 건가. 으아, 더 가기 싫다!'
"몸만 오세요 ~ 저희가 다 알아서 해드릴게요 ~ 호호호 ~" 같은 영업 글을 적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솔직하게 쓰고 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분위기에 잘 적응이 되지는 않았다. 나를 방치해두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끼어들 수 없는 벽이라는 게 느껴지기는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상황이다. 가입비가 있거나 레슨비가 있는 것도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모여서 보드를 타는 모임에서 전문적인 케어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고, 저 사람들도 나처럼 수줍은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인 것이다. 나처럼 보드 없이 놀러 왔다가 '보드는 나랑 안 맞아!' 하면서 쉬이 떠나가버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고, 사실 저 사람들도 모임 인원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과 친목을 쌓고 싶다면 그 날 저녁 일정을 비워놓고 함께 '뒤풀이'를 꼭 함께 하시라고 추천을 드린다. (나는 한 번도 뒤풀이 참석을 한 적이 없지만...) 우리가 소개팅 나가서도 맨 정신엔 어색해서 서로 쭈뼛쭈뼛 거리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조금 친밀해지는 것처럼, 여기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는 다른 일정 때문에 한 번도 뒤풀이에 참석한 적이 없지만, 그래서 친해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건 나는 '보드가 좋았기 때문'이다. 다친 후의 '두 달'이라는 공백 기간 동안 나는 사람들이 나를 잊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기억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친해지고 있다. 이런 나이 많은 평범한 수줍은 서른 살도 혼자 와서 잘 적응하고 있으니, 할 수 있다. 당신도.
대학을 포함한 학교라는 공간을 졸업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급격히 줄어든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좋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해관계가 얽혀 마음 편히 친해지기가 힘들다. 특히 나처럼 학업으로, 또는 직업으로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순수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의 폭이 굉장히 좁다. 그래서 이런 모임이, 이런 사람들이 가끔 참 큰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된다. 혹시 올 가을이 외롭게 느껴진다면, 좋은 날씨가 더 지나가기 전에 용기 내어 들러보길 바란다. 이를테면, 한강 여의나루공원 같은 곳에 :)
참, 그리고 생각보다 연령층이 다양해서 30대분들도 생각보다 꽤 있다.
나는 처음에는 20대 초중반 친구들을 먼저 만나서, 내가 오면 안될 곳에 왔나!, 라는 생각도 하였으나,
곧 자기소개를 통해 30대 분들과도 인사를 꽤 나눌 수 있었다.
정모에서 가끔 신입이 많이 오면, 둥그렇게 몰려앉아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 때 나는 긴장한 나머지 옆 사람 나이를 내 나이처럼 이야기했다.
(긴장 안한 척 당당하게) "서른 두살 입니다!"
나이를 부풀려 말한 건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
긴장 풀고 살아요, 우리.
수줍은 서른 살 노이 올림